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3 무당의 생활과 유형
  • 03. 무당의 여러 유형과 역할
  •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
  • 맹인 판수
이경엽

요즘에는 쉽게 볼 수 없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판수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보고서를 보면 맹인 판수의 역할에 대한 기록이 많이 등장한 아키바와 같은 일본인 학자는 판수를 무당과 함께 한국 무속 전문가의 대표적인 두 유형으로 보기도 한다. 판수는 남자가 대부분이며 이를 맹격(盲覡)이라 칭하지만, 여자도 있었고 여성의 경우 여복(女卜)이라고 불렸다.

판수는 맹인 독경 전문가다. 맹인이 아닐 경우 경객(經客), 경사(經師)라고 하며, 맹인일 때 판수라고 한다. 판수는 독경만 한 것이 아니라 점도 치고 나름의 일정한 의례를 집행할 줄 알았다. 이처럼 맹인이 점을 치고 경을 읽고 의례를 집행하여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액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우리나라 고유의 풍속이라고 한다. 대체로 맹인들은 호구(糊口)를 위해 복술(卜術)과 독송(讀誦), 벽사치병(辟邪治病) 의식을 배워 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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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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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맹인들의 단체인 명통사(明通寺)가 지금의 서울 중구 저동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맹인들 사이에는 위아래의 상하관계가 분명하고 독경축도(讀經祝禱)하는 행사가 정연하여 관아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맹인들은 삭발을 했기 때문에 맹승(盲僧)이라 하였는데, 이들 맹승들은 일반 가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라와 왕실을 위해서도 일을 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왕실을 위한 독경과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판수는 앉아서 북을 두드리며 경문을 읽어 축귀나 착귀를 한다. 경문을 통해 여러 신장들을 불러 이들로 하여금 객귀나 잡귀를 물리치거나 착수를 하여 치병하는 행위 등을 한다. 의례를 하게 되면 먼저 집안의 방이나 대청에 경당을 차린다. 경당에 제상을 마련하고 여러 신장들의 위목을 붙인다. 북을 천장에 매달아놓고 앉아서 두드린다. 그 장단은 단조로운 편이다. 평상복을 입고 고깔을 쓰는 정도로 무복은 단촐하다. 무구로는 산통·북·신장대·귀신 가두는 통 등이 있을 뿐 부채·칼·방울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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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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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수의 도교의 경문을 풍송(風誦)하는 독경의례는 해질 무렵에 시작해서 자정이 지날 때쯤 마친다. 사례에 따라 2∼3일 또는 일주일 넘게 경을 읽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여러 명의 판수가 와서 교대로 경을 읽는다. 신장대를 잡는 대잡이가 여러 명 있기도 한다. 악귀로 인하여 치병이 쉽지 않은 병굿인 경우 다른 의례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근에는 맹인 판수를 보기 힘들다. 이렇게 된 것은 맹인들이 더 이상 무업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다변화되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근대 교육이 실시되고 있고, 이전 보다 상대적으로 더 다양한 직업 선택의 기회가 제공되면서 무업에 종사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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