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3 정신세계의 통합공간 불교건축
  • 03. 분화되는 히에로파니
  • 경전에 근거한 종파 불교
서치상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한편, 고유의 문화를 확립해 갔다. 불교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융성해서 전국 각처에 수 많은 사찰들이 지어졌다. 특히, 당나라로 유학했던 승려들이 갖고 온 경전들을 소의(所依)로 여러 종파가 성립되었다. 그래서 불교학계에서도 이 시기를 종파 불교 또는 경전불교시대로 규정하기도 한다. 국가와 사회 운영의 이념적 원리로 자리 잡은 불교 교리는 더욱 체계화되고, 여러 계층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맞는 다양한 신앙 형태가 나타났다. 종전의 석가모니 중심에서 다양한 불·보살들로 신앙 대상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전들 중에는 법화경과 화엄경이 왕실과 귀족계층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이 밖에 금강경·아함경·열반경과 같은 경전들도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원효와 의상·자장·원광·원측을 비롯해서 많은 승려들이 이러한 경전들을 심오한 경지까지 연구했고, 나아 가서는 이 경전들을 소의로 다양한 종파를 성립했다. 성립 순서로는 열반종·율종·화엄종·유가종·법성종·신인종·총지종·구사종·정토종 순이었다. 각 종파는 자신의 교리와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사찰들을 지어나갔다. 이에 따라 가람제도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탑이 2개로 늘어나고 규모가 작아진 대신 중심에 선 금당 좌, 우로 익랑이 생긴다든지, 종루나 경루와 같은 새 건물들이 나타났다.

경전을 근거로 성립한 종파 불교는 이후 9세기부터 성립한 선종과 구별해서 교종 또는 교학으로 일컫는다. 교종은 부처의 가르침을 방편으로 병마다 낫게 하듯 중생을 남김없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도록 멸도시키고자 하는 일체제도(一切齊度)가 목표였다. 가람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세속과는 이례적이고 차별적이며, 귀의적인 강력한 구심적 공간이어야 했다. 남북 중심축 선상에 중문과 탑·금당·강당이 일직선으로 서고, 일곽의 4면을 회랑이 둘러싸서 기하학적 정형성을 갖춘 만다라로서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학의 발달로 종전에 비해서 경전 수학을 위한 강학 공간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고구려의 청암리사지와 같은 3금당 1탑식 가람에서는 강당지가 확인되지 않았고, 백제의 1탑식 가람에서는 그 규모가 후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았다.

반면, 7세기 후반부터 건립된 2탑식 가람에서 강당은 종전보다 더 커지고, 금당 좌우에서 동서 회랑으로 연결된 익랑에 의해서 독립성이 강한 공간으로 변했다. 그 결과 가람 일곽을 앞뒤로 양분하는 익랑에 의해서 금당 전면부는 예불과 법회를 위한 예배 공간으로, 후면부는 설법과 경전 수학을 위한 강학 공간으로 나뉘어졌다. 불보 중심의 히에로파니가 법보와 승보의 히에로파니로 분화·추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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