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1 한국 건축의 변화 양상
  • 03.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
  • 전통사상이나 예법에 입각한 건축
천득염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왔던 전통사상은 불교와 유교를 포함하여 도가사상과 풍수지리설, 도참사상 등 다양하다. 특히, 풍수지리설은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고려 및 조선시대에 번성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풍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많은 사찰건립에 있어서도 풍수에 의해 택지를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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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의 개조 도선국사 진영
풍수지리의 개조 도선국사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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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서 신도읍지의 결정, 궁궐의 배치는 물론 사대부들의 집자리 선정과 건축배치, 평면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대부들은 집을 지을 때 집터의 선정은 물론 집의 배치에 있어서 좌향을 중시하였고 안방, 부엌, 대문, 측간의 위치에 따라 각 방위에 부여된 음양오행에 의하여 집의 길흉을 논하였다. 집의 평면은 길상문자로 생각했던 ‘口字’, ‘日字’, ‘月字’, ‘用字’의 형태를 따라 짓게 되었다. 한편, 나쁜 ‘尸字’, ‘工字’는 채택하지 않았다, ‘尸字’는 시신을 뜻하여 나쁘고, ‘工字’는 부수고 두드리는 극히 불안정함을 뜻하기 때문에 금하였다.

도가사상은 자연의 실상을 깨달은 참 지혜를 통하여 무위의 삶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삼국시대에 정원을 조성하는데 있어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음양오행론에 근거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네모난 연못인 방지(方池)와 둥근 섬에 삼신선산(三神仙山),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을 도입하여 도가사상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도가사상은 건축조형에 영향을 주었는데 고려시대부터 사찰 건축에서는 도교 등 토속신앙을 수용하여 산신각, 칠성각 등을 건립하였다. 또 강선루·승선교·만선교 등 건축물의 이름을 신선과 관련하여 지었고 더욱이 조선 후기 사찰에서는 용두와 봉두를 조각하여 장식하기도 하였다.45)주남철, 앞의 책, p.14.

음양오행론이 건축에 미친 영향은 풍수지리와 함께 크게 작용하였는데 건축의 색채사용에 있어 기본원리로 작용하였다. 즉, 동방을 뜻하는 청(靑), 서방의 백(白), 남방의 주(朱), 북방의 현(玄), 중앙의 황(黃), 이상의 다섯 색이 단청의 기본색으로 사용되었다. 또 음양오행론은 자연환경과 건축의 형태 해석에도 깊이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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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의 이상적 국면(局面)
풍수지리의 이상적 국면(局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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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비기(道詵秘記)』에 의하면 ‘산이 별로 없을 때에는 높은 정자인 고루(高樓)를 짓고 산지에서는 낮은 집인 평옥(平屋)을 짓는다 하였다. 고루는 양이고 평옥은 음이라, 우리나라가 산이 많은 지형이라 양인데 고루를 짓는다면 이는 서로 상충되어 좋지 않으니 음인 평옥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하였다.

또한,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예(禮)로 이는 하나의 구별의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군신간의 구별, 부자간의 구별, 남녀 간의 구별을 말하는 내외법, 노소간의 구별, 반상의 구별로 여기에서 구별이란 각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이며 질서의 표현이다. 이러한 질서의식은 여러 가지 건축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즉, 정전 앞의 품계석, 정전의 월대(月臺), 기단의 크기나 높이, 다포건물과 주심포, 익공건물의 차이, 안채는 팔작지붕으로 하고 부속채는 맞배지붕으로 하는 지붕형식의 구별, 주된 건물과 부속 건물 등에서 위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녀노소의 공간 구분과 반상의 구분이 공간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주거공간의 예법은 상류주택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 상류주택에 영향을 끼친 요소들은 크게 가족구조 및 제도, 지리 그리고 사회 신분제도로 크게 나누어지며 이는 구체적으로는 조상 숭배정신, 대가족제도, 남녀유별, 충효사상, 풍수사상, 신분과 나이에 따른 상하구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상류주택은 특히 신분과 나이에 의한 상하구별, 남녀의 유별, 조상 숭배정신과 같은 유교적 예제에 의해서 공간이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가장생활권과 안채를 중심으로 한 주부생활권, 행랑채를 중심으로 한 하인들의 생활권 그리고 사당을 중심으로 한 조상 숭배공간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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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최대석 가옥의 안담과 문
강릉 최대석 가옥의 안담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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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유별은 유교의 다른 어떤 덕목보다도 우리네 상류가옥 건물 배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부일 지라도 남녀는 각기 다른 공간 에서 생활하였으며 이를 위해서 한 집은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남자의 공간과 안채를 중심으로 한 여성의 공간으로 분할되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담을 치고 문을 달았으며 이 문이 닫히면 두 세계는 완전히 차단되었던 것이다. 사랑채는 가장이 기거하며 손님을 맞는 곳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있게 표현되었다. 사랑채 앞에는 잘 가꾸어진 나무나 연못을 두어 인격을 닦는데 도움이 되게 하였고 사랑채 안에 다락집으로 만든 누마루를 두어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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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 주택의 공간구성 밀양 손씨 고가
상류 주택의 공간구성 밀양 손씨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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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는 안채는 대문에서 가장 먼 쪽으로 자리 잡아 외부사람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일반적으로 ㄷ자 모양이나 ㅁ자 모양으로 하여 폐쇄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처럼 양반주택의 특성은 강한 폐쇄성을 들 수 있다. 반상의 구별이 엄격한 사회에서 양반으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의 일상생활이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폐쇄적인 형태가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주택 내의 건물과 공 간들이 높은 담장이나 건물 자체로 철저하게 가려지는 경우가 많고 솟을대문이나 화려한 담장을 사용하여 그들의 권위를 표현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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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솟을대문
안동 하회마을 솟을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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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구례 덕천사의 사당
전라남도 구례 덕천사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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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양반주거, 특히 종가집에서는 반드시 사당인 가묘(家廟)를 만들었다. 양반주택에서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신성한 장소로서 외부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가장 먼 쪽으로 배치되었고 담장과 대문을 설치하였다. 가묘는 예제에 따라 안 채보다 뒤쪽, 엄밀하게 말하면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상류주택에서는 조상을 받들기 위한 공간으로 사당 외에 가빈방[家賓房, 가빈방은 전라도지방, 경상도에서는 여막방(廬幕房)]이라고 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이 방은 육친이 사망했을 때 시신이 담긴 관을 서너 달 동안 모셔두는 공간으로 후손들은 평시와 다름없이 조석상식을 차리며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상과 같이 조선시대 양반의 주택은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 엄격하고 위계적이며 의례적인 생활로부터 계획된 것이다. 또한, 경제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귄위를 표현하기 위한 큰 규모와 품격있는 장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서민의 주거처럼 지역적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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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 고택(해남 녹우당) 입구
고산 윤선도 고택(해남 녹우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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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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