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5 한글 서예의 변천
  • 04. 언문 후기: 1700년∼1800년대
  • 언문 후기의 필사체
  • 2. 언문 후기 필사체의 서체적 특징
박병천

1700년대와 1800년대 필사본 쓰기는 궁중이나 일반에서 많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궁중에서는 제도적으로 상궁 중에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책, 편지, 서류 등을 쓰는 전담 상궁이 있었다. 이 상궁들은 자기 나름대로 쓰는 글씨체가 아니고 궁중규범 서체가 있어 이 서체를 오랫동안 습득한 후에야 공적인 글씨를 쓰게 된다. 그 서체를 ‘궁체(宮體)’라 하는데, 소설류에 많이 쓰인 정자체, 반흘림체가 있고, 편지글에 많이 쓰인 흘림체(진흘림체)가 있다.

궁체 필사본 중에서 시기가 명확한 것 중 1700년대 초에 쓰인 것으로 밝혀지는 원명이 『뎡미가례시일긔(丁未嘉禮時日記)』인 <정미가례시일기>는 조정에서 만들어진 가례에 대한 기록으로, 궁체의 서풍이 듬뿍 풍기는 흘림체로 필사한 책이다. 이 글씨는 자모음의 짜임이 잘 이루어졌고, 글자간의 배열이나 크기의 조화로움이 나타나며 서선의 연결이 자연스러운 전형적인 궁체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궁체 소설류 책 중 글씨체가 으뜸으로 꼽히는 『옥원듕회연(옥원중회연)』은 전체가 21권으로 되어 있다. 이 필사본은 창작소설을 언해하여 정자체와 반흘림체로 세로로 배자하여 정돈되게 써서 제본한 책이다. 이 서체는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힘차게 보이고, 한 글자에서 자모음 사이 간격, 즉 짜임새를 조형적 구조에 맞게 나타냈다. 또한, 서선의 굵기 비례를 알맞게 나타내어 아름다 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이렇게 아름다움이 공인되는 궁체를 작품화하는데 선구자 역할을 하였던 서예가들의 궁체 찬미론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옛 어른들의 글씨를 들여다보노라면 야무지게 단정한 모습, 빳빳하게 강직한 지조, 반듯한 안정감, 맑고 시원한 청아함, 엄숙하여 신앙처럼 숙연함, 맥맥히 흐르는 강인한 인내심과 투지력, 청청히 흐르는 창해(滄海)의 위엄, 계곡의 물소리 같은 속삭임, 휘늘어져 마냥 방분(放奔)스런 자유와 멋, 정상을 향하여 백절불굴 치닫는 듯한 생명감 등 온갖 정감이 넘치는 필자의 개성과 인품을 느낄 수 있다.80) 이철경, 「한글서예의 어제와 오늘」, 『목화(木花)』 6, 동덕여대, 1977, p.52.

한글 궁체의 개척자적인 역할을 하였던 이철경은 이처럼 모든 아름다움의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궁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이어 한글서예의 금자탑을 이룬 김충현도 한글서예 특히 궁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다.

우리 글의 글자 모양은 굳세고 부드러운 자태가 있어 매우 아름답다.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같은 책의 글씨는 가장 예스럽고 굳세나 그 뒤 여러 백년동안 글씨가 변하여 궁체 같이 아름다운 글씨가 생기게 되었으니 이 궁체는 굳센 곳은 더욱 굳세게, 부드러운 곳은 더욱 부드럽게 우리 글자의 특별난 곳을 더 한층 드러내었으며, 정자와 흘림의 두 법을 적확히 나누게 되었으니 우리가 배울 글씨체로서 오직 이 한 체로 꼽을 따름이니라.81) 김충현, 『우리 글 쓰는 법』, 임오년 팔월. 1942년에 필사하였다.

궁체 중의 정자체나 반흘림체는 소설본, 가사 등을 책으로 제본하는데 많이 쓰였고, 문자 사이를 연결하여 쓴 흘림체는 상궁들이 왕비들의 편지를 대필할 때 많이 쓰인 서체이다. 그러므로 편지쓰기에 쓰인 서체를 한편에서는 봉서체(封書體)라고도 한다. 1800년대의 상궁들이 한글궁체를 극치에 이를 정도로 잘 썼는데, 대표적인 사람들로는 순조 및 그의 아들 익종시기에 천상궁, 서기이씨 등이 있고, 헌종 때 명성황후 대필언간을 잘 쓴 현상궁, 고종시기 명성황후 편지를 대필한 서희순 상궁, 하상궁 등이 있었다.

왕후들 중에도 한글서간체를 잘 쓴 사람은 우선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였다. 이어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1745∼1805)의 서간체는 흘림의 정도를 많이 나타내어 세로 폭이 큰 글자를 쓰면서도 서선의 굵기·방향·크기 등의 변화를 다양하게 나타낸 특징이 있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의 서간체는 글자간의 연결선을 힘차게 나타냈고, 글자의 세로선을 약간 휘어지게 굵고 힘차게 필력이 강한 남필과 같은 멋을 보여준다.

철종의 비 철인왕후의 서간체로 알려진 서간에는 ‘어필답봉셔’라고 사후당 윤백영의 추기(追記)가 있는데, 이는 당시의 상궁들의 서체와 동일하게 보여 친필이 아닌 듯하다.82) 박병천·윤양희·김세호, 『조선시대 한글서예, 예술의 전당』, 1994, p.138. 또 한글서간을 잘 쓴 명성황후는 궁체로 쓴 친필편지와 상궁이 대필한 한글편지를 많이 남겼다. 그 친필편지의 서체미는 전체적으로 비치는 장법상의 유연미, 결구상 점획구조의 조화미 등이 돋보이는 서체로 높이 평가된다.

또한, 한글서간체로는 임오군란으로 1882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어 갔다가 본국의 부인에게 보낸 <뎐마누라젼>이 있다. 19행으로 쓴 이 한글편지는 서예 작품으로 쓴 글씨 이상으로 손꼽히는 서체이다. 이 서체는 상궁들이 쓴 궁중서간체와도 아주 다른 대원군 자신의 한문서체 필의(筆意)를 살려 흘림으로 쓴 독특한 개성미가 나타나는 글씨이다. 세로 방향으로 문자간의 연결성을 나타내어 유연하면서도 힘차게 서선의 굵기의 변화를 크게 두었고, 문자 의 대소차이를 조화롭게 표현하였다. 특히, 각 글자의 세로선 굵기 차이를 조화롭게 나타낸 것이 특이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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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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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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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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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궁 대필 언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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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의 서성(書聖)이라고 할 만큼 추사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한글편지는 한문 작품 이상으로 서체미가 뛰어난 것으로 여러 연구논문들에 의하여 밝혀지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그의 언간체 의 편지는 부인과 며느리 등에게 쓴 것으로 40여 편이 있다. 이 한글편지는 추사 부친의 근무지에서 충남 예산, 서울 장동 본가 등으로 가정사를 돌보는 부인과 며느리에게 쓴 편지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역시 부인에게 보낸 편지로, 힘차고 조화롭게 자연스러운 필치가 나타나게 썼다. 부친 김노경과 모친 기계 유씨의 한글편지도 추사 서간체 못지않게 잘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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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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