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5 왕권의 상징, 궁궐 건축
  • 02. 고대 국가의 궁궐
  • 삼국시대
  • 2. 백제(기원전 18년∼기원후 663년)
  • 웅진시대(475년∼538년):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과 왕궁
이강근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475년(문주왕 1)부터 웅진에서 다시 사비(부여)로 천도한 538년(성왕 16)까지의 60여 년 사이에 사용된 궁성이다. 동성왕(재위 479∼501)은 20여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한성으로부터 내려온 귀족 세력과 웅진성 지역의 신흥 귀족 세력을 조정하여 왕권의 신장을 꾀하였는데, 웅진성 안 궁궐 동쪽에 임류각이라는 고층 누각을 지어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고 전한다.

1987년에 시행된 발굴 조사에서 임류각 터는 공산성(公山城)의 진 남루와 동문터의 중간 지대 곧, 남쪽 성곽에서 약 35m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터로 추정되었다. 주춧돌의 형식과 배열이 고층 건물에 적합한 것으로 보여 그렇게 추정되었는데, 평면이 앞면 6칸(10.4m), 옆면 5칸(10.4m)인 정방형 고층 건물이 세워져 있던 것으로 밝혀졌고 이어서 1993년에 2층 누각으로 복원되었다. 공산성 안에서는 임류각 말고도 궁궐 중심부 건물터로 추정된 건물터와 연못, 목곽고(木槨庫) 등이 발굴되었으나, 궁궐 중심부로 추정된 곳에서 왕궁 건물에 합당한 유구(遺構)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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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내 추정 왕궁터의 발굴 당시 모습
공산성 내 추정 왕궁터의 발굴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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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연못과 문루
공산성 연못과 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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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현재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 영은사, 만하루와 연지 등이 있다. 1987년 이후 발굴조사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한 백제 기와와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도 출토되었다. 남문터에는 진남루, 북문터에는 공북루 등 조선 후기 건물이 세워져 있고, 동문터와 서문터에는 1993년에 각각 영동루와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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