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3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과 서예가
  • 02. 조선시대의 주요 서예가
  • 조선 후기 주요 서예가
  • 6.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이성배

송시열의 호는 우암(尤庵)이며 율곡·사계·신독재로 이어지는 기호학의 학통을 계승하였고 동춘당과 동문수학하며 평생 학문과 정치를 함께 하였으며 문묘에 배향되었다. 우암은 동춘당과 함께 양송체로 널리 알려졌으며 17세기 금석문 글씨를 주도하였다.

우암의 서예는 한석봉·안진경·주자의 영향을 받아서 <몽이양정(蒙以養正)>과 같이 중후하고 굳세거나 <각고(刻苦)>와 같은 장중하고 웅장하고 강한 필세의 대자(大字) 서예에 능하였다. 특히, 서론은 거의 전적이라 할 만큼 주자를 추숭하여 글씨보다 내면의 의리정신을 수 용하고 구현하고자 하였다. 우암의 글씨는 주자의 학문과 사상을 정맥으로서 인식한 직사상(直思想)과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바탕하고 있다.

우암의 작품으로는 해서와 행서 및 초서가 많이 남아 있으며 대자일수록 웅건하고 기위(奇偉)함을 살필 수가 있다. 우암은 비문과 편액 등에서 강경하고 안정된 안진경풍이 강한 해서를 많이 썼다. 초서도 일부 필적을 보면 상당한 수준에 달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암 글씨의 진면목은 대자에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호방하면서 다양한 필의를 보여주는 대자행서(大字行書)는 개념성과 규범성이 강하던 성리학과 예학이 발달한 시기에 일탈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할 수 있으며, 유어예(游於藝)의 경지를 추구하는 조선 성리학자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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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행서 <몽이양정(蒙以養正)> 중
송시열 행서 <몽이양정(蒙以養正)>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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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행서 <각고(刻苦)>
송시열 행서 <각고(刻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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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은 서예와 덕성이 상관있다는 주자의 예덕상관론(藝德相關論)의 관점을 한단계 더 발전시켜 심획(心劃)을 강조하였고, 또 단지 심획에만 머물지 말고 심법(心法)을 보라고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글씨만 사랑하는 것보다는 글씨 쓴 사람의 심성을 사랑하는 것을 강조하고, 또 애인(愛人)보다는 도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곧, 궁극적으로 도의 입장에서 글씨를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사(李斯)의 경우 글씨의 고아함은 감상할 수 있는 애서(愛書) 단계의 인물이지만 그 사람됨을 논할 수 있는 애인 단계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퇴계·율곡·효종·백사 등의 글씨에서 인품을 볼 수 있음을 강조하여 예덕상관론의 이학적인 서예의식을 보여주고 있다.70) 이성배, 「우암 송시열의 서예와 비평의식」, 『한국사상과 문화』 42, 한국사상문화연구원, 2008,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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