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1 한국 건축의 변화 양상
  • 02. 한국 전통 건축 문화의 형성
  • 한국 건축을 이루는 요인
  • 2. 인문적 요인
천득염

대륙에 붙어있는 작은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은 일부 일본인 학자와 침략주의에 아부하는 어용학자에 의해 한국의 역사에 숙명적인 불행의 굴레를 씌운 요인으로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는 반도이지만 본래 우리 조상들이 실제로 역사 창조의 주무대로 활동한 곳은 북위 40도선을 하한으로 하는 그 이북, 즉 오늘날 만주지역과 송하강 이남 시베리아 및 연해주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예컨대 이러한 사실로만 보아도 한민족의 역사를 부수성·주변성·사대성·정체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반도적 성격의 역사로 규정지으려는 지리적 결정론은 식민지하에서 우리 민족의 열등의식을 조장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은 오히려 해양과 대륙을 이용하여 발달할 수 있고 세계사에서 그리스와 로마 등 반도국가가 세계를 지배하였던 예가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 숙명적으로 그들의 침탈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의도하는 편향적인 시각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고고학적으로 볼 때 약 50만 년 전부터라고 하며, 청동기시대에 이르러서 나라를 건국하였다. 우리나라의 개국에 대한 이야기로는 단군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제왕운기』·『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 등에 소개되어 있으며,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근원이 되었고,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뿌리로 간주되었다. 또한, 단군 왕검이 세운 조선은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여 고조선이라고 부르는데,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이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B.C. 2333년 10월 3일을 개국의 기원으로 보고 개천절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인류학적으로 몽고인종에 속하고 언어학적으로는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한민족은 그 품성에 있어서는 깨끗하고 맑은 하늘, 아담한 풍토와 자연환경 등으로 인하여 저절로 결백청초를 상징하며 흰빛을 사랑하게 되는 백의민족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으며, 소박하고 아담하며 청초한 문화적인 특성을35)윤희순, 『한국미술사연구』, p.27. 지니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민족의 품성을 근간으로 발전한 한국의 문화는 동양 문화의 원시적 기반을 형성하였던 동북아 문화에서 요람기를 보내고, 중국고대 한(漢)문화를 배우고 불교 문화로 성숙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이를 순화, 집약, 동화시켜 민족 고유의 문화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요람기에 있어서는 원시 민간신앙에 의한 자연숭배 및 영혼불멸사상 등으로 죽은 자를 후장하는 풍습이 있어서 수많은 거석 분묘들을 남겼으며, 중국고대의 한문화에서 배운 목조건축가구의 기본형식은 현재까지도 한국건축에 계승하여 재현되고 있다. 특히, 음양오행설, 풍수지리설, 천문사상, 유교 및 도교 등의 동양사상과 철학은 건축문화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36)윤장섭, 『한국건축사』, 동명사, p.15.

풍수지리사상과 도참사상은 삼국시대 말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고려 및 조선시대에 번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37)최창조, 『한국의 풍수』, 민음사, 1984.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신도읍지의 결정, 궁궐의 배치는 물론 사대부들의 택지 선정과 건축 배치, 평면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문화는 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최고조에 달했으며 현존하는 고건축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사찰을 유산으로 남겼다. 하지만 불교활동의 폐단이 나타나자 조선시대에 와서는 불교가 정책적으로 억압되어 불교건축이 일시적으로 쇠퇴하였고, 상대적으로 유교가 융성하여 문묘와 향교 및 서원들이 경향 각지에 건축되었다. 숭유억불의 결과 각 도읍에는 모두 향교가 설치되었고 지방에는 많은 서원이 설치되었다. 향교에는 반드시 공자묘인 대성전과 지방 향리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명륜당이 있었다.

이러한 유교문화 역시 조선시대 후기에는 그 폐해로 인하여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와 조선시대 여러 차례에 걸친 외적의 침입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아름다운 건축 문화 유산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한말에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일제에 의한 강점은 민족의 정체성 상실과 외래문화의 무비판적 도입이라는 수모의 역사를 야기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그간의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외래문화의 영향을 집약하고 이를 순화, 동화하여 한국 고유의 문화로 발전시켰으며,38)김원룡, 『한국미술사』, p.4. 건축 문화에 있어서도 독특한 발전을 가져왔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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