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2.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로버트 무스가 본 무속
홍태한

로버트 무스는 1893년 조선으로 건너와 25년간 한반도 전역에서 복음 활동을 전개한 선교사이다. 로버트 무스는 자신이 조선에서 경험한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는데, 이 책은 가히 조선학개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의 모든 것을 개괄적으로 정리했다. 조선의 지리와 산천을 소개하고, 특산물을 소개한 후 간략하게 역사를 정리하였다. 그런 다음에는 남성과 여성의 풍속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데 오랜 지배자 토속 신앙을 하나의 장으로 설정하여 기술하고 있다.

로버트 무스는 이 장에서 무당과 판수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무당은 대부분 여성으로 가장 천하고 가장 버림받은 직종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조선인들이 종교적 감성이 매우 뛰어나 신분이나 교육 정도에 관계 없이 어려움에 처하면 무당을 불러 일을 맡기기 때문에 조선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것이 무당이고, 판수는 대개 장님으로 힘으로 혼령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판수는 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불행한 혼령들을 심하게 때려 다스린다고 한다.

로버트 무스는 판수가 어떤 식으로 혼령을 다스리는지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그에 의하면 다루기 어려운 혼령은 병에 가둔 뒤 복숭아나무로 만든 뚜껑으로 단단히 밀봉한 후 무당에게 주어 멀리 땅에 묻게 하였다. 판수가 많아서 서울 거리에서는 대나무 가지로 길을 더듬어 가며 큰 소리로 고객을 부르는 모습과 병자에게서 악령을 쫓아달라고 부탁하러 온 사람에게 이끌려 서둘러 길을 가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고 했다.

로버트 무스는 선교사답게 무당굿을 상세하게 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두 사례를 관찰하고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이러한 내용을 집필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극히 주관적인 첫 인상과 같은 기술이 이어지고 있다. 무당을 돈과 연결시켜 가치를 폄하한 것은 다른 서구인에게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서구인의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특히, 로버트 무스는 하느님이 모든 혼령 중에서 가장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에게 주목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조선인이 섬기는 신앙이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극히 선교사다운 발상으로 그에게 있어서 조선의 토속 신앙은 연구의 대상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대상이 더더욱 아니다.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쁜 신앙에 불과할 뿐이다. 25년 간 조선을 누빈 그였지만, 기독교를 믿는 서구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결국에는 조선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가 25년 간 자전거로 조선의 전역을 누비면서 선교 활동을 전개했고, 감리교 신학대학과 종교감리교회의 탄생에도 큰 역할을 하여 한국 기독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 민속을 제대로 이해한 연구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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