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5 사냥의 의례와 놀이
  • 03. 굿과 놀이에서의 모의 사냥
  • 황해도 굿의 사냥 놀이
  • 3. 황해도 굿에서 나타나는 사냥놀이의 의미
임장혁

상산막둥이와 만신은 산에 가서 산삼과 녹용을 얻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그 이유를 부정에 의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목욕재계할 때에 부정물인 배설물 때문에 산신의 소유물인 사슴이나 산삼을 얻지 못하였던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다시 정성을 들여 녹음메를 올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녹용을 얻게 된다. 정성을 드리기 위해 장구와 징에 제를 올리는데 이를 ‘장구산’과 ‘징산’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장구와 징을 산에 비유한 것이다.

또한, 산신으로부터 산삼을 얻기 위해서는 산신제를 정성껏 지내고 난 후에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산지민(山地民)은 신 의 관할 영역이 산이고, 짐승이나 나무 등은 산신의 소유물이기에 정성들여 산신제를 지내야 산신의 소유물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사냥이나 채취 활동의 성과는 산신이 자신의 소유물인 산짐승이나 약초를 사냥꾼에게 내주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사냥타령에는 산지민의 산신관이 잘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냥거리는 실제 사냥이 아니라, 모의극으로 행해지는데 제물로 마련된 제수가 사냥을 통해 얻어진 것임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만신의 사냥을 안내하는 상산막둥이는 산을 잘 아는 인물로 남루한 옷을 입고 얼굴에 일곱 개의 점을 그려 이인(異人)으로 가장하고 있기에 평범한 차림의 만신과는 대비된다. 상산막둥이는 본래 만신의 아들이지만 오랫동안 떠돌이생활을 하면서 산에서도 오랫동안 살아온 인물이며 인간 세계에서 산이라는 성역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사냥에서 얻은 제수는 산신제를 지내고 산신이 내어준 성물(聖物)임을 의미한다. 성스러운 제물은 인간 세계에서 기원을 위해 신에게 증물(贈物)하는 것으로 속과 성의 양 세계의 매개체가 된다.

신과 인간의 매개체로 제수는 실제, 가축을 사용하면서 산짐승임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이는 동물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수로서 사용되는 가축으로는 돼지와 소, 닭 등이 대표적이다.

농경이 정착되면서 산신제의 제물도 실제 수렵에서 잡은 제물이 아닌 돼지, 소 등 가축을 사용하게 되었다. 산에서 사냥을 통해 얻은 산짐승과 가축은 그 의미가 다른 것이다. 야생 동물은 산신의 소유물로 여겨져 왔으며, 생명력이 있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난 동물의 생명선은 산짐승이 생명력을 갖은 존재로 여겨왔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축이 생명력 있는 동물로 여 겨왔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농민은 가축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거나, 우경을 하는 농민은 소를 노동력의 제공자인 동시에 재산적 가치를 지닌 동물로 생각한다. 즉, 가축은 산신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가축은 재산으로서 경제적인 가치가 있어 사육자가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냥꾼은 야생 동물을 사냥한 다음에 산신제를 지낸다. 이때의 산신제는 산신에 대한 감사와 살해된 동물에 대한 위령으로 표현된다. 죽은 동물의 영혼이 뒤쫓아와서 사냥꾼을 해꼬지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에 노루를 잡은 경우,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사냥꾼에게는 죄가 없는 것으로 죄를 전가한다. 야생 동물을 영적인 존재로 본 것이다. 인간과 야생 동물의 중간적 위치인 가축은 영적인 존재로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야생 동물과 가축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사냥거리에서 모의적 사냥을 통해 가축을 야생 동물로 의미를 변화시켜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또한, 제수를 사용할 때에 소는 황소가 돼지는 흑돼지가 좋으며, 제수는 수컷을 사용하며 거세되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 즉, 야생 동물에 가까운 제물을 사용해야 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며, 수컷을 사용하는 것은 산신을 여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수렵민들이 산신을 여신으로 생각하며 금기를 지켜온 산신관과 동일하다. 이러한 제수에 관한 선별은 제수가 성스러운 제물로서 가축이 갖고 있지 않은 생명력이 있고 영적인 동물을 의례적으로 사용하는데 목적이 있다.

사냥 놀이에서 미리 마련된 제수인 산 돼지는 타살거리를 거치며 살해되며, 칼로 목의 동맥을 베어 살해되고 이때에 목에서 나오는 피를 모아두게 된다. 현재는 굿에서 도살할 수 없으므로 살해되는 과정이 거의 생략되며 미리 도살된 돼지를 제물로 사용한다.

사냥놀이에 이어 타살거리가 행해지는데 사냥으로 얻은 돼지는 살해되어 해체되는데, 주로 8조각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8조각으로 해체되는 방식은 실제 사냥에서 멧돼지를 잡으면 이를 8조각으로 해체하는 것과 유사하다.

강원도 인제에서는 멧돼지 사냥이 끝나면 사냥에 참여한 인원과 관계없이 8조각으로 나누는데 이를 ‘팔쟁기’라 한다. 팔쟁기는 머리·목·두 팔·두 다리·양 갈비 등이다.563) 김광언, 앞의 책, 2007, p.354. 사냥꾼의 분배 방식과 신에게 바쳐질 공물을 분배하는 방식이 동일하다. 이것은 타살굿이 수렵신앙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냥놀이를 제수를 어르는 굿이라고 하는데 제물로 쓰일 소와 돼지를 잡기 전에 어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즉, 소를 잡기 전에 무당과 상산막둥이가 같이 어울려 소를 올라타기도 하고 소의 주위를 돌기도 하며 소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러한 행위는 제물의 영혼을 달래는 것으로 실제 수렵을 하고 나서 엉엉 우는 시늉을 내는 것과 유사하다.

타살군웅거리에서의 도살은 제물의 혼을 통해 군웅과 접하기 위한 은유적 표현이다. 도살된 제물의 영(靈)은 도살됨으로써 원혼이 되어 원한 맺힌 군웅의 신령과 접한다고 믿는 것이다. 무당이 도살된 제물의 피를 마시거나 군웅대의 피를 빠는 것은 제물의 영과 군웅과의 접하였음을 상징한다. 또한, 사슬을 세워 제물을 공물로 바치고 신이 인간의 의지를 잘 받아들였는 지를 확인한다. 타살거리에서 사슬을 세운 후에 군웅베를 찢는데 원혼인 군웅을 달래고 난 후에 길을 내주어 군웅을 전송하는 의례라 할 수 있다. 타살거리에서 희생된 제물인 돼지는 군웅이나 장수에게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터주신이나 지신 등 육식을 하는 여러 신령에게 제공된다. 제물의 일부를 올리며 인간계에 안녕과 풍요를 전해주기를 기원한다.

타살군웅거리에서 나타나는 신령은 다른 신령과는 차이가 있다. 군웅은 원혼을 갖고 있기에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으 며, 재앙을 막아주고 안녕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신령들이다. 따라서 이들과의 영적인 교류를 위해 제물을 도살하여 원혼이 되어 군웅과 접하게 하는 것이다. 제수로 쓰이는 가축은 영이 없으며, 야생 동물이 영을 지니고 있으므로 가축을 그대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모의적인 사냥 놀이를 통해 가축을 야생 동물로 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야생 동물이 영을 지니고 있다는 관념은 수렵민의 산신신앙이 반영된 것이다. 즉, 수렵민의 산신신앙과 의례가 오늘날 황해도 굿의 사냥 놀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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