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2 왕조의 중요한 국책사업, 사냥
  • 03. 고려시대의 사냥
  • 진상과 진급
정연학

고려시대 지방 관리들은 왕에게 사냥감을 진상하여 왕으로부터 호감을 사고 자신의 관직을 유지, 발전시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사냥감 종류에 꿩·까치·노루 등 비교적 비중이 작은 것도 진상한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으나 이들 짐승은 일반적이지 않고 길상의 의미를 가진 독특한 것이다. 그 사례를 소개하면, 정종 7년에 임진현(臨津縣)에서 흰 꿩을 바쳤고, 경종 원년(976) 5월에 경산부(京山府)에서 흰 까치를, 신우 2년 11월에 서북면 만호 김득제(金得濟)가 흰 노루를 바쳤다. 진상한 사냥감들이 모두 길상의 색인 흰색의 동물들이다.

매와 사냥개 진상은 고려시대에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것들을 진상한 당사자들은 왕으로부터 호의를 얻고 관직에 올랐다. 충렬왕 때 응방을 관리하면서 권세를 제멋대로 부린 윤수(尹秀)는 충렬왕이 몽골에 있을 때 매와 사냥개를 바쳐 총애를 얻었다.39) 『고려사』 폐행2, 윤수. 그는 고려로 귀국한 후 응방을 관리하고, 원나라에 새매를 바치는 일을 담당하였다. 윤수의 관직은 전라도 응방사에서 군부판서 응양군 상호군(軍簿判書鷹揚軍上護軍)까지 이르렀다. 신우 10년(1384) 서북면 도순문사 김용휘(金用輝)는 왕에게 매를 진상하였는데,40) 『고려사』 신우 10년 8월. 당시 각 도 원수들은 신우에게 매와 사냥개를 진상하여 임금의 환심을 얻었다. 박의(朴義)는 충렬왕 때 장군까지 벼슬에 올랐는데, 그는 꼬리 깃이 드물게 14개인 매를 중국 황제에게 진상하고 그 답례로 황제가 자신을 장군으로 임명하라고 왕에게 알려 장군이 되었다.41) 『고려사』 폐행2, 박의. 진귀한 매 한 마리의 가격이 일국의 장군 벼슬과 같은 셈이다.

수렵 기술이 뛰어나거나 매나 사냥개를 잘 돌봐도 관직에 올랐다.42) 『고려사』 폐행2, 이정. 천민 이정(李貞)은 매사냥과 개사냥 기술이 뛰어나 충렬왕에게 총애를 받아 벼슬이 부지밀직사사, 추밀 등 고위 관직까지 올랐다. 천민이 높은 벼슬까지 한 전례는 당시 이정이 처음이었다. 원나라 사람 이의풍(李宜風)은 활 솜씨가 뛰어나 사냥을 잘해 충숙왕으로부터 별장행수(別將行首), 총부전서(摠部典書), 추밀부사까지 관직에 올랐다.43) 『고려사』 최안도(이의풍의 기사 첨부). 그밖에 충숙왕 때 박청(朴靑)은 사냥매를 잘 길러 관직이 상호군까지 올랐으며,44) 『고려사』 신청(朴靑의 기사 첨부). 한희유는 충렬왕의 수렵에 동참하여 매번 짐승들을 쏘아 맞혀 상으로 말을 받았다.45) 『고려사』 한희유.

한편, 달려드는 멧돼지에 놀라 낙마(落馬)한 신우를 구한 반복해(潘福海)는 왕으로부터 왕(王)가로 사성 받아 그의 아들이 되었고, 추충양절익대좌명보리공신(推忠亮節翊戴佐命輔理功臣)이라는 칭호를 받았다.46) 『고려사』 반복해.

매와 사냥개 등의 교류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매는 중요한 진상물이었다. 원나라는 고려에 매의 헌납을 요구하였으며,47) 『고려사』 충렬왕 4년 9월 갑신일 ; 충숙왕 정축 후 6년 7월 임인일. 상당수의 매가 원나라에 보내졌다. 특히, 매 가운데 해동청을 으뜸으로 여겼다. 그밖에 매의 장식품도 고려와 원나라 상호간에 선물로 보내지기도 하였다. 고려 혜종은 원나라 황제에게 도금한 매방울 20개와 은 자물쇠에 5색 끈을 달고 은미동(銀尾銅)에 전체 도금한 새매 방울 20개 등 40여 개를 선물하였다.48) 『고려사』 혜종 2년. 원나라 황제는 충렬왕 5년(1279) 왕에게 해청원패(海靑圓牌)를 선물로 보내기도 하였다.49) 『고려사』 충렬왕 5년 9월 갑자일.

<표> 고려와 원나라 사이의 매 진상
왕조 연도 진상자 대상 진상물
충렬왕 1277 8월 정묘일 조인규, 인후(印侯) 파견 황제 새매
10월 을유일 원나라 낭가대 파견 골새(새매 일종)
1278 2월 경오일 황제 해동청(海東靑)
6월 임인일 황제 해동청(매) 1쌍
충렬왕 1278 9월 갑신일 오숙부를 동계에 파견 해동청을 잡게 함
1279 9월 갑자일 황제 해청원패(海靑圓牌)
1282 5월 정해일 장군 박의 등 25명 파견 황제
9월   응방의 패로한 파견 황제
1283 3월 경신일 야선대왕 해동청
1284 4월 무술일 원 착응사(捉鷹使) 낭가대와 동녕부 다루가치
5월 병술일 사신 40명 파견 황제
1286 6월 무신일 장군 원경 등 파견 황제 새매
1288 6월 정사일 대장군 박의 파견 황제 새매
12월 신미일 황제 황제 새매
1289 6월 경술일 장군 남정 파견 황제 새매
11월 병오일 장군 백정인 파견 황제 새매
1293 6월 갑오일 장군 남정 파견 황제 새매
12월 을사일 왕과 공주 황태자 비 검은 매, 새매
1294 9월 신유일 장군 민보 파견 황제 새매
1296 6월 경자일 상장군 최세연 파견 황제 새매
7월 갑신일 장군 이무 파견 황제 새매
1299 5월 신사일 장군 백효주 파견 황제 새매
9월 기묘일 대장군 민보 파견 황제 새매
1301 9월 정사일 대호군 민보 파견 황제 새매
12월 초하루 호군 최연 파견 황제 새매
충선왕 1310 6월 계축일 대호군 문천좌 파견 황제
충숙왕 1319 12월 병자일 원나라 사신 해동청
1320 6월 신미일 대호군 윤길보 파견 황제 새매
9월 계묘일 요양(遼陽) 사람 매, 사냥개, 말
1321 5월   밀직 임서 파견 황제 새매
1337 7월 임인일 원 추밀원(樞密院)에서 요구 황제
충목왕 1348 11월 계사일 원 오왕(嗚王) 완자(完者) 첩목아 파견 매, 사냥개

매 이외에도 사냥개나 사냥꾼 등이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내왕이 있었다. 충렬왕 3년(1277)에는 원나라에서 호랑이 잡는 사신(착호사) 독가(禿哥) 등 18명을 파견하였는데, 말 30필, 사냥개 150마리를 가지고 왔다.50) 『고려사』 충렬왕 3년 12월 병진일. 충목왕 4년(1348)에는 원나라의 오왕(吳王)이 매와 더불어 사냥개 등을 바쳤으며,51) 『고려사』 충목왕 4년 11월 초하루 계사일. 공민왕 15년(1366)에는 요양성의 고가노가가 사냥개를 바쳤다.52) 『고려사』 공민왕 15년 12월 계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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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가마에 얹은 호피
신부 가마에 얹은 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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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충렬왕 8년(1282) 왕이 주·군에 사냥개를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53) 『고려사』 충렬왕 8년 3월 정사일. 이는 당시 고려에 다양한 종류의 사냥개가 존재하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냥개에 대한 구체적인 품종은 알 수가 없다.

고려에서는 매뿐만 아니라 동물의 가죽을 원나라에 진상하기도 하였는데, 충렬왕 21년(1295) 원나라에 보낸 제주의 토산물 가운데 너구리 가죽 76장, 들고양이 가죽 83장, 누런 고양이 가죽 200장, 노루 가죽 400장이 포함되어 있다.54) 『고려사』 충렬왕 21년 4월 경오일. 충렬왕 22년(1296)에도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 각각 13장, 수달피 76장 등을 황제에게 선물하였다.55) 『고려사』 충렬왕 22년 11월 갑신일.

고려 후기 왕들과 원나라 황제 사이에는 매와 개 이외에도 황제가 다니는 사냥터를 충렬왕에게 허락한 사실만 보더라도 사냥과 관련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56) 『고려사』 충렬왕 4년 6월 정사일. 또한, 충렬왕에게 고려의 포로와 유민을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하여 허락받은 곳도 사냥터였다.57) 『고려사』 충렬왕 23년 2월 기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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