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1 한국 건축의 변화 양상
  • 03.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
  • 고유한 온돌 사용
천득염

『신당서』 동이전 고(구)려조에는 “…산골짜기를 따라 살고 지붕은 풀로 떼를 인다. 그러나 오직 왕궁과 관부(官府)와 절만은 기와로 인다. 가난한 백성들은 겨울에 장갱(長坑)을 설치하고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고 산다.”53)“…居依山谷 二艸茨屋 帷王宮宮府佛盧以瓦 寠民盛冬作長坑 熅火以取煖….”라고 기록되어 있고, 『구당서』에도 거의 같은 “그 풍속은 가난한 사람이 많고 겨울에는 모두 장갱을 만들어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고 산다.”54)“其俗貧寠者多 冬月玄皆作長坑 下煙熅火以取煖.”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이 기록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구민(寠民)’들의 난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 기록은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시설인 온돌을 말하거나 또는 온돌의 시원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나라 온돌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기록인 것이다. 난방법이 고구려에서 발달하게 된 것은 한반도에서 북쪽지방의 겨울이 길고 연료를 구하는데 많은 노동력을 들여야 했던 하류계층에서 발달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이 『신당서』에서 말하는 ‘장갱’이라 표현된 난방시설은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서 널리 사용되는 침대형으로 된 캉(炕)이라 부르 는 난방시설이 아니라 좌식생활에 알맞는 우리 온돌의 형태와 같거나 비슷한 시설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이 온돌을 만들었다고 기록하는 것을 보면 상류계층에서는 온돌과는 다른 난방법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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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부뚜막
철제 부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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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걸상 생활
무용총 걸상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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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각저총·쌍영총 등 고구려 고분 벽화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상류계층에서는 철제 화로나 부뚜막과 같은 별도의 설비를 방안에 두어 난방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발견된 도제 가옥모형이나 철제 부뚜막들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방 전체에 온돌을 깔지 않았다고 해서 중국이나 서양 사람들처럼 완전한 의자식 생활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용총에서 보이는 의자식 생활의 그림 외에는 모두 신발을 벗고 책상다리를 취하는 것으로 보아 평상 위에서는 좌식생활과 평상 밖에서는 의자식 생활이 혼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한글과 김치·한옥·한복·한식·인삼·금속활자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전통적인 주거생활에서 한민족이 모두 온돌 위에서 나고 자란 것처럼 우리의 일상과 밀착되어 있은 것이 온돌이다. 온돌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불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하였고 오늘에까지 이른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온돌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인 만주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크게 사용되었고 지금까지도 널리 이용되고 있어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들까지도 어김없이 온돌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즉, 우리 민족은 아랫목에서 태어나고 아랫목에서 뒹굴면서 자라고, 또 아이를 낳거나 아플 때 아랫목에서 지지고, 늙어 병들면 아랫목에서 누워 치료하다가 죽는다. 죽음으로 아랫목을 떠났다가 결국 제사상이나 차례상도 아랫목으로 다시 돌아와 받는다. 한민족은 살아있거나 죽은 후에도 아랫목과 떨어질 수 없는 아랫목 온돌 인생이다. 보건 의학적으로도 임산부나 노약자가 온도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가장 좋은 난방은 온돌이다. 머리는 차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두한족열(頭寒足熱)’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 온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 문화의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문화는 불의 문화이며, 온돌문화이다. 선사인들이 최초로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을 때 불은 이용가치가 있으나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태양을 숭배하는 것은, 곧 뜨거운 불의 숭배이고 태양빛으로 냉기를 극복할 수 없는 추운 겨울,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것도 불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 불은 항상 연기와 같이 오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따뜻한 불을 원하지만 매운 연기를 감당하기 힘이 들었다. 뜨겁고 매운 연기는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불을 무서워하게 하고 피하게 하였다.55)김준봉·리신호·오홍식,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청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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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의 아궁이와 부뚜막
온돌의 아궁이와 부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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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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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하이퍼코스트(Hypercaust)는 목욕탕용으로 잠깐 사용되었던 원시적인 난방형태로 마룻바닥에 뜨거운 물을 흘려서 바닥을 따뜻하게 하였던 시설인데 우리의 온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단순한 구조였다. 그 후에 온돌과 비슷한 시설은 고작해야 연기가 실내로 들어올 수 있는 벽난로가 발명되었지만 우리처럼 이미 일찍부터 연기를 분리하는 굴뚝을 만들고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 온돌 밑에 불과 열기를 지나가게 하여 취사도 하고 축열(蓄熱)도 하여 결국 열기를 깔고 앉고 베고 눕는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방법은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전통한옥은 그 구조가 온돌을 보호하고 온돌이 또한 사람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절묘한 구조로 되어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이중바닥구조인 구들 고래가 막아주고 겨울에는 따뜻한 지열을 고래가 또한 저장해 준다.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열이 오랫동안 머물게 하여 구들장에 열을 저장하고 천천히 열을 발산하게 하여 오랫동안 따뜻하게 하는 가장 과학적이며 위생적인 난방을 한다.

이러한 온돌의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는 앉아서 활동하는 주거문화를 이루었고 발보다는 손을 많이 사용하는 민족이다. 입식생활을 하는 다른 민족에 비해 손을 많이 쓰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춤을 보면 대부분 손짓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발은 앉아 있었기에 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다른 민족의 춤에 비해 발을 덜 사용했다. 또한, 손으로 만든 여러 수공예품들의 빼어난 아름다움에서도 우리 민족이 손재주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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