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 조준(趙浚)
이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전제(田制)를 바로잡아 국용(國用)을 풍족하게 하고 민생을 후하게 하며, 인재를 가려 기강을 진작시키고 정령(政令)을 시행하는 것은 오늘날의 당연한 급선무입니다. 나라의 운수가 길고 짧은 것은 민생의 괴롭고 즐거움에 달려 있고, 민생의 괴롭고 즐거움은 전제(田制)의 고름과 그렇지 못한 데 달려 있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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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왕위에 오르신 지 34일 만에 여러 신하를 접견하고 개연(慨然)히 탄식하기를, ‘근세(近世)에 전세(田稅)를 너무 심하게 받아 1경(一頃)당 받는 조세가 6섬에 이르러 백성이 살 수가 없으니 내가 이를 매우 불쌍히 여긴다. 이제부터는 마땅히 십일(什一)의 제도를 사용하여 밭 1부(一負)에 벼 서되[三升]를 내게 하라’ 하고, 마침내 백성에게 3년 간의 조세(租稅)를 감면하였습니다. 당시 후삼국이 솥발처럼 대치하고, 영웅들이 승부를 다투어 재정을 쓸 곳이 다급하였으나, 우리 태조
께서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일을 미루고 백성 구제하는 일을 먼저 하였으니, 곧 천지가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마음이요, 요(堯)⋅순(舜)⋅문왕(文王)⋅무왕(武王)의 인정(仁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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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이 통일되자 곧 토지제도를 제정하여 신하와 백성에게 나누어 주되, 백관은 그 품계에 따라 주어서 본인이 죽은 뒤에는 회수하고, 부병(府兵)은 20세에 지급하고 60세가 되면 환수하였습니다. 무릇 사대부로서 전지를 받은 자가 죄를 지으면 회수하니, 사람마다 자중하여 감히 법을 범하지 못하여 예의를 지키려고 하고 풍속이 아름다워졌습니다. 부(府)⋅위(衛)의 군사와 주(州)⋅군(郡)⋅진(津)⋅역(驛)의 아전이 각각 그 전지의 소출을 먹고 그 땅에 정착하여 생업을 편안히 하니,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천하를 호시탐탐 노리던 요나라와 금나라가 우리와 땅을 접하고 있어도 감히 침범하지 못한 것은, 우리 태조
께서 삼한의 땅을 나누어 신하와 백성들과 함께 그 녹을 누리고 그 생업을 후하게 하고 그 마음을 결속시켜 오래도록 나라의 원기(元氣)가 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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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토지를 겸병(兼幷)하는 일이 더욱 심해져서, 간악하고 흉한 무리들이 주(州)에 걸치고 군(郡)을 아우르고 산과 내를 경계로 삼고는 모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라고 하면서 서로 훔치고 빼앗아 1무(畝)의 주인이 5, 6명이 되고, 1년에 가져가는 조(租)가 여덟 아홉 차례나 됩니다. 위로는 어분전(御分田)부터 종실⋅공신⋅조정⋅문무관의 토지와, 외역(外役)⋅진(津)⋅역(驛)⋅원(院)⋅관(館)의 토지, 백성들이 여러 대 동안 심은 뽕나무와 지은 집까지 모두 빼앗아 차지하니, 호소할 곳 없는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을 뿐입니다. 나라에서 토지를 나누어 준 것은 신하와 백성의 생업을 후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나 이제는 신하와 백성을 해치게 할 뿐이니, 이는 사전(私田)이 어지러움의 근원이 된 셈입니다.
토지를 겸병하는 집안의 조(租)를 거두는 무리가 병마사
⋅부사(副使)⋅판관⋅별좌(別坐)라 칭하면서 수십 명의 종자를 거느리고 수십 필의 말을 타고 다니면서, 수령을 모욕하고 안렴사
의 기를 꺾고 음식을 진탕 먹으면서 주전(廚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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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이 지방으로 나갈 때 경유하는 역참에서 음식과 거마를 제공하는 것
의 비용을 거덜나게 합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떼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횡포를 부리고 노략질하는 것이 도적보다 몇 배나 심하므로 지방 고을들은 이 때문에 매우 피폐해졌습니다. 전호(佃戶)의 집에 들어가서는 사람은 술과 밥을, 말은 곡식을 실컷 먹고, 햅쌀을 먼저 바치게 하며 운송비 명목으로 받는 삼과 면, 개암⋅밤⋅대추⋅육포 등을 강제로 팔게 해서 거두는 것이 조(租)의 10배는 되므로 조를 바치기 전에 재산이 다 없어지고 맙니다. 토지의 수확량을 조사할 때는 부(負)와 결(結)의 고하(高下)를 마음대로 하여, 1결의 토지를 3, 4결로 정하고, 큰 말로 벼를 거두어 한 섬 거둘 것을 두 섬으로 받아 그 양을 채웁니다.역대 선왕께서 백성에게 수취하는 것은 10분의 1에 그쳤는데, 지금 사가(私家)에서 백성에게 취하는 것은 열 배 천 배나 되니, 하늘에 계신 선왕들의 영령은 어떠시겠으며 국가의 인정(仁政)은 어찌 되었습니까. 토지는 백성을 기르는 것인데 도리어 백성을 해치니 어찌 슬프지 않습니까. 백성이 사전(私田)의 조세를 낼 때 다른 사람에게 빌려서 충당하는데 그 빚은 아내를 팔고 자식을 팔아도 갚을 수 없고, 부모가 굶주리고 떨어도 봉양할 수 없습니다. 원통하게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까지 꿰뚫어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여 수재와 한재를 불러일으키니, 호구(戶口)가 이 때문에 비게 되었으며, 왜적들은 이를 틈타 깊숙이 들어와 천 리에 시체가 뒹굴어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탐욕스럽고 욕심을 부리는 자들에 대한 소문이 중국까지 퍼져 사직과 종묘가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합니다.
신 등은 태조
께서 지극히 공정하게 토지를 나누어 주신 법을 준수하고, 뒤의 사람들이 사사로이 주고받아 겸병하는 폐단을 혁파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선비도 아니고 군사도 아니고 나랏일을 맡은 자가 아니면 토지를 주지 말 것이며, 죽을 때까지 사사로이 주고받고 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지 규정과 제한 규정을 세워, 백성들과 함께 새롭게 시작함으로써 나라의 재정을 풍족하게 하고 민생을 윤택하게 하며 조정 신하를 우대하고 군사를 넉넉하게 길러 주십시오. 그러면 나라가 부유하고 군사력이 강해지며 예의가 일어나고 염치가 행해지며, 인륜이 밝아지고 소송은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사직의 기초는 반석처럼 안정되고 태산같이 튼튼해지며 나라의 위엄이 우레와 같이 진동하고 불꽃처럼 빛나게 되어 비록 외적의 침략이 있더라도 장차 저절로 시들고 무너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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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이 말하기를 ‘국가에 3년간 먹을 물자의 비축이 없으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최근 서북 방면으로 군대를 보낸 것이 겨우 몇 달뿐인데도 오히려 나라의 민간의 살림이 버티지 못하고 상하(上下)가 함께 궁핍해지니, 만일 2, 3년간 홍수와 가뭄이 생긴다면 어떻게 백성을 구할 것이며 많은 군사의 양식은 어떻게 충당할 것입니까. 하물며 지금 도성 안팎의 창고가 일시에 모두 비어서 나랏일에 필요한 비용이 나올 곳이 없는데 변방의 근심은 예측할 수가 없으니, 만일 갑작스레 변고가 생기면 집집마다 거두기도 어렵습니다. 지금 마침 양전(量田)할 때가 되었으니 액수를 정하여 토지를 주기 전에 3년 동안 임시로 조세를 국가에서 거두어들인다면, 나랏일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으며 관원의 녹봉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사절요』권33 신우 4 무진 14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