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4 근·현대의 서예 동향
  • 02. 일제강점기의 서예 동향
  • 서화 인명사전 및 역대 서화집·인보집 간행
이승연

암흑기인 일제강점기에도 민족문화를 계승하여 민족혼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서화가들에 의해서 계속되었다. 오세창은 일제의 압박과 민족정신의 말살 정책으로 서화 활동이 제한을 받게 되자 민족정신을 계승시킬 방법은 우리 서화 및 전각작품의 수집·정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였다. 이러한 동기에서 시작된 『근역서화징』의 편저 작업은 초기에는 『근역서화사(槿域書畵史)』라는 제목으로 상·중·하 3권으로 집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의 고증학적인 학문 태도에 의해 자기의 생각을 적은 것이 아니고, 각종 문헌에서 발췌하여 인용한 바를 적은 것이므로 ‘사(史)’를 ‘징(徵)’으로 바꾸었다.

이 책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10년 중엽에 매일신보 기자가 쓴 <별견서화총(瞥見書畵 叢)>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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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서화징』 표지
『근역서화징』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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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조선에는 전래의 진적서화(珍籍書畵)를 헐값으로 마구 팔아 조금도 아까워할 줄 모르니 딱한 일이로다. 이러한 때에 오세창씨 같은 고미술 애호가가 있음은 가히 경하할 일이로다. 씨는 십 수년 이래로 조선의 고래(古來) 유명한 서화가 유출되어 남을 것이 없을 것을 개탄하여 자력을 아끼지 않고 동구서매(東購西買)하여 현재까지 수집한 것이 1,275점에 달하였는데, 그중 1,125점은 글씨요 150점은 그림이다. 세종·선조·중종·영조·정종시대의 것이 많고, 신라·고려 때의 것도 적잖이 모았으나 명현(名賢) 석유(碩儒)와 예부터 전해오는 화가(畵家)의 필적을 망라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로다. 씨는 앞으로 1백여 점만 더 구해 얻으면 조선의 이름있는 서화(書畵)는 누락됨이 없으리라 하여 고심 수집 중이며, 다만 서화를 수집함에 그치지 않고 그 필자·별호(別號)·연대·이력 등을 상세히 조사하여 참고케 하였는데, 그 목록만 하여도 세상에서 가히 구득치 못할 가치가 있겠더라. 기자는 씨에게 그를 사진판으로 출판하여 조선의 고미술 동호자에게 할애할 것을 권유하였고 씨도 그런 계획이 있어 그 기회를 엿보는 중이라며 우선 그 목록을 정리·출판하여 서화 동호자의 참고자료가 되도록 하리라더라.

그리고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위창을 방문하여 연재한 『매일신보』1916년 12월 7일∼15일자의 기사에서도 이 당시의 상황을 특보로 알렸다. 이 책은 1928년 계명구락부에서 한문판으로 간행되어 한국서화사 연구의 고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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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 <청유인보>
김태석, <청유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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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은 서화에 대한 연구를 좀 더 세분화시켜 우리나라의 역대 서화 묵적을 시대별로 모아, 글씨는 『근묵』·『근역서휘』로, 그림은 『근역화휘』로, 전각 작품은 『근역인수』로 편집하였다. 『근묵』은 1964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어, 1981년 상·하 2책으로 출판되었다. 이어 1995년 이를 다시 한지에 인·의·예·지·신권으로 나누어 출판할 계획을 수립하여 인권만이 재판되었다가, 2010년 5권으로 모두 영인되었다. 『근역서휘』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근역화휘』는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간송미술관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다. 『근역인수』는 국회도서관에 기증되어 1968년 영인되었다.

김태석은 『보소당인존』을 제작한 이후, 중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승사인보(乘槎印譜)』(1908)·『청유인보(淸游印譜)』(1908)·『원세개총통사장인집(遠世凱總統私章印集)』(1913)·『새인국고인집(璽印國攷印集)』(1915)·『중화각부현인문집(中華各府縣印文集)』(1915) 등의 인보집을 편집하였고, 귀국 후에는 『남유인보(南游印譜)』(1931)·『성재수집한국명사인보(惺齋蒐集韓國名士印譜)』(1943)·『동유인보(東游印譜)』(1944) 등을 편집하였다.

김용문(金容汶)은 인장 애호가로서 중국에서 명인(名印)과 명인재(明印材)를 구입하여 오세창과 마츠우라 요우겐(松浦羊言) 등 한·일 전각가들에게 연구하게 하였으며, 『전황당인보(田黃堂印譜)』를 발간하였다.

이외에 서예에 관한 전문적인 저서의 간행이 시작되어, 김규진은『서법요결(書法要訣)』·『난죽보(蘭竹譜)』·『육체필론(六體筆論)』 를 저술하여 서예이론의 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와 같이 시대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과 얼이 깃든 서화작품과 전각에 대한 자료를 모아 책으로 편집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오세창의 민족정신과 김태석의 전각인보, 김규진의 서론은 한국서예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시원이 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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