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3. 무속, 굿 관련 사진과 그림
  • 무당을 그린 여러 그림과 기산풍속화
홍태한

사진과 함께 서양인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는 그림이 있다. 특히, 기산풍속화에는 한국의 풍물이 복잡하지 않고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서구인들에게 대단히 환영받았다. 기산풍속화가 유럽과 아메리카의 여러 미술관에 소장된 연유가 그 때문이다.

개화기에 간행된 그림 중 무당을 그린 것을 보자. 부채와 방울을 들고 머리를 동여맨 무당의 모습은 간단한 선으로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으로 해학적이다. 그 해학이 무당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무당을 폄하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굿을 할 때 저렇게 길게 머리를 늘어트리지 않는다. 굿을 시작하게 되면 무당은 여성이라는 관념을 넘어서서 초월적인 존재로 변모하므로 항상 무당은 머리를 단정하게 올리고 엄숙한 모습으로 굿을 한다. 그러나 이 그림 속의 무당은 머리를 늘어트려 여성이고 인간임을 드러내었다.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당은 사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경거리였을 뿐이다. 구경거리로 존재하는 무당이다보니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무당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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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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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부채와 방울을 저렇게 한 손에 드는 경우는 없다. 양손에 나누어 들고 굿을 진행하는 것이 법도인데 이 그림은 법도를 무시하고, 무당을 하나의 희극적인 대상으로 그려놓고 말았다. 사진과 동일하게 무당을 왜곡하여 바라보는 시선이 나타난 그림이다.

무당굿을 그린 그림으로 엘리자베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무당>이 있다. 자매 사이인 언니 엘리자베스 키스와 동생 엘스펫 로버트슨 스코트(Elspet K. Robertson Scott)은 1919년 한국을 여행하면서 언니는 그림을 그리고 동생은 글을 썼다. 동생은 글에 무당굿을 보러 가게 된 연유와 무당굿이 열린 곳, 무당의 모습 등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했다. 서울의 성밖, 계곡을 낀 높은 곳에 있는 무당집은 방이 모두 4개로, 그 중 가장 넓은 곳에서 굿이 열리고 있었다. 굿상에는 여러 음식이 차려져 있고 기름종이로 만든 조화가 꽂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울굿 상에는 종이꽃을 반드시 꽂으니 과거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굿거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주무는 쉰이 넘은 여자 무당으로 얼굴에 곰보자국이 나있고 뚱뚱한 체구이다. 굿을 부탁한 재가집이 옆에 있는데 ‘혼을 불러 굿을 해 주는’이라는 말에서 이 굿이 진오기굿임이 드러난다.

굿거리를 시작한 무당은 청치마에 청색 겉옷, 노랗고 흙색의 무늬가 짜여진 얇은 옷을 걸쳤다고 하는데 여기에 가장 가까운 것은 노란색 몽두리이다. 그렇다면 이 거리는 조상과 관련이 있는 거리이다. 무당이 양손에 종이를 들고 춤을 춘다고 기술된 것으로 보아 이 거리는 <가망거리>가 분명하다. 손에 든 것은 가망종이이다.

<가망거리>는 조상을 모시기 전에 가망신을 청배하는 거리로 가망신은 굿문을 열고 여러 조상을 굿청에 좌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시봉드는 여자가 무당에게 방울과 부채를 건네주고 어깨 뒤로 노란색의 긴 비단 천을 둘러주었다. 이 긴 비단천은 <가망거리>에 이어 여러 조상을 모실 때 사용하는 ‘눈물수건’이다. 빠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던 무당은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뛰다가 마침내 빙빙 돌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때 울린 장단이 서울굿의 장단 중 하나인 당악장단일 것이다. 춤을 멈춘 무당이 재가집에게 다가가 공수를 주기 시작했다. 질문과 대답이 한참 이어지더니 재가집은 무당의 말을 꼭 믿는 듯이 보였고 마침내는 울음을 터트렸다. 무당의 동작이 점차 느려지더니 가볍게 흘러가는 듯한 동작으로 바뀌고 마침내 춤이 멈추고 음악도 멈추었다.

굿이 끝나자 무당에게 점을 치는 동전이 건네지고 무당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해소해 주는 점을 칠 준비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인굿은 곧 마을굿이다. 굿을 의뢰한 이는 실제 굿이 연행되면서 공수를 듣지만, 굿을 구경온 이들은 굿거리 중간 중간 휴식 시간에 상담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이 이날 굿을 본 스코트의 기록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스코트는 선입견 없이 굿을 보았고, 비록 무복이나 무구의 이름은 몰랐지만 최선을 다해 굿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실제 현장에 있는 듯한 표현은, 매우 열심히 굿을 보았음을 알려준다. 특히, 무복에 대한 묘사나, 춤동작에 대한 묘사는 이들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다. 다른 서구인들은 모두 무당굿을 본 것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이들처럼 무복이나 무구, 춤동작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엘리자베스가 그린 그림은 상당히 모호하다. 장구와 제금, 그리고 피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한양굿이 분명하다. 그런데 악사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내외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전통 한양굿의 모습은 아니다. 전통 한양굿이라면 장구와 피리, 제금이 나란히 앉아서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신윤복이 그린 <무녀신무>에 있는 악사를 보자. 장구와 악사가 나란히 앉아 있는데, 이는 굿을 하는 무당을 바라보고 있어야 장단을 맞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가 그린 그림의 악사가 다른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비정상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매우 모순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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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그린 무당
엘리자베스가 그린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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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무녀신무
신윤복 무녀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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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이상한 것은 무녀의 복색이다. 글에서는 상세하게 무녀의 복색에 대해 묘사했는데 막상 그림은 그렇지 않다. 머리에 큰머리를 얹은 것은 이 굿이 진오기굿이어서 그렇다. 부채와 방울을 양손에 든 모습은 실제 굿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그런데 무녀의 복색이 격식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치마는 서양식 치마일 뿐이다. 전통 무복의 치마는 그림처럼 겹이지지 않는다. 이는 그림을 그린 엘리자베스가 정밀하게 관찰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표현한 것이다. 발동작은 무속의 춤과 맞지 않다. 글에는 뛰다가 회전하는 춤으로 묘사 가 되어 있는데 그림의 무당은 이상한 춤을 추고 있다. 서울굿에서 그림처럼 한 발을 딛도 또 한 발을 앞으로 드는 춤은 없다.

두 자매가 쓴 글에는 굿을 바라보는 서구인의 이중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하나는 관찰이고, 다른 하나는 왜곡이다. 이국적인 무당굿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글로 남긴 것은 타당한 태도였지만, 그림은 순전히 자기 식으로 그려 놓았다.

서양에 가장 널리 알려진 풍속화로 김준근이 그린 기산풍속화가 있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된 기산풍속화는 2004년 조흥윤이 단행본으로 간행하면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있다. 여기에 무속 관련 그림이 몇 장 있다. 이 책이 간행되면서 기산풍속화가 여러 나라에 소장되어 있으며 아울러 한국에도 상당한 자료가 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기산풍속화는 숫자가 1천 점을 상회한다. 기산풍속화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숭실대학교에서 개최되기도 했을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무속 관련 그림이 몇 점 있어 눈길을 끈다. 함부르크 박물관에 소장된 이 두 편의 그림은 배경을 생략하고 오로지 굿하고 독경하는 사람만 그려놓았다. 무녀굿에는 장구잽이 하나와 징잽이 하나가 반주를 하고 있고 부채와 방울을 든 무녀가 굿을 한다. 머리에는 신띠를 둘러 오늘날 굿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복색은 쾌자를 입었다. 간단한 굿상이 차려져 있고, 상 옆에 있는 고리짝에는 신복이 담겨있다. 4명의 부녀자가 둘러서서 굿을 구경하고 있다. 일단 음악을 맡은 이가 있고, 선굿을 하는 무당이 있어 기본적으로 무당굿하는 모습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등장 인물들의 얼굴 모양으로 모두 낯선 느낌을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조선인이라는 느낌보다는 조금은 가공하고 꾸며놓은 듯한 얼굴들이다. 김준근은 이 그림을 통해 조선의 풍속을 사실대로 전달하면서 인물상에 변화를 조금 주었다. 그림의 풍속은 조선이지만 그 풍속의 주체인 사람은 낯설다. 이 그림에서 풍속은 조선의 풍속이 될 수 있지만 인물은 조선 사람이 아니다. 김준근이 이렇게 그림을 그린 연유는 분명하지 않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김준근은 몇 차례에 걸쳐 동일한 소재의 그림에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변화를 준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무당굿 그림만을 놓고 보면 서구인의 기호에 맞추는 듯하다. 사실적인 인물보다는 꾸며 놓은 인물이 주는 색다른 느낌이 이국적인 풍물과 어울려 서구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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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화 무녀굿
기산풍속화 무녀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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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화 판수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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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수독경도 동일하다. 병풍을 치고 병풍에는 넋전을 걸었으며 병풍 옆의 쌀에는 오방신장기가 꽂혀 있다. 북을 달아 놓고 징과 함께 독경을 한다. 오른쪽의 사내는 신장대를 들고 있다. 잠시 후면 신장대가 떨면서 신이 내릴 것이다. 이를 한 명의 남자와 2명이 여자가 지켜본다. 넋전이 걸려있고 신장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망자의 혼령을 청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당대의 판수가 어떤 방식으로 독경을 하고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인물은 역시 가공 인물이다. 2명의 여자나 남자들 모두 표정이 조선인이 아닌 꾸며낸 얼굴들이다. 김준근은 무당굿과 동일 하게 판수독경에도 풍물은 사실적으로 전달하되 인물은 서구인의 기호에 맞추어 가공한 것이다. 인물이 가공되었음은 김준근이 그린 신앙관련 다른 그림과의 비교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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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풍속화 예방무
김준근 풍속화 예방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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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풍속화 점치는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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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치는 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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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풍속화 굿하는 무녀
김준근 풍속화 굿하는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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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풍속화 맹인독경
김준근 풍속화 맹인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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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5점의 그림은 함부르크박물관의 기산풍속화가 공개된 후 알려진 작품으로 모두 국내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우선 색채를 사용하지 않아 앞의 두 점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돋운다. 무엇보다도 인물이 훨씬 사실적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당시의 조선인을 그대로 그려 풍속과 함께 당대를 그대로 표현하였으므로 사실성이 높다.

김준근의 성향으로 보아 흑백으로 그린 이 그림은 함부르크박물관에 소장된 그림보다 앞서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준근은 일단 흑백 풍속화를 먼저 그렸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다시 약간의 가공을 하여 색채를 사용한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이 지금 유럽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김준근의 그림에 열광했다고 한다. 이는 프랑스·영국·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미국 등에 기산풍속화가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한 그들의 욕구에 김준근이 맞추었다면 이 역시 앞에서 살펴본 여러 서구인들의 무당굿 관찰 기록처럼, 김준근은 서구인처럼 관찰자적인 시각으로 풍속을 바라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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