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懲毖錄)』이란 무엇인가? 임진왜란
이 발생한 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 중에 임진왜란
전의 일도 가끔 기록한 것은 전란의 발단을 구명하기 위한 것이다. 아아! 임진년의 화는 참혹하였도다. 수십일 동안에 삼도(三都)
'임진왜란' 관련자료
'임진왜란' 관련자료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를 지키지 못하였고 팔방이 산산이 무너져 임금께서 수도를 떠나 피란하였는데,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운 까닭이다. 그리고 선대 여러 임금의 어질고 두터운 은덕이 백성들을 굳게 결합시켜 백성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임금께서 중국을 섬기는 정성이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켜 우리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명나라 군대가 여러 차례 출동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위태하였을 것이다. 『시경(詩經)』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지러운 시기에 나라의 중대한 책임을 맡아서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형세를 붙들어 일으키지도 못했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시골구석에서 목숨을 연명하며 구차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임금님의 너그러우신 은전이 아니겠는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어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니, 그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이 없다. 이에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 임진년으로부터 무술년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대강 기술하니 이것이 얼마 가량 되었고, 또 장계(狀啓)⋅소차(疏箚)⋅문이(文移)와 잡록(雜錄)을 그 뒤에 부록하였다. 비록 보잘것없지만 또한 모두 그 당시의 사적이므로, 버리지 않고 두어서, 이것으로써 내가 시골에 살면서도 성심으로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간절한 뜻을 나타내고, 또 어리석은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징비록』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