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2 모둠살이와 살림집: 전통마을과 한옥
  • 02. 한옥
  • 연경당(演慶堂)의 사례
한필원

여기서는 전통주택의 공간구성과 이용 패턴을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양반주택인 연경당을 통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연경당은 순조 28년(1828) 왕세자 익종의 요청으로 사대부의 생활을 경험하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창덕궁의 후원인 금원(禁苑) 내의 완만한 남경사지에 건립되었다. 따라서 연경당은 조선시대 사대부집을 모델로 지어졌으며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주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궁궐 내에 위치해 있으므로 일반 사대부집과 달리 사당이 없으며, 안채의 부엌이 없는 대신 음식을 준비하고 빨래와 바느질 등 집안 안살림을 하는 반빗간이 별채로 있다. 그리고 책을 보관하고 책을 읽는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를 사랑채와 인접하여 배치했고, 그 뒤는 경사지형을 노단으로 정리하였다. 그밖에 정자인 농수정(濃繡亭)을 북동쪽 높은 지형에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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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 배치도
연경당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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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주거 영역이 행랑채와 높은 담장으로 둘리어 있어서 외적으로 대단히 폐쇄적이다. 마을 속에 위치한 사대부집에서 일반적으로 사랑채가 주택 외부, 곧 마을에 개방적으로 처리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연경당이 위치한 곳이 마을 공간이 아닌 궁궐이기 때문에 생긴 차이로 생각된다. 주거 영역에 접근할 때 드러나는 바깥 행랑채는 밖으로 난 개구부가 적으며 내부의 주거영역을 견고히 둘러싼 모습이다. 바깥 행랑채의 외벽은, 중앙의 장락문(長樂門)을 중심으로 서쪽은 사고석으로 쌓은 방화장(防火墻), 동쪽은 판벽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내부의 기능이 각각 거주기능과 작업 및 수장 기능임을 보여주며 시각적 변화감을 준다.

이에 반해 내적으로는 개방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앞뒷면과 옆면으로 마당을 가지며 건물의 내부와 마당은 툇마루와 쪽마루로 긴밀히 연결된다. 건물 공간은 대청마루와 실들이 번갈아가며 배열되어 있는데 각 실은 들어열개문으로 구획되어서 필요에 따라 실내가 완전히 개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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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문에서 바라본 연경당 안채
수인문에서 바라본 연경당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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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 사랑채
연경당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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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의 주거 공간은 ‘성별 분리’의 질서를 뚜렷이 가지고 있다. 남성 공간인 사랑채 영역과 여성 공간인 안채 영역은 여러 측면에서 잘 대비된다. 먼저 진입 방식을 살펴본다. 대문인 장락문을 들어서서 바깥 행랑채와 중문간 행랑채로 규정된 행랑마당에 서면, 동쪽으로 사랑채로 진입하는 솟을대문81)평대문이 대문을 설치한 행랑채의 지붕과 같은 높이, 같은 지붕 속의 것이라면 솟을대문은 행랑채 지붕보다 한 층 높인 지붕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관료직이 正과 宗 각 9품계로 총 18품계로 나뉘었다. 이 가운데 종2품 이상의 관료는 초헌이라 부르는 외바퀴 수레를 타고 대궐을 드나들었다. 이 때 초헌을 탄 채로 대문을 드나들려면 대문의 지붕을 주변 행랑채보다 한 층 높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솟을대문은 양반집을 말해주는 대문이 되었다. 그러나 점차 종2품 아래의 양반집에서도 솟을대문을 달게 되었고 신분제가 유명무실하게 조선 후기에는 중인의 집에도 솟을대문을 달았다(주남철, 『비원』, 대원사, 1990, p.61). 형식의 장락문(長樂門)이 눈에 들어오며 장락문을 통해 사랑채의 대청 부분이 보인다. 그러나 안채로 진입하는 서쪽의 수인문(脩仁門)은 평대문(平大門) 형식으로, 좀 더 시선에서 빗겨 있으며 안채 영역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사랑채의 옆면,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꺾인 담장과 함께 안마당을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다. 이에 비해 사랑마당은 행랑채와 선향재로 경계가 규정될 뿐 외향적으로 펼쳐진다. 반빗간은 여자 하인들의 작업 공간이므로 안채의 후면에 별도로 영역으로 배치되었고, 서고인 선향재는 사랑채 영역에 배치되었다. 변소도 안채 옆면의 내측(內廁)과 행랑채에 있는 외측(外厠)으로 나뉘어 있다. 내측은 여자들이, 외측은 남자들이 사용한다. 이 밖에 부재의 사용에도 남녀공간의 구별이 있는데, 사랑채에는 단면이 원형인 굴도리를 썼고 안채에는 단면이 네모진 납도리를 썼다. 원형은 양(陽)을, 방형(方形)은 음(陰)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성격이 다른 남성영역과 여성영역은 별도의 영역으로서 담장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자 주인의 일상 취침 공간인 침방(寢房)과 쪽마루를 통해 두 영역이 공간적으로 긴밀히 연결될 수 있도록 처리됨으로써 두 영역은 연결과 분리의 이중적인 관계를 갖는 하나의 주거공간을 이룬다.

연경당이 갖는 신분에 따른 위계질서는 채의 구성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인들이 사용하는 행랑채는 규모와 형태요소 그리고 구조방식 등에서 다른 채들보다 격이 낮게 차별화되어 있다. 기단을 보면 안채와 사랑채는 세벌대의 높은 기단 위에 놓여 있는 데 비하여 행랑채는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지어졌다. 구조형식과 지붕에서도 이러한 위계가 나타난다. 안채와 사랑채는 오량 구조로 되어 있으며 위계가 높은 건물에 주로 사용된 팔작지붕을 이었고, 행랑채는 기본적으로 간략한 삼량 구조에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이 연경당은 조선시대 전통주택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공간구성의 질서를 잘 보여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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