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2 고려시대의 문자생활과 서체
  • 04. 고려시대 묘지
손환일

고려시대 서체의 보고는 묘지(墓誌)이다. 고려의 묘지는 현재 약 340여 점이 전한다. 묘지는 형식과 형태·재질·내용·서체 등으로 대별하여 살펴볼 수 있다. 묘지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피장자의 가계는 개인의 씨족관계를 밝혀주는 사회 자료이고, 묘지에 사용된 서체는 작품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기록하는 뜻에서 서사된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서사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묘지의 문장형식은 제액(題額)·제문(題文)·지문(誌文)·명문(銘文) 등으로 구성한다. 제액은 대개 시호나 관명을 적는데 주로 고려시대에만 사용되었다.

묘지의 제문은 피장자의 관명, 시호, 본관과 성씨 등을 제목형식으로 기록한다. 국가, 관직과 품계, 시호, 본관과 성씨 등이 제문의 기본 형식이지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제액이 있는 기본형식을 보면, <김극검 묘지명(金克儉墓誌銘)>(1140)은 제액을 “기열공묘지명(祁烈公墓誌銘)” 이라하고, 제문을 “(금)자광록대부검교사도수사공참지정사상…태자소사주국치사금기열공묘지명 병서[(金)紫光祿大夫檢校司徒守司空叅知政事尙…太子少師柱國致仕金祁烈公墓誌銘 幷序]”라고 하였다. <권 단 묘지명(權㫜墓誌銘)>(1312)은 제액을 “권문청공묘지(權文淸公墓誌)”이라 하고, 제문은 “단성양절공신벽상삼한삼중대광첨의정승판선부사증시문청공권공묘지명병서(端誠亮節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僉議政丞判選部事贈諡文淸公權公墓誌銘幷序)”라고 하였다. 제액만 있고 제문이 없는 예는 <홍경 처 김씨 묘지명(洪敬妻金氏墓誌銘)>(1317)으로, 제액을 “졸광정대부첨의찬성사상호군증시양순공홍경처낙랑군대부인김씨묘지명병서(卒匡靖大夫僉議贊成事上護軍贈諡良順公洪敬妻樂浪郡大夫人金氏墓誌銘幷序)” 라고 하여, 제문형식으로 제액을 하였고 제문은 없다. 이러한 방법은 제액과 제문을 병행한 형식이다. 그 외의 제문형식에는 ① 본관과 성씨만 적은 예는 <무송군대부인 유씨 묘지명(茂松郡大夫人庾氏墓誌銘)>(1326)이 있다. ② 제액이나 제문이 없는 예는 <정습명 묘지명(鄭襲明墓誌銘)>(1150), ③ 관명과 성씨를 기록한 예는 <위간경 묘지(魏幹卿墓誌)>(1321), ④ 시호만 기록한 예, ⑤ 묘지라고만 적은 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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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검 묘지명(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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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검 묘지명(1140)
김극검 묘지명(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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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지문은 산문이다. 그러나 묘지의 명문은 피장자의 인품을 운문으로 나타낸 것이다. 사언이 주로 사용되며 오언·칠언 장단구의 형식도 많이 있다. 명문의 문체나 문장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명문이 있으면 묘지명이고, 명문이 없으면 묘지이다. 그러나 <정습명 묘지명>·<김극검 묘지명> 등의 경우는 묘명이 없어도 묘지명이라고 하였다. 묘지와 묘지명은 구분 없이 사용된 일반 명칭임을 알 수 있다.

묘지의 재질은 금동·돌·토기·청자나 백자로 구운 도자기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하였다. 묘지의 유형은 크기가 다양한 판형이지만 석곽이 나 석관에 직접 쓰거나 새겨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묘지형태는 판의 모양이 정사각형·직사각형·규수(圭首)형·원수(圓首)형 등이 있고, 병 모양의 원통형·제기형 등 다양하다. 대개는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판형의 석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면 청자나 백자로 구워 만든 도판(陶版), 주발이나 대접 종류의 도자기·질그릇·벼루 등의 기물을 사용하기도 하여 재질과 형태가 다양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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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습명 묘지명(1150)
정습명 묘지명(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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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묘지의 유형을 분류하면 묘지의 유형은 대부분 정사각형·직사각형·규수형·원수형 등 판형이다. 규수형은 <김극검 묘지명>·<권단 묘지명>·<홍경 처 김씨 묘지명>·<무송군대부인 유씨 묘지명> 등이고, 직사각형의 묘지는 <정습명 묘지명>·<이초원 처 김씨 묘지명>·<이암 묘지명> 등이 있다. 정사각형의 묘지로는 <김중구 여부 묘지명(金仲龜女夫墓誌銘)>(1272)이 있다. 고려 묘지는 규수형이나 직사각형이 많다.

묘지의 글씨는 붓으로 먹·청화·철화 등을 사용하여 쓴 것, 써서 새긴 것, 쓰고 새겨 상감한 것 등이 있다. 고려의 묘지는 대부분 판형으로 글자를 새기고, 그 음각된 글자 위에 주묵(朱墨)을 칠하여 서 단(書丹)하였다. 음각의 글자가 붉게 보이도록 한 예는 <정습명 묘지명>·<이초원 처 김씨 묘지명> 등 대부분의 석판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묘지는 무덤의 앞에 묻었으며, 이를 광지(壙誌)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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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원 처 김씨 묘지명(1154)
이초원 처 김씨 묘지명(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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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원 처 김씨 묘지명(1154)
이초원 처 김씨 묘지명(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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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는 봉분이 없어지더라도 누구의 유골인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덤 앞이나 옆에 묻은 석판이나 도판이다. 대체로 죽은 사람의 행장과 사적, 즉 성명과 자, 출생지, 선대계보, 생몰년월일, 가족관계, 관직의 약력과 부임지, 행적과 품행, 덕망, 경력, 사적, 자손의 성명, 묘의 위치, 묘의 방향 등의 내용을 적는다. 즉,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묘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지를 전하기 위한 목적에서 매장할 때 함께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묘지의 문장 내용은 제목인 묘제와 산문체 지문인 묘지, 운문체인 명문인 묘명으로 구분된다. 지문만 있는 경우에는 묘지라 하고, 묘지와 묘명이 함께 있을 때는 묘지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문이나 지문만 있는 경우도 있고, <허종(許琮) 묘지>(1345)의 경우처럼 묘제와 명문만 있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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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단 묘지명(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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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단 묘지명(1312)
권단 묘지명(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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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군 대부인 유씨 묘지명(1326)
무송군 대부인 유씨 묘지명(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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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군 대부인 유씨 묘지명(1326)
무송군 대부인 유씨 묘지명(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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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자 원증국사탑비(1385) 탁본
태고자 원증국사탑비(1385)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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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사 원증국사석종비(1386) 탁본
사나사 원증국사석종비(1386)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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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사 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1386) 탁본
창성사 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1386)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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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대개 당대의 문장가가 짓고, 글씨는 당대의 대가를 찾아 서사하거나 후손이 쓴다. 묘지를 새긴 사람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묘지의 내용이 형식화되고 과장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김훤 묘지명(金晅墓誌銘)>의 예처럼 김훤(1258∼1305) 자신이 직접 만들어 사후에 사용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묘지는 명기류와 함께 매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묘지는 피장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여 주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 상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묘지의 서체는 일반적인 작품과는 달리 당시 생활기록 문화를 볼 수 있는 서사자료이다. 비문이나 혹은 감상의 대상이 되는 병풍이나 족자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묘지의 서체는 생활기록을 위한 서사이다. 그래서 서법에 있어서 꾸미거나 형식을 갖추려 하지 않았다. 이체자의 사용, 필획과 결구, 장법의 구성도 모두 당시의 생활기록에 사용된 서사문화 그대로 보여준다. 생활기록으로는 묵본으로 문서류가 있다면, 금석문은 묘지가 있다. 특히, 고려의 묘지는 서체가 다양하고 꾸밈이 없다. 그리고 글씨를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이 표기된 경우가 있어서 서사문화와 서각문화를 함께 살필 수 있다. 고려 묘지를 통하여 고려시대 서법 변천을 파악함으로써 고려 서예사의 연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고려 서예사 자료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글씨를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서자와 각자가 모두 기록된 예는 <이암 묘지명>으로 권홍(權弘, 1360∼1446)이 쓰고 최희경(崔希慶)이 새겼다. 묘지의 서사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써서 새겼으며, 새긴 위에 주묵을 칠하여 서단(書丹)하였거나, 직접 석판에 쓰듯이 새긴 경우도 있다. <정습명 묘지명>은 계선을 사용하여 써서 새겼으며, 새긴 위에 주묵을 칠하여 서단하였다. 전면은 써서 새겼는데, 후면은 직접 새긴 것이다. 쓰지 않고 직접 새긴 예로는 <김중구 처 묘지명>·<권단 묘지명>·<위간경 묘지명> 등의 예가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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