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이르노라. 황천(皇天)이 재앙을 내려 큰 화가 거듭되고, 국가에 어려움이 많아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변변찮은 자질로 이제 크나큰 제왕의 기업(基業)을 받았다. 모든 신료는 마땅히 마음과 힘을 다하고 각자의 직임을 다함으로써 다른 생각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가를 보호하여 위태롭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윤임
(尹任, 1487~1545)은 화심(禍心)을 품고 오래도록 흉계를 쌓아 왔다. 처음에는 동궁(東宮)이 외롭다는 말을 주창하여 사림
들 사이에 의심을 일으켰다. 중간에는 정유삼흉(丁酉三兇)1)
의 무리와 결탁하여 국모를 해치려고 꾀하였다. 동궁에 불이 난 뒤에는 부도(不道)한 말을 많이 해서 사람들을 현란케 하고 걱정과 의심을 만들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내심 스스로 불안해서 그릇되게 (자신을) 보전할 계책을 세우고 집권 대신과 결탁하여 종사
를 위태롭게 하려던 자취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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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관련자료
1)
1537년(중종
32)에 왕의 외척 윤원로 등이 흉물(凶物)이라고 하여 살해한 김안로(金安老)·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을 가리킨다.
'중종' 관련자료
'종사' 관련자료
유관(柳灌, 1484~1545)은 평소 윤임
과 친밀하게 교유하며 대행왕(大行王)
(母后)는 조정에 나올 수 없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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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의 병환이 위독할 때 정통(正統)은 저절로 돌아갈 데가 있음에도 “취품(取稟)
임금에게 여쭈어 그 의견을 기다리는 일
해서 정해야 한다” 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대위(大位)를 계승한 뒤에는 (대비가) 청정한 일이 본래 옛 전례가 있는 일인데도 “모후
'모후' 관련자료
유인숙(柳仁淑, 1485~1545)은 윤임
과 사돈을 맺고 음모를 조성하며 속으로 권세를 잃을까 근심하였다. 내가 즉위하자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여겨 몰래 사부(師傅)를 불러 나의 현부(賢否)를 물었다. (그리고) 나에게 병이 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혹시 내가 현명하다고 하면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는 모두 몰래 다른 뜻을 품고 자기의 욕망을 이루려고 꾀한 것이니 죄가 종사
에 관련되어 법으로 용서할 수가 없다. 진실로 율에 따라 죄를 정함이 마땅하다. 다만 선왕조의 구신(舊臣)이므로 차마 지나친 형벌을 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다. 이에 윤임
·유관·유인숙 세 사람에게 단지 사사(賜死)만 명한다. 이미 간사한 자를 제거하는 법을 바로잡았으니 사유(赦宥)
'윤임' 관련자료
'종사'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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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사령을 내려 죄인을 특사함
하는 은전(恩典)을 미루어 거행하여야 하겠다. 『명종실록』권1, 즉위년 8월 28일 무오
사신(史臣)은 논한다. 가령 하늘이 인종을 오래 살게 하였다면 비록 대소윤(大小尹)이란 설(說)이 있다 하더라도
【대윤(大尹)은 윤임
(尹任)을 가리키고, 소윤(小尹)은 윤원로(尹元老) 형제를 가리킨다. 윤임
은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우이고 윤원로와 윤원형
(尹元衡)은 대왕대비의 아우이다.】
봄날이 와서 절로 눈이 녹듯 (사라졌을) 것이다. 하늘이 명종
에게 어진 보필을 주었다면 대소윤 사이에 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화단(禍端)이 해소되어 난이 그치게 되었을 것이다. 모후(母后)가 어린 임금을 옹립하여 국가의 형세가 매우 위태로운 때에 유관(柳灌)이 대신으로서 국권을 담당하였다. 그의 충직함은 남음이 있지만 지혜가 부족한 탓에 대소윤을 모두 파출하여 국난(國難)을 풀게 할 줄은 몰랐다. (유관은) 유독 윤원로를 다스리는 데만 급급하였으므로 그 자취가 흡사 대윤을 돕고 소윤을 공격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대비가 더욱 진노하였고 윤원형
의 무리도 구실을 얻었다. (이들은) 공적인 명분을 이용하여 사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살육과 찬적(竄謫)
'윤임'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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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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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귀양 보내어 벌을 줌
을 마구 자행하였고 (이로써) 하늘이 행할 직분을 더럽혔다. 그 재앙은 수십 년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았다. 예로부터 외척이 권세를 다투어 서로 (몰아내려고) 힘쓰면 국사를 크게 그르치는 데 이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모후의 마음이 비록 사사로운 마음을 다 씻어서 조정을 안정시키려고 한들 누구와 더불어 깨끗하게 하겠는가? (그리고) 비록 대신들에게 의지하여 충성을 다해 나라를 도우려 한들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아, 마음 아픈 일이다. 『명종실록』권1, 즉위년 7월 7일 정묘
- 1537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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