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1 무속의 역사적 전개
  • 05. 맺음말
서영대

한국 무속의 전개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것은 한국 무속사의 시대구분론에 기초한 것이다. 즉,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정치적 기능·사회적 기능·개인적 기능을 제시했고, 어떤 기능들이 발휘되느냐를 가지고 시대구분을 시도했다. 그 결과 세 가지 기능이 모두 발휘되던 원시∼삼국시대를 고대로 묶었고,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고 두 가지 기능만 발휘되던 통일신라∼조선 전기까지를 중세로 설정했고, 두 가지를 상실하고 개인적 기능만 남은 조선 후기 이후를 근세로 설정했다.

그렇지만 아직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다. 첫째, 예외적 현상의 처리 문제이다. 위와 같은 시대구분론에 대해 삼국시대 이후에는 무속의 정치적 기능이 완전히 없어졌는가? 또 조선 후기부터 무속은 사회적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는가? 등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통일신라 이후에는 무격이 국가의례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는가? 조선 후기 이후에는 무격의 사회에 대한 기능이 사라졌는가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러지 않은 경우들이 확인된다. 조선시대 국가 차원의 기우제 에 무격이 동원되며, 이때는 무격을 괴롭히는 폭무(曝巫)를 통해서가 아니라 무격의 종교적 능력의 발휘가 요구된다.97)최종성, 『조선조 무속 國行儀禮 연구』, 일지사, 2002, pp.235∼242.

시대구분론은 많은 사실들을 끌어 모아 역사의 체계적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외가 너무 많다면, 체계적 역사 이해는 실패한 것이며, 시대구분론은 타당성을 잃게 된다. 그런데 역사 현상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실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설명이나 이론의 정립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시대구분론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커다란 흐름이며, 주류이다. 약간의 예외적 사실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국가적 무격 기우만 하더라도 기우제의 주류가 아니다. 또 기우제는 정기적인 의례가 아닌 다급한 상황에서 행해지는 것인 만큼,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유교에서도 인정한다. 『시경』(대아 운한)의 ‘미신불거(靡神不擧)’, 즉 위급한 상황에서는 섬기지 못할 신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만을 가지고 조선시대에는 무격이 정치적 기능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시대구분론은 모든 사실을 만족시키는 설명 체계가 아니라 큰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 가설이다.

둘째, 16세기부터 지금까지를 하나의 시대로 묶을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조선 후기의 무속을 보면, 새로운 움직임이나 방향 모색이 있었다. 무격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하자는 운동도 있었다. 숙종 연간에 한 무격이 생불(生佛)을 자처하면서 새로운 이상세계의 건설을 추진한 것이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이러한 것들은 무속이 한국 문화에서 ‘시민권’을 주장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무속의 정치적·사회적 기능을 회복시켜보자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 자체로는 실패로 끝났으며, 미완에 그쳤다. 따라서 16세기∼현대를 하나의 시대로 묶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 조선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있다. 무속도 다소 완급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부터 지금까지를 하나의 시대로 설정한다면,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무속사에서 현대의 기점을 어디로 설정할 것이며, 그 시대적 특성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는 앞으로 남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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