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5 사냥의 의례와 놀이
  • 02. 사냥에서 행하는 산신제
  • 사냥을 떠나기 전의 의례
  • 1. 사냥을 떠나기 전 지켜야 하는 금기
임장혁

사냥은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인간이 사는 마을이라는 속의 세계에서 벗어나 산신이 관장하는 성스러운 공간인 산 속에서 이루어진다. 산짐승(=야생 동물)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또한, 산 속의 동물은 산신의 소유물이자 보호물로 여겨졌다. 수렵민은 산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사냥 전부터 금기를 엄격히 지키고, 사냥에 성공하면 산신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제사를 드렸다.

우선 사냥을 떠나기 전에 행해지는 금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사냥꾼은 사냥을 떠나기 전에 부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튿날 신의 영역인 신령한 산으로 들어가므로, 미리 인간의 욕망을 버리고 몸을 깨끗이 하여 마음도 비워 부정한 짓을 하지 않는다. 또한, 사냥꾼은 개고기, 닭고기 등 육식을 하지 않으며, 비린 생선도 먹지 않는다. 이것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지니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기를 먹으면 몸과 피가 부정해진다고 믿는다. 비린 생선을 먹지 않는 것은 산신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냥에 나설 때에는 반찬으로 육류를 쓰지 않고 간소히 준비하였는데 제주도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 범벅 등을 보자기에 싸서 ‘약돌기’에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먹는다. 장기간 사냥에 나설 때는 쌀과 된장만을 준비하며 산에서 얻는 채소나 야채로 생활을 한다.

사냥꾼은 사냥에 앞서 상을 당한 집에 가지 않는데, 사람의 죽음은 부정한 일이므로, 이러한 곳에 가면 부정을 타기 쉽고, 깨끗하지 않은 몸으로 산에 가면 산신에게서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가까운 친척이 상을 당하면 대리인을 보내 문상할 지언정 자신은 가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며, 상주도 이를 이해하였다. 임산부가 해산한 집에도 가지 않는다.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피를 흘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를 ‘피부정’이라 하여 몹시 꺼렸다. 해안의 어부들도 고기를 잡으러 떠날 때, 아내가 해산한 남자는 배에 태우지 않았다. 그의 몸에 부정이 깃들였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기를 어기면 노한 산신이 사냥꾼에게 짐승 잡기를 허락하지 않거나, 벌을 내려준다고 믿었다.

산신에 대한 금기는 매사냥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매가 신령한 동물이라고 여기는 수알치들은 부정이 끼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였다. 심지어 아이를 낳아서 피로 인해 부정이 발생한 집에 가면 매가 미쳐서 달아난다고도 여겼다.

사냥꾼은 사냥을 나가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다. 우리는 예로부터 제사를 지내거나 치성을 드리기 전에 반드시 목욕재계(沐浴齋戒)라 하여, 몸을 씻고 음식을 삼가며 몸가짐을 깨끗이 가다듬었다. 추운 정월에 동제를 주관하는 제관이 하루 서너 번씩 찬 물속에 들 어가 목욕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냥도 목숨을 거는 큰 일이므로 이를 따른 것이다.

산에 들어가서는 똥오줌을 따로 받아 두었다가 마을로 가져오기도 한다. 청정한 산신의 세계를 더럽히면, 벌을 받아 짐승을 잡기는커녕 부상을 입거나 큰 해를 당한다고 여겼다.

사냥꾼은 산에서는 철물로 된 식기와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 쇠는 포악한 짐승이나 악령(惡靈)이 가장 꺼려하는 물질이며 쇠붙이소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워낭이라 하여 말·소의 턱 아래에 방울을 매다는 풍습도 이에서 왔다. 가축을 잡아먹으려고 다가왔던 짐승이나 해를 끼치려고 몰려든 악귀가 이 소리에 놀라서 달아난다고 여긴 까닭이다.

사냥꾼이나 심마니는 산에 들어가서 변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산신이 말을 알아듣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은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산신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사냥은 기상 조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궂은 날은 사냥하기 어려우므로 출발에 앞서 날씨를 보아 사냥 여부를 정한다. 집단 수렵을 할 때에는 몰이꾼과 사냥꾼으로 구성되는데, 반드시 그 숫자는 홀수로 짝짓는다. 우리는 짝수인 우수(偶數)는 부정하고, 홀수인 기수(奇數)는 신성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홀수를 양수(陽數), 짝수를 음수(陰數)라 불렀다. 그리고 홀수가 겹치면 잡귀가 달아나서 복을 얻는다고 믿었다. 정월 초하루, 대보름. 삼월 삼짇, 오월 단오, 칠월 칠석, 한가위 등의 명절이 모수 홀수로 짝을 이룬 까닭도 이에 있다. 사냥꾼이 홀수로 무리를 짜는 관습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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