•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3 세시 풍속과 생업: 생산
  • 03 어업과 세시: 적기적획, 어민생활사, 세시력과 어업력의 관계
  • 수산서에 반영된 세시
주강현

『자산어보』는 사실상 흑산도의 어부 ‘창대’의 구술 채록에 근거를 둔 ‘공동 저서’라고 할만하다.47) 주강현,『조기에 관한 명상』, 한겨레신문사, 1998 : 주강현, 黑澤眞彌 譯,『黃金の海イシモチの海』, 東京: 法政大學出版局, 2003. 그만큼 노련하고 민속 지식이 풍부한 어부 창대의 증언을 통하여 현지 정황에 기초하여 서술된 책 이기 때문이다. 약전이 절기를 따라서 회유하는 조기에 관하여 서술한 대목을 살펴본다면 당대 어부들이 얼마나 시후를 중시하였던가를 알 수 있다. 그는 흑산도에는 알을 낳고난 다음인 여름철에야 산란을 끝내고 돌아오는 놈을 밤낚시로 낚는다고 하였다. 아래의 기술을 통해 우리는 조기가 잡힐 수 있는 시점과 장소, 그리고 밤이라는 시간과 물때라는 또 하나의 시간, 낚시라는 어로 도구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흥양(興陽)48) 오늘날의 전라남도 고흥군 일대를 말한다. 바깥섬에서는 춘분 후에 그물로 잡고, 칠산 바다에서는 한식 후에 그물로 잡으며, 해주 앞바다에서는 소만 후에 그물로 잡는다. 흑산 바다에서는 음력 6∼7월에 비로소 밤 낚시에 물리어 올라온다. 물이 맑기 때문에 낮에는 낚시밥을 물지 않는다. 이때의 조기맛은 산란 후인지라 봄보다는 못하며, 굴비로 만들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가을이 되면 조금 나아진다. …… 전구성(田九成)의 『유람지(遊覽志)』에 이르길, “해마다 음력 4월에 해양에서 연해에 나타나는데, 이때가 되면 물고기 떼가 수리(數里)를 줄지어 바닷 사람들은 그물을 내려 조류를 막고 잡는다.”고 기록하였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르길, 첫물(初水)에 오는 놈은 아주 좋고, 두물(二水), 세물(三水)에 오는 놈은 크기가 차츰 작아지고 맛도 점차로 떨어진다고 하였다. 이 물고기는 때에 따라서는 물길을 따라온다. 그러므로 추수(追水)라고 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그물로 잡는다. 만일 물고기떼를 만날 적이면 산더미처럼 잡을 수 있으나 그 전부를 배에 실을 수는 없다. 해주와 흥양에서 그물로 잡는 시기가 각각 다른 것은 때에 따라 물을 따라서 조기가 오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의지하였던 창대는 누구인가. ‘초목과 어조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다면, 아주 유능한 제보자 아닌가. 민속 학 현지 조사를 하다보면 어쩌다 창대와 같은 제보자를 만난다. 그 창대를 통하여 우리는 각 시기별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어법을 써서 고기를 잡았던가를 개괄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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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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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보여주듯, ‘자산’이란 지명과 ‘어보’라는 물고기의 제 관계, 즉 해당 물고기가 드는 장소와 어종의 제 관계가 중요하다. 동시에 이러한 관계는 어종의 회유·산란 시기 등의 시후와 맞물리면서 그에 따른 어획 방법이 강구되어 왔다. 즉, 어종과 어획 장소, 어법, 어획 시점 등의 제 문제가 결부되어 어업력을 구성하는 것이며, 이러한 어업력에 맞추어 뱃고사, 날씨점 등의 세시가 설정되는 것이다.

- 민어: 나주 여러 섬 북쪽에서는 음력 5∼6월에 그물로 잡고 6∼7월에는 낚시로 낚아 올린다.

- 조기: 흥양(興陽) 바깥 섬에서는 춘분 후에 그물로 잡고, 칠산 바다에서는 한식 후에 그물로 잡으며, 해주 앞바다에서는 소만 후에 그물로 잡는다. 흑산 바다에서는 음력 6∼7월에 비로소 밤낚시에 물리어 올라온다.

- 숭어: 이 물고기를 잡는 시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3∼4월에 알을 낳기 때문에 이때에 그물로 잡는 사람이 많다.

- 농어: 4∼5월초에 나타났다가 동지가 지난 후에는 자취를 감춘다.

- 도미: 호서와 해서에서는 4∼5월에 그물로 잡는다. 흑산에서는 4∼5월초에 잡히는데 겨울로 접어들면 자취를 감춘다.

- 준치: 곡우가 지난 뒤에 비로소 우이도에서 잡힌다. 이때부터 점차로 북으로 이동하여 6월이 되면 해서에 나타난다. 어부들은 이를 쫓아가서 잡는다.

- 고등어: 추자도 여러 섬에서는 5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하여 7월에 자취를 감추며 8∼9월에 다시 나타난다. 흑산 바다에서는 6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하여 9월에 자취를 감춘다.

- 날치: 망종 무렵 바닷가에 모여 산란한다.

- 멸치: 6월초에 연안에 나타나서 서리 내릴 때 물러간다.

- 홍어: 동지 후에 비로소 잡히나 입춘 전후에야 살이 찌고 제 맛이 난다. 2∼4월이 되면 몸이 쇠약해져 맛이 떨어진다.

- 공치: 8∼9월에 물가에 나타났다가 다시 물러간다.

- 참게: 봄철에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논두렁 사이에 새끼를 낳고 가을이 되면 강물을 따라 내려간다.

- 새조개: 가을에 참새가 물에 들어가 조개로 변하며, 겨울에는 장끼가 물에 들어가 큰 조개로 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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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해이어보』는 김려가 신유사옥(辛酉邪獄)의 여파로 귀향가서 1803년 유배지인 진해에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1814)보다 11년 앞섰다. 진해에서 서식하는 72종의 어패류들 명칭과 형태, 습성, 포획 방법 등을 다루고 있다. 『우해 이어보』는 『자산어보』와 달리 매 어패류 끝에 우산잡곡(牛山雜曲)이란 시를 덧붙여 문학적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자산어보』가 기본 종을 모두 망라하여 서술하고 있음에 반하여 『우해이어보』는 글자 그대로 이어(異魚)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어는 오늘날의 개념으로 본다면 종다원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저자는 한 종류의 물고기를 서술하면서 이른바 근연종(近緣種)이란 이름의 연관된 물고기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우해이어보』에서 확인되는 어획의 시후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다.

- 감성돔: 가을이 지나면 감성돔을 잡아서 식해를 만든다.

- 학꽁치: 비를 좋아해서 매번 가을비가 올 때를 골라 떼를 지어 물 위로 떠오른다.

- 포수: 가을이 깊어갈 때 바다 속에 갑자기 홍색, 자주색, 청색, 흑색의 물이 생기는데 이것을 포수(脯水)라 한다.

- 노로어(鱸奴魚): 매년 가을 벼가 익을 때면 바닷물을 따라 바다와 계곡이 서로 통하는 곳으로 들어온다.

- 녹표어(䱚魚): 초여름 매실이 익어갈 때 조수를 타고 위로 올라오며 다른 때에는 올라오지 않는다.

- 삼치: 봄과 여름이 바뀔 때에 삼치 여러 마리가 물 근처에 모여들어 왕뱀과 서로 교미하고, 가을이 되면 알을 낳아 머금고 있다가 꺼내서 얕은 물가 비옥한 모래 속에 묻어두면 이듬해 봄에 새끼가 태어난다고 한다. 매번 서리가 내린 뒤에는 삽으로 모래를 퍼내고 용란이라 부르는 알을 꺼내서 젓갈을 담는다.

- 윤양어(閏良魚): 윤달이 든 해에 통통하게 살이 찐다. 윤양이란 이름이 ‘윤달에 살이 찐다’는 말에서 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안반어: 매년 늦가을에 물새, 물오리, 갈매기, 기러기, 해오라기 등의 무리가 물가에 모여서 안반어를 잡아먹기 때문에 안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노랑가자미: 목면화란 근연종이 있다. 목화꽃이 열매를 맺을 때에 많이 잡히기 때문에 목면화란 이름이 붙었다.

- 정자: 이화감추(梨花甘鰌)란 근연종이 있다. 배꽃이 필때 잡힌다. 단초감추(丹椒甘鰌)라는 근연종도 있는데 단초를 민간에서는 고추라 부르며 단초고추는 이 고추가 열릴 때 나온다.

- 도다리: 가을이 지나면 비로서 살이 찌기 시작해서 이 곳 사람들은 가을 도다리(秋魚禾)라 하고, 혹은 서리 도다리(霜魚禾)라고도 한다.

- 백조어(白條魚): 매번 겨울이 길어져 눈이 온 뒤에 근해 계곡의 여울에서 낚시로 잡는다. 회로 먹으면 매우 맛있다. 이 곳 사람들은 면조옥어(麪條玉魚)가 겨울이 되면 크고 살이 쪄서 백조어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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