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2 모둠살이와 살림집: 전통마을과 한옥
  • 02. 한옥
  • 한옥의 공간구성
  • 1. 한옥의 배치
한필원

건축공간을 배치하는 것은 거주의 영역을 규정하고 그 안의 얼 개를 구성하는 일이다. 한옥은 안채 영역·사랑채 영역·행랑채 영역·사당 영역 등 성격이 다른 여러 영역으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인데, 이들 영역을 생활의 규범에 맞게 배열하는 것이 한옥 배치의 관건이다. 또한, 한옥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거주공간을 뚜렷이 규정하되 그것을 주변의 공간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것을 큰 특징으로 한다.

한옥의 사랑채와 별당 영역은 주변의 마을공간 또는 주변경관으로 시각적으로는 물론 공간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 사랑채가 지나치게 개방적으로 보이고 그 앞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큰 사랑마당이 있는 것은, 사랑채가 한 가족만의 공간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마을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짐을 암시한다. 이같이 거주영역의 안팎을 연계하는 것은 한옥 배치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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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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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배치하는 데는 좌향(坐向)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좌향이란 어디를 등지고(坐), 어디를 향하는가(向)하는 문제이다. 좌향론은 풍수이론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좌향은 바라보이는 요소, 곧 안대(案帶)의 선택에 기인한다. 한옥은 빼 어난 모양의 산봉우리를 안대로 삼아 그것을 바라보고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옥을 이루는 개개의 건물은 대개 앞면에 뚜렷한 안대를 지니며 이러한 안대의 축에 맞추어 배치와 좌향의 축이 결정된다.74)이원교, 『전통건축의 배치에 관한 지리체계적 해석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이같이 건물을 배치할 때 동서남북의 절대향보다 주변 지형을 면밀히 분석하여 좌향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한 마을에서는 물론 하나의 집을 이루는 채들 사이에서도 좌향이 일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일조에 불리한 서향이나 북향을 취한 경우도 발견된다.

조선시대의 양반주택에서는 가묘(사당)가 중시되었기 때문에 가묘의 위치도 주택의 배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주자가례(朱子家禮)』75)『주자가례』는 선비들이 지켜야 할 예제를 규정한 책이다. 주자는 중국 고대의 예제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윤리체계를 설정했다. 그 중 특히 중시한 것은 제사를 지내는 제례이다. 『주자가례』는 일찍부터 조선의 선비 사회에 알려졌지만 조선 초기에는 그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7세기 중반에 들면서 가례의 내용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고 그에 따라 우리의 전통 주거문화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김동욱, 『한국건축의 역사』, 기문당, 1997, pp.235∼236).에 의하면, 집을 지을 때 가묘를 제일 먼저 짓고 그 위치는 정침(正寢)의 동편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가묘, 곧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공간이다. 따라서 제사를 지내는 남성이 거주하는 사랑채는 가묘가 놓이는 곳과 같은 방향에 놓이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가 안채의 동편에 놓였다면 사랑채도 안채의 동편에 자리 잡게 된다.76)앞의 책,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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