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3 정신세계의 통합공간 불교건축
  • 02. 가람제도라는 최초의 건축 형식
  • 왕법으로 치환되는 불법
서치상

초기의 사찰들은 1탑 중심의 엄정한 정형적 가람배치가 그 특성이다. 남북 중심축상으로 중문 → 목탑 → 금당 → 강당 순으로 나란히 서고, 그 둘레의 동서남북에 회랑이 일직선으로 둘러싸서 좌우대칭의 장방형 일곽을 형성하는 식이다. 이러한 배치형식은 오늘까지 존속하는 산지가람의 배치형식과 구분해서 평지 1탑식이라 한다. 또한, 백제의 영향으로 건립된 아스카(飛鳥)시대의 사찰들도 이러한 배치형식을 갖춘 탓에 일본학자들은 백제양칠당가람제(百濟樣七堂伽藍制)로 분류한다.

평지 1탑식 가람배치는 그 무렵의 궁궐제도와 흡사했다. 그뿐 아니라 도성 내의 사찰들은 대부분 궁궐 근처에 위치했다. 청암리사지는 궁궐지와 중첩된 것으로 확인되고, 황룡사는 궁궐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는 궁궐의 배치와 건축형식을 사찰 건립 때 그대로 적용했던 증거이다. 마땅한 가람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궁궐의 건축제도가 초기 사찰들의 가람제도에 모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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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안성의 궁궐 복원도
중국 장안성의 궁궐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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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 궁궐과 흡사한 배치였음은 중국 육조시대의 문헌에서 잘 드러난다. 「낙양가람기」의 천령사조에는 ‘부도 북쪽에 불전 한 곳이 있는데 그 형상이 태극전과 흡사하며 그 안에 8장 길이의 금상 1구가 있다.’ 했고, 희평 원년(516)에 창건된 8각형 9층탑인 부도의 북쪽에 위치한 불전이 궁궐의 태극전과 같은 형상이라고 기록한 것 이다. 그래서 일본인 학자 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는 청암리사지를 예로 『사기』 천관서에 실린 다섯 별자리와 비교한 적도 있다. 1탑 중심의 가람배치가 고대 천문사상에 따라 중앙의 황도를 중심으로 동궁(청룡)·서궁(백호)·남궁(주작)·북궁(현무)이 주변을 둘러서는 한(漢)대 궁궐제도를 차용했다는 설을 뒷받침한 것이다.

궁궐을 모방해서 사찰을 지은 것은 왕법과 불법을 동일시한 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유일한 권력인 군왕의 이미지가 그대로 정신세계의 유일한 숭배 대상인 부처의 이미지로 치환된 결과이다. 중앙집권적 왕권이 피지배계층의 복종을 끌어내기 위해서 궁궐은 왕권으로 집중되는 구심력 강한 공간이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유아독존의 부처에 대한 신도들의 귀의적 신앙을 끌어내기 위해서 사찰은 부처의 신성으로 집중되는 강력한 구심적 공간이어야 했다. 군왕의 권력과 부처의 신성이 같은 구도로 이해되었고, 이를 최대한으로 표상하는 점에서 궁궐이나 사찰은 같은 성격의 공간으로 꾸며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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