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4 세시 풍속과 종교
  • 02. 불교와 세시 풍속
  • 연등회와 팔관회
  • 2. 팔관회
진철승

팔관회는 신라와 고려 시대에 불교적 팔관재계(八關齋戒)와 민족 고유의 제천 행사가 결합되어 시행된 의식이다. 팔관재계는 속인이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음주 등 8가지 죄를 범하지 않도록 엄숙하게 지내는 법회로서 고대 인도의 외도들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수용하여 사미십계와 아라한의 팔사(八事)로 정착시켜 수행의 날로 삼았으며 이것을 다시 속인의 형편에 맞게 조정한 것이 바로 팔관재계이다.

신라시대의 팔관회는 기록에 모두 4번 나온다. 진흥왕 12년(551)에 고구려에서 온 혜량(慧亮)법사를 승통으로 모시고 개최한 경우, 진흥왕 33년(572)에 전몰 장병을 위해 베푼 경우, 자장이 황룡사 9층탑을 세운 다음 지냈으리라 추정되는 팔관회(645년 경), 태봉의 궁예 가 미륵 신앙과 결합시켜 개최한 경우(899년)가 그것이다. 이중 진흥왕에 의해 시행된 팔관회는 당시의 각 부족들이 강력히 고집하던 재래의 토속 신앙 및 시월상달의 제천 행사를 흡수한 것으로 불교와 민족 고유의 신앙이 결합한 대표적 사례이다.

고려의 팔관회는 태조가 훈요십조 중 6조에서 연등과 더불어 팔관을 반드시 거행하도록 한 명에 의해 고려시대 내내 거행되었다. 고려 팔관회의 성격은 훈요십조에 “팔관은 천령(天靈)과 오악(五嶽)과 명산대천과 용신(龍神)을 섬긴다.”라고 한 데서 드러나듯이 신라의 팔관회에 지리도참설과 조상제의 성격을 가미하여 시행한 국가적 종합 축제였다. 팔관회는 태조 원년부터 11월 중에 시행되었는데, 태조는 팔관회를 ‘부처를 공양하고 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이라고 하였다. 이후 팔관회는 성종 6년(987)부터 22년 간 중지된 것을 빼고는 연중행사로 성대하게 행해졌다. 팔관회는 왕실의 초상이나 월식, 동지 등의 경우 일정을 조정한 극소수의 사례 말고는 중동(仲冬)인 11월 15일에 개경에서 여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10월 15일에는 서경(평양)에서 열렸다.

또 덕종(1034) 때부터는 대회 전날인 소회일(小會日)에 왕이 개경십찰 중 수사찰인 법왕사(法王寺)에 가 예불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당일인 대회일에는 궁중에서 사선악부(四仙樂部)의 가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각 지방 호족들이나 여진족 등의 인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에 팔관회는 다양한 문물 교역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