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
5년(1002) 7월 왕이 다음과 같이 하교하였다. “예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대개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정사를 우선으로 삼아, 부유하고 번성하게 할 방책을 힘써 숭상하였다. 그래서 3시(三市)를 열어 백성에게 이익을 주고 혹은 2수(二銖)를 써서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풍속을 순박하게 만들었다. 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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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을 가리킴
께서 옛 법제에 따라 조서를 내려 청부(靑蚨)
화폐
를 주조하게 하였는데 수년 만에 돈 꿰미 줄이 창고에 가득 찼고 두루두루 쓰기에 편하였다. 그리하여 대신들에게 명령을 내려 축하연을 베풀고 좋은 날을 택하여 통용시켰다. 이때부터 철전이 계속 유통되어 왔다. 과인이 분수 넘치게 왕위를 계승하고 삼가 부왕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어 특히 화폐로 매매하는 밑천을 풍부하게 하고 이를 준엄히 행하는 제도를 엄격히 세웠다. 그런데 요사이 시중(侍中) 한언공(韓彦恭, 940~1004)의 상소문을 본즉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물건의 효용을 높이려면 모름지기 옛 제도를 가지고 항구적인 것으로 삼아야 하는데, 지금 선왕께서 돈을 사용케 하던 일을 계승하시고 추포(麤布)
굵은 베
를 쓰는 것은 금지하여 백성들을 놀라게 하시니 이는 나라에 이익을 가져오지 못하고 한갓 백성들의 원망만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이제 바야흐로 나에게 충고해 주는 구체적인 제의를 듣고 보니 어찌 이것을 내버리고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곧 농사에 힘쓰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철전 통용의 길을 막으려 한다. 차(茶)나 술, 음식 등을 파는 각종 상점들에서 매매하는 데는 이전과 같이 돈을 쓰게 하고 그 이 외에 백성들이 자기네끼리 매매하는 데는 토산물을 마음대로 쓰도록 할 것이다. 『고려사』권79, 「지」33 [식화2] 화폐 목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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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생각하건대 주상의 덕은 삼왕(三王)
하나라 우(禹)왕, 은나라 탕(湯)왕, 주나라 문(文)왕
보다 뛰어나고 도는 이제(二帝)
요임금과 순임금
와 같으며 그 공은 한나라보다 높고 제도는 당나라를 이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이곳을 향하고 백성들은 마음 편히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때 미곡으로 교환할 때의 폐단을 고치지 않으면 후일 누구를 기다려 바르게 하겠습니까? 무릇 돈이란 그 몸은 하나이면서 그 뜻은 네 가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첫째, 돈의 바탕은 둥글고 구멍은 네모져 있으니 둥근 것은 하늘을, 모난 것은 땅을 덮은 것입니다. 이른바 덮고 실으며 돌고 도는 것이 끊어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천(泉)이라 한 것은 통행하여 흘러 퍼지는 것이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셋째 포(布)라 한 것은 백성들 사이에 퍼지고 상하 두루 보급되어 영원히 막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도(刀)라 한 것은 이것을 어떻게 이롭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난하고 부유함이 생기며 날마다 써도 무디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대각국사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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