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3 무당의 생활과 유형
  • 03. 무당의 여러 유형과 역할
  • 다른 나라의 강신무와 세습무
이경엽

강신무와 세습무는 계통이 다르지만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동일 지역에서 이들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호남에서는 세습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강신무 계통의 무당이 있어 이들도 나름의 무업 활동을 한다. 한 지역에서 강신무와 세습무가 공존하는 현상은 일본 오키나와나 미얀마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일본 오키나와 제도(諸島)에서는 세습무 계통인 노로(ノロ)와 샤먼인 유다(ユタ)가 공존하고 있다. 노로와 유다는 계통이 다르며 그 역할도 엄밀히 구분되고, 사회적 위상도 다르다. 노로는 무병 현상 없이 가계의 세습에 의해 무당이 되며 촌락의 의례를 주재한다. 노로는 부계로 계승하는 경향이 강하고 여자에 국한된다. 또 비교적 사회적 지위가 높고 그 계승권을 얻은 무녀가 역할을 승계하게 된다. 노로는 한국의 전라도 당골과 비슷한 면모를 띠고 있다. 사회 제도와 연관된 전승 기반이 있다는 점과 마을 제사를 주재하며 세습한다는 점이 유사하다. 하지만 당골이 사회적으로 천시되는데 비해 노로는 사회적 지위가 낮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유다는 무병을 앓은 후 유품을 찾고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된다. 이런 과정은 한국 강신무의 입무 과정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유다는 집안에 가미다나(神壇)를 만들어 모신다. 유다가 주로 하는 무업은 점을 치는 것이다. 신을 받아 점을 치는 모습은 한국의 점쟁이와 흡사하다. 강신할 때는 몸을 가볍게 떨고, 하품을 하거나 눈물을 흘 리는 등의 현상과 함께 신이 몸에 실린다. 이어 축원을 하고 신탁을 내린다. 오키나와의 유다는 한국 중북부 지방의 선무당이나 남부지방의 점쟁이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 선무당과 점쟁이는 해당 지역에서 주류 무당으로 활동하는 만신이나 당골과 달리, 의례를 주관하는 무당으로 행세할 수 없고 점복 중심의 무업을 수행한다. 이런 점에서 선무당과 점쟁이의 역할은 오키나와의 유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오키나와의 노로·유다는 각각 세습무·강신무라는 점에서, 그리고 두 존재가 같은 지역에서 공존한다는 점에서 호남지역의 당골·점쟁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또한, 당골과 노로가 마을굿을 포함해 의례를 전담하는 주류 무당인데 비해, 점쟁이와 유다는 점복 위주의 무업을 한다는 점에서도 서로 비슷하다. 두 지역의 무당의 성격과 존재양상이 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무당을 낫카도라고 한다. ‘낫’은 신령을 의미하고 ‘카도’는 부인을 지칭하므로, ‘낫카도’란 신의 부인이란 뜻이다. 미얀마의 무당은 대부분 여자들이고 강신무이다. 남자 낫카도는 여신의 남편이 된다고 한다. 낫카도는 신에게 빙의된 상태에서 심한 질병을 앓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신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신에게 빙의되는 시점은 굿의 현장인 경우가 많다. 낫카도는 내림굿을 통해 신의 아내나 남편, 여동생이나 아들이 되기도 한다. 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존재로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미얀마에는 강신무 이외에 세습무도 있다. 이들은 주로 특정 신을 모시는 신당이나 마을의 당을 맡는다. 마을의 축제를 주관하는 무당을 ‘낫억’이라고 부르는데 역시 세습된다. 신전을 관리하는 ‘난데인’ 역시 세습된다. 따운봉 형제신을 모시는 축제처럼 수만의 인파가 몰리는 큰 축제의 경우, 신전을 관리하는 난데인은 왕이 지명한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받았으므로 권력화되기도 한다. 난데인은 모두 강신 경험을 통해 낫카도가 된 사람들이다. 정확하게 부모에서 자식으로 내려온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폭넓게 혈연으로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 자식 가운데서는 딸이 우선적으로 난데인이 된다.

미얀마의 무당은 강신 체험을 거친다는 점이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리고 특정 신과 마을의 신당을 관리하고 그 축제를 주관하는 무당의 경우 역할을 세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운봉 축제의 난데인과 낫억은 오키나와의 노로를 연상시킨다. 오키나와의 세습무인 노로는 반드시 왕이 지정한 집안 출신의 여자가 되었다. 노로는 제사장 역할과 함께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굳건한 세습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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