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4 근·현대의 서예 동향
  • 03. 해방 후의 서단과 서예 동향
  • 2000년대의 서단과 유행 서풍
이승연

해방 후 국전을 통한 전문서예가의 등장은 한국서예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관료나 문인들에 의해 유지되었던 서예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통해 본격적인 서예교육을 받으면서 공모전을 통한 인증제도를 통해 점점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서예가 시대를 연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대학에서의 서예과 창설은 서단에 참신한 바람을 예고하였다.

한문서예의 유행서풍은 일제시기 일본서예의 영향으로 북위서가 유행하였고, 청말 고증학과 금석학의 영향으로 갑골문·금문·대전·소전 등의 전서가 유행하였으며, 예서와 행·초서에서도 다양하고 개성적인 서체들이 많이 출현하였다. 북위서풍(北魏書風)의 열기는 1960년대 중반기에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여 공모전에서 해서는 거의 모두 북위서풍으로 출품되었을 정도가 되었으며, 당 해서인 구양순과 안진경체는 진부하게 여겨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1992년 중국과의 문호가 개방되면서 서예의 비첩이나 탁본, 법첩 등이 자유롭게 유입되면서 한국 서단의 유행서풍은 다양화되었다. 청대에 비학이 탄생한 이후 서예는 완전한 예술로서의 창작 영역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서체의 제약없이 진·한시대의 각석 전예와 남북조와 수당시대의 각석 해서를 비롯하여 선진시대의 석고문과 금문 등 존재하는 모든 문자 자료와 서체는 창작대상이 되었다. 또한, 청대 후기에 집중적으로 출토된 갑골문과 간독문자(簡牘文字)까지도 창작의 소재로 응용하여 비학은 명실공히 창작의 황금기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비학은 또한 전각예술의 표현 영역에도 그대로 응용되어 전각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비학의 영향으로 작품 소재를 확장한 사람은 오세창이었다. 이후 강진희·김태석·유희강에 이르러 더욱 개성적인 표현을 하게 되었으며, 중국과의 문호개방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갑골문·금문·조충서(鳥蟲書)·과두문자(跨蚪文字)·와당·전폐문·전문 등에 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서체의 연변과정에 있어서 여러 서체가 복합적으로 혼재한 간독(簡牘)과 한간(漢簡)인 누란(樓蘭)·돈황(敦煌)·거연한간(居延漢簡) 및 백서(帛書) 등의 임모와 더불어, 이를 소재로 한 작품도 유행하였다.

그러나 첩학에 대한 관심과 변화에 대한 욕구도 강하게 표출되어 행·초서에 대한 관심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서풍이 유행하였다. 행서에 있어서는 왕희지뿐만 아니라 당·송·원·명·청대의 서예가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다. 초서에 있어서는 당대 손과정(孫過庭)의 <서보(書譜)>에 의한 운필과 결구가 기본이 되는 작품이 많으나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조류에 따라, 장욱(張旭)과 회소(懷素)의 광초풍(狂草風)이나 청대의 왕탁(王鐸)·부산(傅山)·서위(徐渭) 등의 개성있는 서풍까지도 개인적인 감성과 필의에 맞게 잘 응용하여 작품화하고 있다.

한글 서예는 일제시기부터 시작된 한글궁체의 작품화가 정착되고 보급되어 궁체의 정자와 반흘림, 진흘림의 다양한 서체의 유행과 더불어 판본체, 민체의 다양한 변화로 확대되었으며, 국한문혼용의 창의적인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전각은 해방을 즈음하여 해외 유학파들의 귀국으로 인하여 유입된 오양지·오창석·제백석·조지겸 등의 중국풍과 히하이 덴라이·가이와 센교 등의 일본풍이 유입되어 확산되었으며, 또한 전문적인 전각가와 전각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독자적인 예술로 정착되기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진·한인풍(秦漢印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편, 문인화는 오창석과 포화의 영향이 짙은 초기의 화풍을 벗어나 사군자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소재의 문인화가 대두되어 회화성이 짙게 변모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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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현, <송민족대화합지기(頌民族大和合之機)>
김응현, <송민족대화합지기(頌民族大和合之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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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경제지상주의와 세계화로 인한 영어교육 열풍·정보화·스포츠 열기 등으로 인하여 서단은 위축되고 있으나 서체는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한국학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한국서예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져 2000년에 한국금석문을 법첩화한 『한국 금석문 법서선집(韓國金石文法書選集)』(총 10권, 조수현)이 출간되어 우리 글씨에 관한 관심을 유발시켰으며, 서단의 유행서풍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삼국시대의 금석문인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백제의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誌石)>·신라의 <울진 봉평비(蔚珍鳳坪碑)> 등의 서체와 김생(金生)·최치원(崔致遠)·황기로(黃耆老)·이광사(李匡師)·김정희(金正喜)·이삼만(李三晩) 등의 서체를 임모하고 작품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일례로 2003년 김응현은 광개토대왕비 1,802자를 쓴 세로 5.3m, 가로 6m의 대작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서예의 본질을 파악하고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의식에서 나온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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