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4 세시 풍속과 종교
  • 03 기독교의 연중 행사
  • 한국 교회의 교회력
  • 1. 성탄절
진철승

한국에 크리스마스 행사가 시작된 것은 1880년대 중반 이후로 짐작된다.127) 개신교 이전 가톨릭에서도 예수 탄일 미사를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 자유 이후에야 비로소 자유롭게 크리스마스 행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을 시발로 잡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1887년에는 선교사 언더우드가 세례를 베푼 조선인들을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초대하여 성례에 참여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례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미국계 보수적 선교사들은 초기에는 예수 탄일 행사에 대해 소극적이었으며, 단지 휴가나 선물 교환일 정도의 의미만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탄일은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전도하는 날’, 비신자의 입장에서는 이국적 풍물을 ‘구경하는 날’로 자리잡으며 1890년대 후반에는 조선 사회에 자리잡았다. 또한, 크리스마스는 조선인들에게 ‘선물받는 날’로 각인되어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예수 탄일 행사가 자리잡은 원인으로는 ① 양력 보급과 동지를 대신하는 크리스마스의 기능, ② 전통적인 생일 축하의 풍속, ③ 불교와 민간에서 성행하던 등불장식의 확산 등을 꼽을 수 있다.128) 방원일, 「한국 개신교 의례의 정착과 혼합 현상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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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한국적 수용은 ‘크리스마스 프로그램은 한국적인 것이고, 서구인에게는 낯선 것이다’라는 잡지의 기사에서 보이듯이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근본주의 신학을 강조한 미국계 선교사들의 경향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주목된다. 더구나 한국적 크리스마스는 개신교의 신앙 세계 중에서 유일하게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의미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까지의 이러한 크리스마스 전통은 1950년대 이후 크리스마스 새벽에 캐롤송을 하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풍속이 주민들의 항의와 원성으로 인하여 중단된 것과 대조된다고 하겠다. 해방 후에도 크리스마스는 공휴일 지정과 더불어 거리마다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필두로 통행 금지에서 해방된 인파의 물결 등 세모의 풍속으로 자리잡았으나, 최근에는 자정의 촛불 미사(가톨릭)와 마굿간 설치, 성탄 예배 등 종교 내적인 행사로 축소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129) 진철승, 「부처님 예수님 생신의 공휴일 산고」, 『종교문화비평』,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청년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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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아기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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