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2 모둠살이와 살림집: 전통마을과 한옥
  • 01. 전통마을
  • 전통마을 연구의 교훈
  • 2. 환경친화성
  • 전통마을의 환경친화적 측면
한필원

[2. 환경친화성72)한필원, 「전통마을의 환경생태학적 해석」, 『대한건축학회논문집』 12권 7호, 1996, pp.121∼133 참조.]

전통마을은 주민들이 거주와 산업(농업)을 위해서 제한된 자원, 에너지 그리고 기술을 가지고 부단히 주거환경을 조절하여 온 결과가 축적된 주거지이다. 따라서 그것은 환경생태학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으나 기본적으로 환경생태적인 합리성을 갖고 있으며, 환경친화적 계획의 지침이 되는 의미있는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전통마을의 환경친화성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전통마을은 자연조건에 대한 적응성을 가지고 있다. 마을 지형의 흐름은 마을의 ‘전후(前後) 방향성’을 형성하며, 안길의 방향과 개별 주택들에서 안채의 좌향은 마을의 방향성에 순응한다. 안길은 지형이 가장 완만하게 상승하는 지점을 따라 수로와 나란히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마을의 토지이용 방식은 인위적으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자연조건에 적응한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토지이용의 경계는 지형, 녹지대, 수로 등 자연요소 또는 도로로 이루어진다. 주거지는 지형의 표고와 경사도에 의해 뒤와 옆의 범위가 명확하 게 한정되며 앞쪽은 도로(수로)와 농경지 등으로 경계가 구획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같이 주거지의 경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주거지가 무질서하게 확산되는 것을 억제하고 토지이용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마을공간의 녹지는 면(面)녹지, 선(線)녹지, 점(點)녹지로 구분될 수 있다. 이들 녹지는 방풍림으로서 미기후를 조절하는 환경적 기능은 물론, 영역성을 부여하는 등의 심리적 기능을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기능에 따라 수종을 선택하고 적합한 형태로 녹지를 조성한다. 녹지는 대체로 일정한 표고와 경사도 이상의 지역에 형성되나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에서는 마을 주변의 자연 녹지체계가 마을공간의 내부로 깊숙이 관입되어 녹지공간이 연속된다. 이렇게 녹지의 연속성을 형성하는 광역녹지의 관입구조는 다양성을 확보하는 등 환경생태적으로 바람직한 환경을 이룬다.

마을의 수공간은 정적인 연못과 선적(線的) 수공간인 수로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개별주택에서 마을입구로 이르는 경로(sequence) 상에 정자와 함께 연못을 배치해 그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마을에서 연못과 같은 정적인 수공간은 거주자들의 사회적 접촉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매개물이며 수공간을 매개로 한 빈번한 접촉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의식을 형성하고 지속하는 데 기여한다.

마을공간에 균등하게 분포하는 몇 개의 우물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공간의 초점이 된다. 또한, 우물은 마을을 작은 영역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 마을 사회조직의 기본단위인 반(班)이 우물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영역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이 수공간은 마을에서 일상적인 외부 생활의 중심이며 강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수공간의 주변은 적극적으로 식재되어 녹지와 수공간이 결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도래마을의 앞쪽에 있는 연못의 주변과 연못 가운데의 작은 섬에는 왕버들나무·미루나무·사철나무·향나무·백향목·측백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연못에는 잉어가 서식하는데, 잉어는 수목과 공생하는 곤충의 분비물을 섭취하고 연못의 침전물이 수목의 퇴비가 됨으로써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이렇게 녹지와 수공간의 결합으로 환경생태적으로 바람직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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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원터마을 방초정 앞 연못
김천 원터마을 방초정 앞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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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전통마을은 수자원을 확보하고 자체 정화하는 자원 순환의 기능을 갖고 있다. 마을공간에서 발생한 우수와 생활 하수는 마을 지형의 완만한 경사를 이용해, 바닥이 이끼와 잡초로 된 수로를 따라 흐르는 동안 부분적으로 자연 정화된다. 그리고 다시 마을 앞쪽의 연못에 모아져 침전작용을 거침으로써 자체적으로 정화된다. 그밖에도 마을에서는 분뇨, 주방쓰레기, 농업생산 부산물 등 각종 유기성 폐기물이 배출된다. 그런데 그것의 대부분은 마을 외부로 방 출되지 않고 마을 안에서 처리된다. 폐기물이 순환되어 자원으로 재활용되는 것이다. 이같이 마을공간에서 일어나는 자원 순환의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①과 같다. 또한, 자원의 순환은 주택을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그러한 방식은 ②에 요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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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마을의 자원순환 개념도
전통마을의 자원순환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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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을 중심으로 한 전통마을의 자원순환도
주택을 중심으로 한 전통마을의 자원순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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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전통마을은 하나의 에너지시스템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통마을의 입지가 에너지 측면에서 볼 때 반드시 유리한 측면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마을에서는 세부지형과 같이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고 방풍림 등 자연요소를 부가적으로 조성하 여 일조와 방풍 등이 유리한 마을공간을 형성한다.

전통마을은 대개 남쪽 전면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이는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한다. 이럴 경우 여름에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므로 비교적 서늘하다. 대개 마을 앞에는 시내가 흐르고 연못까지 있어 수분이 주변에서 기화열을 빼앗아 증발하므로 불어오는 바람에 청량감이 더해진다. 그래서 예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었다. 겨울에도 마을공간은 비교적 온난하다. 낮에 일조를 많이 받고 밤에는 복사열을 받으며, 차가운 북서계절풍은 지형과 조경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전형적인 전통마을은 에너지가 절감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개별 주택에서도 각각의 특수한 자연조건에 따라 처마와 툇마루 등의 공간요소를 배열하고 조경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에너지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환경친화성의 세 항목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고 의존적이다. 예컨대, 자원이 순환되면 새로운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원을 획득하고 생산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절감된다. 또한, 거주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거주지가 자연조건에 잘 순응해야 한다. 거주지를 조성하고 유지·관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자연조건을 극복하는 현대의 방식과 달리, 전통마을에서는 자연조건에 순응하고 미기후(微氣候)를 조절함으로써 에너지를 절감하는 방식들을 활용해왔다.

특히,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들로 인해 불가피하게 환경적으로 불리한 입지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는 미기후를 조절하여 냉난방의 부하를 줄이는 다양한 방식들이 발견된다. 이렇듯 이 세 요건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서 마을의 환경친화성을 형성하는 바탕을 이룬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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