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2.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새비지 랜도어가 본 병굿
홍태한

새비지 랜도어(Savage-Landor)는 영국의 화가이자 여행가로 1890 년대에 중국과 조선을 장기간 여행한 후 1895년 런던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orea, Land of Morning Calm)』을 간행했다. 조선의 다양한 풍물을 기록한 랜도어는 굿, 특히 병굿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랜도어는 “귀청이 터질 듯이 고함을 지르고 손뼉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굿을 함으로써 병마를 쫓고 고통을 약화시키며, 재앙을 예방하고 애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기록하여 당대 조선인들이 모든 재난을 무속을 통해 해결하려 했음을 지적한다.

집 앞의 평지에서 행해진 병굿은 병든 여인의 몸에 든 악귀를 쫓아내는 굿으로 현재 행해지는 병굿과 닮은 점이 있다. 랜도어가 기술한 것을 정리해 본다.

무아지경 상태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무당을 중심으로 여러 기원자들이 둘러 앉는다. 더 많은 돈이 놓일수록 소리는 더 커지며 푸닥거리가 오랫동 안 지속된다. 가운데에 앉아있는 무당은 이따금씩 일어나서 원을 만들고 있는 한 여인에게 급작스레 다가가서 그의 몸 안에 악귀가 씌워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등을 격렬하게 두드리거나 흔들어댄다. 몸안에 무엇인가 들어와 있다고 느낀 무당은 공포 때문에 몸을 흔들고 손뼉을 치고 북을 두드리고 고함을 질러대는데, 결국 악귀를 내쫓은 후에는 무당이 특별히 요구하는 돈을 추가로 지불한다.

랜도어가 본 것은 강신무의 병굿이다. 병을 몸안에 악귀가 들어 걸린 것으로 본 것은 무속에서 보는 병 관념과 일치한다. 악귀를 쫓아냄으로써 병이 낫는다는 믿음은 지금도 전국의 무당굿에서 볼 수 있고, 부여의 단잡이굿은 이러한 병굿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랜도어가 기술한 무당의 동작은 축귀(逐鬼)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랜도어가 돈과 무당을 연관시킨 것은, 무당을 돈만 쫓는 사람으로 오인한 탓이겠지만, 실상 강신무굿에서 이러한 돈(별비)을 쓰는 것은 예사이다. 굿을 하기로 약속할 때 이미 별비를 얼마 쓰기로 약정하기 때문이다. 랜도어의 기록에서 이러한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은 19세기의 무당굿이나 21세기의 무당굿이나 별비의 관행이 남아있음이 보인다. 다만, 랜도어가 “무당은 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준 대가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 것은 오판이다. “조선의 신들은 매우 민감해서 중개인에게 얼마간의 돈을 지불함으로써 그것을 고칠 수 있다.”고 한 것도 한국 무속의 신관념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중개인이다. 앞뒤 문맥으로 보아 굿을 떼는 이를 가리키는 이 용어는 한국 무속의 관례를 서구인의 시각에서 해석한 것이다. 현재도 굿을 주관하는 무당을 당주무당, 남의 굿에 불려가는 무당을 청송무당이라고 구분하고 있으며, 당주 무당은 의뢰자의 요구에 따라 굿을 준비하고, 소망을 신령에게 기원하는 역할을 하여 자칫 중개인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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