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5 사냥의 의례와 놀이
  • 04. 맺음말
임장혁

수렵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시작되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주로 남성이 수렵을 하고, 여성과 노약자는 채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선사시대의 사냥에 관한 의례가 어떻게 행해졌는지에 대한 유물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반구대 암각화를 통하여 당시의 사냥 의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정도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선사시대 때부터 수렵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사냥감이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사냥 의례가 행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농경의 정착과 함께 수렵은 식량을 획득하기 위한 생존 수단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나 산지 농경민이나 전문 사냥꾼에 의해 수렵이 전승되어 왔다. 산지 농경민은 농작물을 훼손하는 동물을 사냥함으로써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였다. 전문 사냥꾼은 약효를 지닌 동물을 사냥하였는데, 그 사냥감은 시대에 관계없이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에 의해 사냥에 따른 산신제에서 사냥 의례가 오늘날까지도 일부 남아 있다.

사냥 의례는 사냥을 떠나기 전에 행하는 산신제와 장기간 사냥에 실패하였을 때 행하는 산신제, 사냥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와서 행하는 의례 등으로 구분된다.

사냥에 여성의 참여를 엄격히 금기시하는 것은 산신을 여성으로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음양의 조화를 꾀하였는데, 산신이 여성이므로 여성이 사냥에 참여하는 산신으로부터 노여움을 살 수도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남성만이 사냥에 참여할 수 있으며, 여성의 행동을 따라하지 않는 등 엄격하게 금기를 지켰다.

사냥꾼은 사냥을 나서기 전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산신제를 올린다.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게 되면 사냥감의 일부를 떼서 산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제사를 올렸다. 산은 산신이 관장하며 산짐승 또한 산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산신이 자신의 소유물을 내준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산신제를 올렸다. 한편, 산짐승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냥을 한 다음에는 위령제를 지냈다.

사냥에 나선 지 오래되었지만 사냥감을 획득할 수 없을 때는 산신이 사냥감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고 산신제를 지냈다. 산신제를 지낸 다음에 사냥을 하게 되면 감사의 의미로 산신제를 한 번 더 지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잡은 사냥감을 머리에 이고 오지 않았다. 여성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까운 산에 올라가 냇가의 깨끗한 곳에 사냥감을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농경 생활의 정착과 벼농사의 확대로 인해 민중들의 사냥 활동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사냥 의례는 가축을 의례적으로 활용하면서 놀이 형태의 모의 사냥으로 이어졌다. 모의 사냥은 굿과 놀이에서 나타나는데, 황해도 대동굿, 우이동 삼각산 도당제, 제주도 산신놀이, 황병산 사냥 놀이 등이 그 예이다.

굿에서 신과 인간의 매개체로서 제수가 실제로는 가축을 사용하 면서 오히려 산짐승임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동물관의 차이에 있다. 가축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사육자의 소유물인데 반해 산짐승은 산신의 소유물로 영적인 존재이다. 사냥 거리에서 모의적 사냥을 통해 제수로 쓰인 가축을 생명력이 있고 영적인 존재인 야생 동물로 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타살군웅거리에서의 도살된 제물의 영(靈)은 도살됨으로써 원혼이 되어 원한 맺힌 군웅의 신령과 접한다고 믿는다. 사슬세우기는 군웅에게 바치는 육신을 삼지창에 세워 바침으로써 군웅에게 공물을 제공하며, 원혼을 풀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수용하였음을 확인하는 의례이다. 이러한 동물 공희의 과정은 수렵 신앙이나 의례와 관련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산신놀이, 강원도에서는 황병산 사냥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이 두 지역에서는 실제 수렵이 행해졌을 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제주도의 산신놀이에서는 여성에 대한 금기, 사냥감 분배 방식 등이 나타난다. 황병산 사냥놀이는 사냥의 방법, 사냥의 도구 제작, 사냥의 관행, 사냥 제의 등의 전통적 산간 수렵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사냥 놀이들은 오늘날에는 수렵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산신을 모시고 사냥 놀이를 통해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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