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2.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바츨라프 세로세프스키의 인류학적 시각
홍태한

세로세프스키는 러시아의 인류학자로 1902∼1903년에 걸쳐 조선을 여행한 후 여행기를 남겼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의 종교라는 항목 아래에 무속에 대해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먼저 그는 한국 무속에서 모시는 36가지의 신령에 대해 언급한다. 이 중 제석을 삼신제석의 증조할아버지라고 보면서 출산의 신으로 설명한 것은 오류이다. 성주·지주·조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후 비숍이 자신의 책에서 길게 인용하며 설명한 랜디스의 신령 체계를 다시 가져온다. 랜디스가 체계화시킨 한국 무속의 신령 체계가 이처럼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연구자들이 모두 서구인이기 때문이다. 낯선 문화를 접한 그들이 낯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만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정리해 놓은 기준을 가져와 그것에 맞추는 것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결국 서구인들은 한국 무속을 남이 만들어 놓은 잣대를 바탕으로 한 주관을 가지고 보았다는 의미이다.

세로세프스키의 주장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무속에서 여성의 역할이다. 남자 무속인이 중요한 의례를 거행하려면 여자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시베리아 북부의 모든 민족들에게 공통된 현상이라고 한 것은 탁견이지만, 이것이 불교의 영향이라고 본 것은 잘못이다.

관왕묘(關王廟)에 대한 짧은 언급 이후 다른 서구인들이 한 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제물에 대해 언급한 것은 세로세프스키 저작의 가치이다. 그는 제물로 보통 쌀·채소·전병·당과·술 등이 올라가고 규모가 큰 제례에는 뿔있는 가축·돼지·양 등의 짐승을 잡아 바친다고 했다. 실제로 이러한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친 것이 서울 무속의 일반적인 양태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상차림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인류학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궁중과 무속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기록되었다. 특히, 명성황후와 무속의 친연성에 대해서는 현재 서울 무속에 종사하는 무당들도 언급하는 사실이지만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세로세프스키의 글에 명성황후가 무속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스스로 무당과 판수를 곁에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1904년에 서울을 점령한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왕궁에 있던 무속인들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바츨라프 세로세프스키가 한국 무속에서 여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것, 무속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하면서 제의의 종류, 상에 올라가는 제물까지 언급한 것은 글쓴이가 인류학자로 꼼꼼하게 무속 현장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며 또한,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