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1 한국 건축의 변화 양상
  • 03.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
  • 친근감을 주는 인간적인 척도의 사용
천득염

우리 건축의 건축미를 말할 때 단아함과 순박함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단아함은 규모가 작은 건물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고 순박함 은 순후한 우리민족의 성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중국 건축은 아무래도 넓은 대륙답게 건물이 장대하나 한국 건축은 사람을 기본적인 척도로 하여 적당한 크기로 건축하였다.46)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뷰지에는 자연의 살아있는 물체의 비율을 연구해서 고유의 모듈라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가 제안한 모듈라는 ‘인간적 스케일에 부합하는 조화로운 칫수, 그리고 건축과 기계의 생산을 위해서 범세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제안된 것이다. 또한, 산지가 많아 국이 좁고 좌식생활을 한 탓으로 넓은 공간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건물은 그 기능과 환경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건축은 지나치게 크지 않고 작지도 않아 적당한 크기이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와 적절히 어울리는 크기로 자연스럽고 친근감을 준다. 필요 이상으로 크다거나 호화로워서, 혹은 너무 적어 오히려 이질적이고 건축적 의미를 덜 하는 경우가 드물다.

오르는 데 불편함이 없는 기단과 툇마루, 방안에서 턱을 괼 수 있는 높이의 머름, 창호의 넓이와 높이, 기둥의 굵기나 높이, 들보의 크기, 천장높이, 지붕의 경사나 돌출깊이, 평면공간이나 체적공간의 양적 크기 등에 있어 아담하고 단아하여 인간적인 척도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광대한 대지를 지닌 중국 건축의 과대함이나 비바람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일본 건축에 비하면 노년기인 산의 형상이나 자연환경이 주는 양감에서 건축이 그다지 크지 않는 인간적인 척도를 이루게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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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진남관
여수 진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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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들기에 편한 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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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 의성 김씨 남악종택 안채 마루
경상북도 예천 의성 김씨 남악종택 안채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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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건축도 신라시대의 황룡사는 탑의 높이가 225척, 금당의 길이가 150척이나 되었고, 고구려의 안학궁지, 백제의 미륵사지,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경회루나 화엄사의 각황전, 여수의 진남관처럼 위용을 자랑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당연히 크고 웅장하게 하였지만 일반적인 규모는 대개 인간적인 크기로 조영되었다.

벼슬을 하였던 자들이 크고 넓은 주택에서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과 달리 조선시대에 서울로 벼슬을 하러 오면 대부분 조그마한 셋집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47)이덕일의 「古今通義」, 『중앙일보』 제14343호 이 역시 우리의 주거가 그다지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퇴계 이황도 ‘서울 셋집 동산 빈 뜰에 해마다 온갖 나무 붉은 꽃이 피누나’라고 노래하였다. 그러나 이 집처럼 정원까지 있는 좋은 셋집은 드물고 김종직은 ‘때로 셋집에서 쫓겨나서 동서로 자주 떠돌아 다녔네’ 또 ’셋집이 시끄럽고 습해서 병이 생겼네’라고 한탄할 정도로 그들이 청렴하고 좁은 집에서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적당한 크기를 지닌 한국의 전통 건축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너무나 잘 조화를 이룬다.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 같은 배치, 인간적인 척도로 이루어지는 적절한 크기, 노년기 산허리와 어울리는 지붕의 곡선, 자연친화적인 재료의 사용 등 여러 가지 모습에서 우리건축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나타난 인간적인 척도를 현대 건축에 잘 적용한 예로 김수근의 공간사옥을 든다. 즉, 계단의 폭이 작은 경우 2척(尺)정도밖에 되지 않은 곳도 있고, 천장 높이가 7척(尺)도 안 되는 등 한옥에서, 특히 친숙한 인간적 공간감을 맛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체건물의 덩어리가 나뉘어 있음은 물론, 계단이나 화단, 담장, 나아가 벽면의 벽돌 내어쌓기나 돌출창의 배열 등에서 모두 한국인에 친숙한 리듬감이나 인간적 척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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