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3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과 서예가
  • 02. 조선시대의 주요 서예가
  • 조선 후기 주요 서예가
  • 3. 허목(許穆, 1595∼1682)
이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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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 초상
허목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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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의 호는 미수이며 경서와 예학에 밝았고 자의대비 복상문제로 서인과 대립하였다. 그는 50세가 넘도록 제자백가와 선진의 6경(六經)을 연구하여 ‘고학(古學)’이라 하였고, 예학에 일가를 이루어 예송논쟁에 참여하였으며, 삼대의 고전(古篆)을 취하여 독특한 전서를 완성하였다. 그는 6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시기에 낭선군 이우가 제공한 <형산신우비(衡山神禹碑)>·<석고문(石鼓文)>·<역산비(嶧山碑)> 등 금석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소전·고문·종정문·<한간문(汗簡文)> ·<삼체석경(三體石經)> 등을 참고하여 고문과 소전이 섞인 전서 서풍으로 썼는데, 자간(字間)이 좁고 방필과 원필이 섞인 장법을 보였다.

70세 이후의 전서를 보면 필획이 강건하고 넉넉하고 강건하며 자간의 공간이 넓어지는 변화를 보인다. 여기에 행초의 필의가 가미되어 그의 독특한 초전(草篆)을 완성하였다. 그의 전서는 기괴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의 문인과 남인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식산 이만부·성호 이익·다산 정약용 등은 미수의 독특한 전서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척주동해비>·<하홍도 묘갈명전액>·<원천석 묘갈명전액> 등의 금석문과 <애민우국> 등의 묵적 등이 다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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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 전서 <애민우국(愛民憂國)>
허목 전서 <애민우국(愛民憂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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