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4 세시 풍속과 종교
  • 02. 불교와 세시 풍속
  • 재일과 재공양
  • 2. 재공양
진철승

재공양은 본디 수행자에 대한 음식 대접과 그로 인한 공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불교적 천당·지옥 세계를 접한 대중들에 의해 지옥고를 면하고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목적 의례의 체계로 전화되었 다. 특히, 관혼상제 등 유교적 가례에 현세적 의례 행위의 헤게모니를 내어준 조선 중기 이후 이 재공양은 불교가 종교로서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고, 이를 통해서만 불교의 현실적인 생존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조상 숭배 의식과 결합하여 칠세(七世) 부모의 왕생을 기원하는 재공양이 더욱 정교하게 발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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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영산재
봉선사 영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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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왕생 신앙과 기원에서 비롯된 다양한 의례 행위는 현재까지도 사찰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지속되고 있다. 이는 조상님 왕생을 기원하는 의례가 사십구재, 백일재, 소상, 대상 등 상례 체계뿐 아니라 지장재, 우란분재 등 정기적인 의례, 그리고 비정기적인 영산재(靈山齋) 등의 천도재(薦度齋)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뭍과 수중의 여러 고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水陸齋)나 노인들의 왕생극락을 빌며 미리 공덕을 닦는 예수재(預修齋) 등도 있어 사후 세계와 관련하여 매우 다양한 의례가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의례 행위 중 가장 발달된 의식은 영산재와 수륙재 및 예수재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의식들은 일반 승려들이 평범 한 염불로 집전할 수 있지만, 이들 의식은 규모가 매우 클 뿐 아니라 전문적인 범패(梵唄)와 작법(作法)의 능력을 갖춘 어장(魚丈)들만이 집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 영산재는 가장 대표적인 천도재로서 부처가 법화경을 설하던 영축산(靈鷲山)에서의 법회를 의식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즉, 영산법회 시의 불보살과 신장들에게 공양드리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산재보다 규모가 작은 전문적인 불공의례로서는 시왕각배(十王各拜)와 상주권공(常住勸供)이 있다. 영산재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어 해마다 단오에 태고종 봉원사에서 정기적으로 설행되고 있어 새로운 불교 세시 명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들 불공을 포함하여 대개의 천도재는 기본적으로 불보살을 가마에 모시고 도량으로 모시는 시련(侍輦), 천도 대상인 영가들을 대접하는 대령(對靈), 영가들의 생전 탐진치 삼독을 씻어내는 관욕(灌浴), 도량의 옹호를 신장들에게 청하는 신중작법(神衆作法), 불보살님에 대한 공양의식인 불공(佛供), 영가들과 유무주고혼들의 시장을 면케 하는 시식(施食), 불보살과 영가들을 배웅하는 봉송(奉送)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중 불공의 규모에 따라 천도재의 격이 달라지는데, 예전에는 상주권공은 보통 하루, 각배는 이틀, 영산은 사흘 간 진행되었다고 한다. 권공이든, 각배든, 영산이든 재를 의뢰하는 설재자(設齋者)의 목적에 따라 국태민안, 집안의 재수발복, 조상님의 왕생극락 등이 축원 내용에 포함된다. 또한, 불교 의식을 포함한 모든 불교 행사는 불공의 공덕을 자신의 가정이나 조상뿐 아니라 모든 유무정(有無情) 생명과 무주고혼(無主孤魂) 및 나라에 두루 회향하는 대승 정신을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 의식을 단순히 설재자의 기원에 따라 구별하는 것은 비불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수륙재나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등도 어장들에 의해 집전되는 대규모의 재공양으로 앞의 영산재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대표적 인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수륙재는 중국 수나라 양무제가 처음 수륙재 의문(儀文)을 지어 뭍과 물의 고혼들을 천도하였다는 기원을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이래로 국가적 의례로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불교가 피폐하던 조선 중기 이래 국가 의례로서는 맥이 끊어졌고, 민간에서 토속적인 용왕제와 결합되어 수륙용왕제 등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륙재를 수중왕인 용왕과 연결하여 강이나 바다에서 지내는 의례로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수륙재는 기본적으로 국가적 위난을 극복하려는 호국적 흐름, 왕실의 안녕이나 치병을 위한 의례, 전왕조(고려)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천도를 기원하는 천도의례 등 성격이 복잡한 의례로서 단순히 ‘물’과 관련된 불교 의례는 아니다. 단 수륙재가 이처럼 국가적 규모로 재가 진행될 때는 반드시 무차법회(無遮法會)라 하여 승려에 대한 공양(飯僧)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성 내외의 빈민과 대중에게 차별없이 공양하는 백성 위무의 잔치 성격도 겸하고 있었다. 최근 불교계에서 규모 큰 행사를 치를 때 곧잘 국행(國行) 수륙재 등을 표방하는 것은 이들 재가 왕실의 의뢰에 의해 국가적 규모로 진행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 행사의 국가적 성격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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