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4 세시 풍속과 종교
  • 03 기독교의 연중 행사
  • 유대 민족과 유대력
진철승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에 의한 민족의 구원을 믿으며 살아 온 유대 민족에게 연례적 절기(節期)는124) 성경 말씀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날을 기억하는 달력으로서, 節期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절기는 한국의 대표적 농사력인 24節氣와 다르다. 즉, 그것은 일정한 기간을 가리킨다. 물론 이것은 하루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씩 계속되는 축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한국 교회 예배 문화 가운데 며칠씩 계속 예배드리는 축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節期禮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단 하루 예배드리는 기념일이라면 ‘節期’가 아니라 ‘節日’이라고 표현해야 현실적일 것이다(이정훈, 『한국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절기예배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 2000).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통칭 유대력으로 정착되어 신앙과 정치 및 농사의 기준이 되었다.

유대력의 기초 단위는 하루(日), 주간, 달(月), 해(年)였다. 하루의 시작은 저녁이었다. 주간은 7일로 되어 있었으며, 그 마지막 날은 안식일이었다. 이 안식일은 예수도 지켰다. 여섯째 날은 안식일 전날 이라고 불렸으며, 오늘날의 금요일에 해당된다. 달은 음력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매달 1일은 신월(新月)이고 보름은 만월(滿月)이었다. 한 달은 29일, 혹은 30일이었으며, 1년은 12달이었다. 따라서 양력에 비해 부족한 날을 메꾸기 위해 2∼3년에 한 번 씩 윤달이 있었다.

유대력에는 성력(聖曆)과 민력(民曆)이 있었다. 성력은 종교적 행사의 기준으로 주로 절기와 월삭(月朔)에 적용되었으며 양력 4월이 정월이었다. 민력은 정치와 농사의 기준이었는데, 양력으로 10월이 정월이었다. 유대력에는 절기가 있었는데, 유월절(逾月節, Passover), 오순절(五旬節, Pentecost), 초막절(草幕節, Feast of Booths), 부림절(Feast of Purim) 등이 대표적이었다.

유월절은 본디 가축의 첫 새끼를 신에게 바치는 목축제이었던 동시에 누룩없는 떡(무교병)을 먹던 농경적인 명절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 민족이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고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과 결부되면서 유월절은 유대 민족에게 구원과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로 재탄생되었다. 이들은 정월 14일 밤 흠 없는 한 살짜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하늘과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살은 누룩 없는 떡과 쓴나물과 함께 먹음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고 해방의 대탈출을 감행하게 되었다. 유대 민족은 이후 이 유월절을 성력으로 정월(니산월, 양력 4월) 14일부터 일주일간 지켰다. 복음서에는 예수도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음이 기록되어 있다.

오순절은 칠칠절(七七節), 또는 맥추절(麥秋節)이라고도 하는 밀 추수의 농경농경적인 명절이었다. 칠칠절은 밀 추수의 기간이 7주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오순절은 첫 곡식 이삭단을 대제사장이 흔들어 드리는 날(성력 정월 16일)로부터 50일 되는 날임을 의미한다(레위기 23:9-11) .또 이 날은 초실절(初實節, Feast of First)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유월절 때 농사를 시작하여 조생종이 첫 열매를 맺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절기는 본래 야훼 신앙과 별 관계가 없었으나 모세가 칠칠절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으로 P기자(記者)가 기록함으로써 관련을 맺게 되었다. 이는 모세가 애굽을 떠난 후 50일 만에 율법을 받았다는 전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초막절 또는 장막절(帳幕節)은 본래 수장절(收藏節, Feast of Ingathering)로서, 가나안 농경민의 수확 의례였다. 이 때는 농사가 마무리되는 7월 15일(성력 데시리월, 양력 10월)로서, 마지막 곡식을 모두 수확하고 타작과 포도즙 짜는 일을 마친 다음 거행되었다. 이는 전 세계 농경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 수확 의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수장절은 바로 전형적인 추수감사절이었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방황하던 때를 기념하면서, 그를 농경 의례인 수장절과 연관시켰다. 따라서 이 절기는 야훼신앙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즉, 농경족에서 보편적인 하느님, 즉 천신에 대한 추수감사제가 아니라, 유대 민족에 고유한 하나님, 즉 야훼께 드리는 추수감사제가 된 것이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의 3대 절기 외에 부림절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부림절은 본래 페르시아의 봄놀이었으나 유대 민족이 페르시아 배화교(拜火敎)의 빛과 어두움, 밤과 낮의 사상을 받아들여 새롭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면서 명절로 삼은 것이다. 이는 유대 민족이 이교의 사상이나 의례를 받아들여 새롭게 재창조한 사례로서 주목된다. 부림절은 성력 12월(양력 3월)에 거행된다.

이상 유대력의 절기를 검토하면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본디 농경 의례였던 절기들을 철저하게 유일신 하나님, 야훼에게 드리는 감사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즉, 보편적 농경 생산 의례를 새로운 유일신 종교 의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는 농경 민속 의 틀을 벗어나 예수에 의해 보편 종교, 세계 종교로 질적 변모를 이룰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점이다.

둘째는 세계 종교사상 특별한 야훼 유일신 신앙의 틀을 견지하면서도 이방 신앙이나 종교의 사상 문화일 지라도 그 전개 과정에서 타문화와 만나 변화된다는 문화접변론을 다시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교회 성립 이후 동서방 교회로의 분화, 발전 과정에서도 이러한 변화, 즉 토착화 현상은 다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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