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에 등장하는 왕들의 사냥 기록은 고려 후기 원종 때부터인 반면, 전기 왕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려의 왕들은 사냥 기술이 뛰어났으며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한 충렬왕·충숙왕·충혜왕·공민왕 등은 특히 사냥을 즐긴 왕들이다. 그 이유로는 원나라와 사냥과 관련된 교류가 있었지만, 원나라의 통치를 받는 왕으로써 국정보다는 자연스레 사냥에 몰두하였다.
수렵 빈도수를 보면, 충렬왕이 70회, 신우가 65회, 충숙왕이 24회, 충혜왕이 12회로 나타나듯이, 충렬왕이 가장 수렵을 즐겼다. 특히, 충렬왕은 사냥에서 사슴과 노루를 잡아 자신의 사냥 솜씨를 뽐내면서 신하들로 하여금 사냥 연습을 많이 하도록 훈계하기도 하였다.22) 『고려사』 충렬왕 5년 9월 신사일. 또한, 충렬왕은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와 13차례가 넘게 동행하여 수렵을 구경하였는데, 공주는 왕이 수렵에 자신을 동행시킨 것과 국정을 게을리 하는 것에 대해 책망을 하기도 하였다.23) 『고려사』 후비2, 제국 대장공주. 심지어 충렬왕은 불을 놓아 수렵[火獵]을 하다가 백성들의 곡식을 태워 그 값을 변상하였다.24) 『고려사』 충렬왕 8년 9월 임오일. 매사냥을 위해 불을 이용한 것이다.
충렬왕의 잦은 수렵에 대해 그의 아들 충선왕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충선왕이 9살의 어린 나이 때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고 한참 농사철인 시기에 아버지가 수렵 나가는 것을 보고 운 일화가 전해지며,25) 『고려사』 충선왕 1. 자신이 왕이 된 후 남긴 공덕(功德) 10개 조목 가운데 수렵을 근절한 것을 포함시키기도 하였다.26) 『고려사』 충숙왕 원년 봄 정월.
우수한 수렵꾼에 대한 융숭한 대접
공민왕도 왕위에 오른 후 10년 동안 사냥을 하지 않았고, 요양의 평장(平璋) 고가노(高家奴)가 오색 꿩을 바쳤을 때도 그것을 놓아 주었다.27) 『고려사』 공민왕 15년 8월 기묘일. 그러나 1371년에 다시 응방(鷹坊)을 설치하였다가 이부(吏部)의 응방 폐지를 원하는 소를 받고 다시 폐지하는 행태를 보였다.28) 『고려사』 공민왕 20년 11월 무진일.
수렵에 몰두한 왕들은 정권에서도 짧은 생명을 보인다. 목종은 수렵에 몰두한 나머지 정무를 유의하지 않아 12년의 짧은 재위기간으로 끝났다.29) 『고려사』 목종 12년. 날마다 수렵을 일삼은 충혜왕도 6년 동안 통치를 하였고,30) 『고려사』 충혜왕 갑신 후 5년. 사냥과 주정으로 날을 보낸 신우도 왕위를 자식 신창에게 물려주었다.31) 『고려사』 공양왕 4년.
『고려사』에서 신우처럼 수렵에 빠진 패륜 임금으로 묘사한 기록 은 없다. 지나가는 개를 죽이거나32) 『고려사』 신우 7년 6월, 신우 9년 3월. 남몰래 사냥을 혼자 다니고 비가 와도 사냥을 하였다.33) 『고려사』 신우 10년 8월. 또한, 궁보다도 민가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고, 민가의 말을 빌리거나 빼앗기도 하였다.34) 『고려사』 신우 을축 11년 경신일. 잦은 수렵과 기생들을 데리고 음주가무를 즐겨35) 『고려사』 신우 무진 14년 3월. 조회를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36) 『고려사』 신우 갑자 10년 11월 초하루 갑자일. 심지어 장기간 궁궐을 비우고 수렵에 몰두하여 신하들이 민가를 찾아와 왕을 배알하였다. 신하들 가운데는 신우가 좋아하는 매를 진상하여 왕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지만, 왕의 수렵에 시달린 역리(驛吏)나 백성들은 그가 하루속히 죽기를 바라는 등 민심이 매우 흉흉하였다.37) 『고려사』 신우 갑자 10년 12월.
신우는 공민왕의 아들로 왕권을 계승하였지만 신돈의 아들로 인식하여 『고려사』에서는 신씨 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사가의 기록도 부정적인 시각만 부각하였다. 한편, 사냥은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정종은 『주례』의 ‘군대로 나라를 경비하고 살피며 사냥으로 군사를 연습한다.’라는 내용을 들며, 군사들을 뽑아 활쏘기와 말 타기를 훈련하도록 하였다.38) 병제사. 『주례』의 내용은 역대 왕들이 사냥에 참가하는 이유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