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6 서예생활과 문방사우
  • 01. 개요
김미라

문방구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이다. 입학생에게 문방구는 학문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선물이고, 학문에 매진하는 모든 이에게는 필수 생활용품이며, 과거 학문의 시절을 추억하는 이에게는 추억의 기념품으로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조선시대 선비들 방에 놓였던 문방구 역시 이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실용과 장식, 추억과 기념이 되는 귀중품이었으며, 더불어 보다 특별한 의미까지 가지고 있었다. 학문의 산실이었던 선비의 거주 공간 문방(文房)에서 문방구는 단지 도구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썼던 선비들은 문방구에 뜻을 빗대어 선비의 자세와 유교적 가르침을 ‘명(銘)’이나 ‘잠(箴)’으로 남겨 평생을 교우하는 벗으로 대했으며,83) 유기옥, 「벼루 소재 명에 수용된 유가적 처세의 지표와 의미」, 『한국언어문학』 52, 2004. 이 글은 한국 문방제우 시문보에서 열거하는 한시들 중에 벼루를 소재로 하여 다룬 것으로 120여 수를 들고 있다. 이를 통해 문인들이 추구한 것을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벼루와 먹의 운용에 빗대어 자아성찰을 강조하고 갈아도 쉽게 닳아지지 않는 벼루 속성을 빌어 불변의 덕을 말하였으며, 견고하고 묵중한 벼루의 외형을 통해 이를 선비의 도와 연결하여 유학자들이 따라야 할 덕을 말하고, 벼루를 근본적으로 文과 質로 보아 교훈적으로 시사하는 바를 강조한 내용이다.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문방구들을 대를 물려 사용함으로써 선조가 이룬 성업을 잇고자 하였고, 또 선비들 미감이 묻어 있는 아름다운 형태들의 문방구는 그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다룰 문방사우을 비롯한 문방구들은 그러한 의미에서 서화문화사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문방사우를 비롯한 문방구들의 역사적 흐름과 전하는 유물을 되짚어 보는 과정은 서화문화 발달의 근간을 살피고, 유물 속에 투영된 선비들의 미의식과 글을 썼던 선비들의 서화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 또한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84) 李仁老의 『破閑集』에서 문방사우를 설명하면서 ‘문방’이라는 단어가 보인다고 한다. 물론 중국에서도 문방이라는 단어는 자주 보이는데, 송나라 葉夢得의 『避暑錄話』에 ‘세간에서 말하기를 흡주에는 문방사보가 있다. 문방사보는 書房에 소용되는 紙, 墨, 筆, 硯이다.’라고 해서 문방과 서방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즉, 문방은 글을 쓰는 방이며, 선비들의 거처였던 것이다(김삼대자, 「文房諸具」, 『朝鮮時代 文房諸具』, 국립중앙박물관, 1992, 참조). 또 글이 시작되면서 도구는 필수적인 것으로 문자생활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지필묵연(紙筆墨硯)을85) 중국에서는 紙筆墨硯이 아니라 筆墨紙硯이라고 한다. 『성종실록』 권64, 성종 7년 2월 25일 기록에도 명나라 사신이 필묵지연이라 적어 보내어, 통상 지필묵연이라 명명한 것과 차이를 볼 수 있다. 비롯한 다양한 문방구에 관해 그 역사와 전하는 유물들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하며, 선비들과 가장 가까웠던 존재로서의 미술적 가치와 거기에서 볼 수 있는 선비적 취향을 살피고자 하였다. 높은 품격과 우아하고 깨끗한 선비 문화의 한 부분이었던 문방구를 살펴 우리 전통 서화문화의 일면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2장에서 살필 종이에서는 그것을 담았던 고비(考備)와 지통(紙筒)을 함께 찾아보았다. 종이는 문서용이나 시전지와 같은 서간용의 종이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문방구 중에 가장 활용도 높았던 재료이기도 하였다. 갑옷과 같은 군사용이나 그릇이나 술병이나 물병 등 각종 일상생활용, 농가에서 사용된 맷방석이나 자리 등 농가용, 창호를 바르던 건축용, 화폐로 사용된 지전(紙錢), 지화(紙花)와 같은 의식용에 이르기까지 그 용도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이러한 예들은 본고와 거리가 있지만, 선비들이 쓴 글 용지들을 모아 만들어진 것들로 문방구 활용과 문화라는 측면에서 간단히 짚어 부가하였다. 또 종이와 관련하여 서화문화에 있어, 꾸밈의 아름다움이 있으면서 선비적인 묵향을 잘 전달했을 시전지에 관한 것을 덧붙여 설명하였다.

3장에서는 붓에 대해 다루었다. 글 쓰는 이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도구였던 붓에 대한 선비들의 요구는 다양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실제 전하는 붓의 예들은 많지 않으며 정확한 사용재료들 또한 알기 어렵다. 붓은 벼루나 먹에 비해서, 우리 고문헌에서 중국의 붓에 대한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경우가 더 많다. 그 중 우리 붓으로 ‘낭미 필’이라고 하는 족제비털로 만든 붓은 대륙에서도 유명하였다. 이 장에서는 붓의 역사와 종류, 필장(筆匠)에 대해서 다루었으며, 붓과 관련한 문방제구(文房諸具)로는 붓을 보관한 붓걸이와 필통을 들어 설명하였다.

4장에서는 먹과 함께 쓰인 묵상(墨床)과 묵호(墨壺)를 살피기로 한다. 먹에 관해서는 제조방법과 전하는 몇 예들이 연구되어 왔는데도 더 많은 서술을 하지 못하였다. 보다 많은 유물들이 선별되고 고찰된다면, 당시 글을 썼던 이들이 요구하였던 먹빛과 성질, 잘 마르지 않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도 엉기지 않았던 먹의 종류들에 대해 구체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5장에서는 벼루와 함께 놓이는 연적(硯滴)과 벼루를 보관하였던 연갑(硯匣), 연상(硯箱)을 포함하여 설명한다. 벼루는 그 시원과 함께 명문으로 시대를 알 수 있는 예를 들었고, 벼루와 연관되는 연적과 연갑, 연상에 관한 예들은 전하는 유물이 조선시대 것만 전해지므로 그것에 한정하기로 한다. 다른 장에서도 문방사우와 함께 관계된 유물들은 역시 조선시대에 한정됨을 미리 알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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