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1 고대의 문자생활과 서체
  • 01. 문자생활과 서체
손환일

문자생활은 필기도구에서 시작된다. 고대의 필기도구는 세 가지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먹으로 쓰는 붓이 있고, 다른 하나는 파서 새기거나 그어 쓰는 도자(刀子), 종이 위에 자국을 내는 각필(角筆) 등이 있다. 붓은 지류와 목간, 도자는 목간과 금석에 사용하였고, 각필은 지류에 해당하는 사경이나 불경에 사용하였다. 그래서 문서의 기록이나 일선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를 ‘도필리(刀筆吏)’라고 하였다. 도필리는 목간에 잘못 기록된 글자를 칼로 긁어 고치는 일을 한 까닭에 하급관리, 혹은 아전을 얕잡아 일컫던 말로 통칭되었다.

서체(書體)는 자체(字體)와 서체(書體)로 분류된다. 자체는 전서(篆書), 예서(隷書), 팔분(八分), 초서(草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등으로 자형의 특징에 따라 나눈다. 한편, 좁은 의미의 서체는 김생체, 석봉체, 추사체, 왕희지체, 구양순체, 안진경체 등으로 개인의 특징적인 표현에 따라 분류한다.

전서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나누는데, 진(秦)에서 중앙 집권체제의 행정을 위하여 6국의 문자를 통일한 데서 비롯되었다. 대전은 문자통일 전의 전서를 말하며 갑골문, 종정문, 주문, 6국문자 등을 포함한다. 소전은 문자통일 후 필획과 결구가 정리된 자체로 이로부터 필획과 결구가 정형화되었다. 소전은 필획의 시작인 기필(起筆)과 필획의 끝인 수필(收筆)이 원필(圓筆)이다. 기필과 수필, 행필(行筆)은 모두 필획의 굵기가 같다. 필획의 방향이 바뀔 때에는 전필(轉筆)하는 것이 소전의 기본 필법이다. 대전은 일획을 두 번 또는 세 번에 쓰기도 하지만, 소전은 반드시 일필을 일획으로 서사하는 점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소전 이후부터 필획을 두 번에 쓰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소전은 석비의 제액과 두전(頭篆), 인장(印章)에 많이 사용되어 전한다. 특히, 제액과 두전에는 여러 서체로 전하는데 역시 소전이 지배적이고, 인장에는 무전(繆篆)이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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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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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각자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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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으로는 신라시대의 김인문(629∼694)이 썼다고 전하는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661∼681)와 최치원이 쓴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溪寺眞鑑禪師大空塔碑)>(887)가 특별하다. 두 점이 모두 유엽전(柳葉篆)이다. 당시 당에서도 이러한 전서를 구사한 예가 없고, 더욱이 북송 곽충서의 『한간』이 나오기 2세기 전이라서 더욱 중요성과 가치가 크다. 조선 중기 허목은 곽충서의 『한간』을 응용하여 미수전을 창안 하여 유행시켰는데, 이 역시 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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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산성 궁전지 출토 기와명문(1세기)
환도산성 궁전지 출토 기와명문(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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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으로는 당나라 사람에 의하여 대륙에서 서사된 <이식진 묘지(禰寔進墓誌)>(7세기)가 있고, 다른 하나는 당나라 사람에 의하여 백제에서 서사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각자(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刻字)>[660, 권회소(權懷素) 서(書)]·<부여 유인원기공비>가 있다. 그리고 신라의 <쌍봉사 철감선사탑비(雙峯寺澈鑑禪師塔碑)>(868)·<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884)·<사림사 홍각선사비(沙林寺弘覺禪師碑)>[886, 최형(崔夐) 전액(篆額)]·<실상사(심원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實相寺(深源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碑]>(893) 등이 있다. 서체는 일반적으로 소전이 서사되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당전(唐篆)의 필획과 결구를 수용한 서법에 해당한다. 이때는 이미 유학생·유학승·숙위 등의 많은 인원이 당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당의 문화에 대하여 익숙해진 시기에 해당한다.

고려시대 초기(10세기)에도 통일신라의 전통을 이어받아 주로 소전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필획과 결구가 소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필법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환추는 <보리사 대경대사현기탑비(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碑)>(939)와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 眞空大師普法塔碑)>(939)를 유엽전으로 써서 양각하였다. 구양순체에 익숙하였던 이환추의 유엽전은 소전이지만 필획에 방필(方筆)과 노봉(露鋒)을 사용하였다. 역시 일반적인 전서의 필법에서 볼 수 없는 이환추만의 이러한 서법은 김인문이 서사한 것으로 생각되는 <태종무열왕릉비>가 참고되었을 것이다.

예서는 소전을 이어 유행한 서체이다. 소전의 둥글게 굽은 전필(轉筆)을 모난 절필(折筆)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예서는 서한(西漢)의 예서가 대표적이며 한예(漢隷)라 하고, 동한(東漢)의 팔분은 한분(漢分)이라고 하여 서로 구별한다. 예서는 팔분과 달리 글자의 필획에 파세(波勢)가 없으며 굵기가 일정하다. 그리고 결구도 모두 정사각형 결구이다. 이러한 자체를 고예(古隷)라고 하기도 하며, 한나라 때에는 금문(今文)이라고 하였다. 고예라는 명칭은 팔분을 예서라고 부르면서 예서와 해서를 구별하기 위하여 호칭된 것이다. <점제현신사비>·<광개토왕릉비>·<태왕릉 출토 명문벽돌>·<경주 호우총 호우명 청동그릇> 등이 대표적 예서이다.

팔분은 분예(分隷)·분서(分書)라고도 하는데 위·진(魏晉)시대에 호칭된 해서와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 모든 글자에 파세가 있으며 필획의 굵기도 매우 변화가 심하고 다양하다. 후에 팔분의 필획법에서 해서의 필획인 팔법(八法)이 발생하였다. 팔분은 한나라 때에 매우 유행하여 한예라고도 하는데, 전하는 명품은 대부분 이때 제작된 것들이 많다. 진나라 때는 진예(晉隷), 위나라 때는 위예(魏隷), 당나라 때 유행한 결구가 일률적인 팔분을 당팔분(唐八分)·당예(唐隷)라고 하기도 한다. 고려의 권중화가 쓴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를 비롯하여, 조선의 김수증(金壽增), 조광진(曺匡振), 유한지(兪漢芝), 강세황, 김정희 등이 대표적인 팔분의 명필들이다.

초서는 결구가 생략되고, 필획이 이어져 있어서 기록하기에 쉽고 빠르나 알아보기 어렵다. 글자마다 특징적인 결구가 있고, 이 점 이 다른 자체와 구별된다. 글자를 서로 이어서 서사하는 광초(狂草)·금초(今草), 그리고 필획이 한 글자에서만 이어지며 파세가 있는 장초(章草), 굵기가 가늘게 같은 굵기로 쓰는 유사초(游絲草)가 있다. 김인후(1510∼1560)·양사언(1517∼1584)·황기로(1525∼1575)·백광훈(1537∼1582) 등은 광초의 명필로 회자되는 인물이며, 허목은 전서의 결구와 초서의 필획을 혼용하여 특별한 초서를 만들어 냈다. 대원군 이하응은 결구와 필획의 생략이 많은 초서를 구사한 인물로 유명하다.

해서는 진서(眞書)·정서(正書)·금예(今隷)·금체(今體)라고도 한다. 해서의 요건은 필획이 ‘영자팔법(永字八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영자팔법은 점법(側法), 가로획법(勒法), 세로획법(努法), 왼쪽갈고리법(趯法), 오른위짧은삐침법(策法), 왼아래긴삐침법(掠法), 왼아래짧은삐침법(啄法), 오른쪽삐침법(磔法) 등이다. 그 중에서도 왼쪽갈고리법과 오른쪽삐침법 등이 가장 늦게 완성되었다. 해서는 필획과 결구가 고르고 절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자체에 비하여 가장 어렵다.

해서의 명품은 <화엄사 각황전 석경>이다. 여러 사경승(寫經僧)에 의하여 쓰여진 석경으로 사경체가 주를 이루지만 다양한 서체가 구사되었다. 고려에서도 구족달은 구양순체를 공부하여 필법을 터득하였고, 장단열은 저수량으로 득도한 명필이다. 조선시대 해서의 명필은 불교의 모든 각본을 쓴 성달생이 소해의 명가였고, 한호는 <천자문>을 통하여 석봉체를 전하였다.

행서는 필획과 필획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허획과 실획이 같이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결구의 생략과 감획이 많이 사용되며, 필획을 이어 쓰는 연사법(連寫法)이 사용된다. 이들 중에서 전서·예서·팔분·해서 등은 금석문과 같은 기념 기록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행서나 초서는 생활기록을 위한 목적에 주로 사용하였다.

행서의 명필은 김생이다. 김생의 행서는 결구의 변화가 무쌍하여 신필(神筆)의 경지이다. 김생의 필적으로 <전유암산가서>를 비롯하여 몇 본의 집자비가 전한다. 그 밖에 행서의 명필로는 영업, 탄연, 이암, 안평대군 이용, 한호, 윤순, 김정희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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