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1 선사시대사냥의 문화-사냥감에서 사냥꾼으로-
  • 04.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에 나타난 옛사람들의 사냥
  • 사냥그림 - 사실적 묘사인가? 주술인가?
조태섭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에서 사람을 표현한 그림은 드물다. 더욱이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같이 연관되어 있는 장면의 그림은 매우 드물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라스코 동굴에서 나온 상처입은 들소와 옆에서 쓰러져 있는 사냥꾼(혹은 주술사)의 그림이다. 이 장면은 사냥과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더욱 우리의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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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와 사냥꾼
들소와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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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보이는 예리한 뿔을 가진 들소는 엉덩이에서 배 쪽으로 날카로운 창을 맞아 내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상을 당한 상태이다. 이에 상처를 입고 성난 들소는 새의 머리모양을 한 사람을 들이받고 있는데, 쓰러진 이 사람은 잘 표현된 성기로 볼 때 남자이며 아래쪽으로 가지고 있던 새 모양의 지팡이는 이 남자의 신분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주술사나 의식을 치루는 신성한 사람으로 판단된다. 아마 들소를 사냥하다가 섣불리 상처를 입은 화난 짐승에게 오히려 희생을 당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당시 사람들의 사냥이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또 다른 주술적 성격의 그림은 프랑스의 남쪽에 있는 트로아 프레르(Trois Frères) 동굴에서 나온 것이다. 바위벽에 새겨 그린 이 장면은 실제로는 매우 작아 오른쪽에 있는 사람의 키가 약 30㎝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반인 반수와 같이 표현되어 있다. 즉, 머리의 뿔과 꼬리를 볼 때 우리는 이 사람이 들소로 변장을 한 상태로 짐승사냥을 나갔으며, 둥근 활과 같은 악기를 입에 물고 짐승을 쫒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왼쪽의 들소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뒤를 돌아다보고 있고, 더 왼쪽의 순록은 정신 없이 달아나고 있는 모습으로 마치 주술을 걸어 짐승을 사로잡는 듯한 그림이다. 만일 이 장면이 사실적이려면 오른쪽 사람은 손에 창과 같은 무기를 지닌 채 묘사되어야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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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 순록과 사냥꾼
들소, 순록과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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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이 두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표현된 사냥꾼이 일상의 모습을 한 사람이 아니라 머리를 새의 모양으로 변장하거나 몸 전체를 들소로 변장한 특별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 특별한 인물들은 다시 말하면 주술사도 될 수 있고 아니면 사냥에 관한 의식을 집행하는 제사장과 같은 신분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사냥감인 동물과 이들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함께 나타나는 동굴 벽화는 사냥에 대한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표현을 보면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주술적·신화적 성격을 더 많이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은 어떠한 목적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을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또 그린 다음 이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행위를 하였을까? 이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구석기시대 사냥꾼들의 정신세계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아리에쥐 지방의 라 바쉬(La Vache) 동굴에 있는 순록의 뿔을 보기로 한다. 길이가 30㎝ 정도인 이 뿔 조각의 왼쪽에 있는 구멍은 이 유물이 휘어진 뿔 등을 곧게 펴기 위한 굼막대(bâton percé)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 옛사람들은 옛소와 이 짐승을 쫒는 세 사람의 사냥꾼들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 유물은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을 새기거나 그려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주위를 깎아 내어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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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소를 쫓는 세 사람의 사냥꾼
옛소를 쫓는 세 사람의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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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된 이 장면은 사냥꾼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커다란 뿔을 가진 옛소를 뒤쫓고 있는 모습으로, 특히 맨 앞에 있는 사람의 손에는 창이 쥐어져 있다. 이와 같이 사냥꾼들이 짐승을 쫒아가며 사냥을 하는 모습의 이 장면이야말로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동물 사냥 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사냥 모습을 순록의 뿔에 남겼던 구석기시대의 옛사람은 뿔을 깎고 새기면서도 마음으로는 넓은 들판에서 창을 들고 동물들을 쫒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늠름한 사냥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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