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2.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프랑뎅이 본 황해도 굿
홍태한

1902년 파리에서 간행된 『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En Corée)은 프랑스 외교관 프랑뎅(H. Frandin)이 보고 기록한 내용을 전문적인 문필가 보티에가 정리 간행한 자료이다. 이 책의 9장이 ‘무당의 굿판과 춤’으로 프랑뎅이 본 병굿의 한 장면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프랑뎅은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무시무시한 불협화음을 듣는다. 이로 미루어 보아 타악기 중심의 강신무굿이고,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행해지던 황해굿임을 알 수 있다.

프랑뎅이 마당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눈을 감은 채 악기를 두드리고 있는 악공이었고, 그 앞에는 온갖 빛깔의 얇은 천을 두른 옷을 입은 여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한창 신명이 오른 강신무굿판이다. 무당은 한 손에는 부채를 들었고 다른 손에는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상반신을 뒤로 젖힌 채 우아하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무당은 넘을 수 없는 장벽 속에 있는 존재로 여겼다고 한다. 대나무 막대기는 아마도 황해굿의 무당이 굿을 진행하면서 늘상 들고 있는 서낭대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선회하는 장면은 황해굿의 무당이 신명이 지폈을 때 빙빙도는 연풍돌기를 가리킨다. 이러한 묘사에서 프랑뎅이 본 굿이 황해굿의 하나인 병굿임을 알 수 있다. 프랑뎅의 묘사를 인용한다.

갑자기 무당이 멈추었다. 그 여자는 목구멍에서부터 쥐어짜는 듯한 쇳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는 위협적이고 위풍당당한 부르짖음과도 흡사했다. 젊은 사람들이 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무당이 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마당 어두운 구석에서 형체가 불분명한 어떤 물건을 잡아내었다. 그것 은 짚을 둥글게 엮어 만든 악귀의 표상물로 무당이 몇 마디 엄숙한 주문을 내뱉자 악귀는 환자의 몸에서 쫓겨나와 재빨리 그 속으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부랴부랴 긴 꼬리를 가진 그 괴물을 에워싸고 들판으로 끌고나가 주위를 돌면서 춤추고 고함을 지른 다음 그 물건을 불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짚으로 만든 악귀의 표상물은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제웅을 말한다. 지금도 제웅을 만들어 그 속에 나쁜 병귀를 잡아 옮긴 후 태우는 의식이 있어 과거와 현재의 무속이 상통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물건을 불태우는 것은 현재 전국의 무당굿에서 볼 수 있는 굿의 종반부와 성격이 상통한다. ‘뒷전’, ‘소진’이라는 이름 아래에 굿에 사용한 것들을 태우는 의식이 남아있다. 악귀가 든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에 태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프랑뎅은 온전하게 굿을 다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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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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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쇳소리를 내자 곁에 있던 젊은 사람이 마당 구석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잡아내어 그 물건으로 악귀가 그 속으로 옮겨갔다고 기술한다. 실제로 악귀가 눈에 보였을 리 만무하나 보티에는 굿판에 몰입한 나머지 악귀가 병자의 몸에서 쫓겨나온 느낌을 받은 것이다. 프랑뎅은 무당에게서 어떤 영적인 힘이 발산되는 것 같다고 하며 이 영적인 힘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고 기술하여 무속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프랑뎅은 무당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무당의 부채 위에 엽전 몇 개를 놓아준다. 그런데 무당이 그 돈을 선뜻 받은 모양이다. 프랑뎅은 돈이 오가는 이러한 식의 씁쓸한 결말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국의 굿판에서 돈 몇 푼이 오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세밀하게 굿을 관찰하고 묘사한 프랑뎅이 동전 몇 개에 무당에 대 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음에서 그 역시 서구인임이 드러난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대목에서 무당이 선뜻 서구인에게 부채를 내밀고 동전을 받아갔다는 사실이다. 낯선 외국인이 시종 옆에서 굿을 지켜보았을 터인에 무당은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그를 굿 구경하는 다른 조선인과 동등하게 대우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채를 내밀고 별비(別備)를 요구했는데, 무당은 비교적 열린 시각을 가졌지만 프랑뎅은 엉뚱하게 돈에 대해 주절대고 있으니 누가 더 관용적인지는 이미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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