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리 윤집(尹集, 1606~1637)이 상소
하기를, “화의(和議)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명나라는 우리나라에 대해 부모의 나라이고 노적
(奴賊)은 우리나라에 대해 부모의 원수입니다. 신하된 자로서 부모의 원수와 형제의 의를 맺고 부모를 서로 모르는 척하며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임진년의 일은 조그마한 것까지도 모두 황제의 힘이니 우리나라에게 있어서는 잠시라도 그 은혜를 잊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오랑캐의 형세가 심히 확장하여 경사(京師)를 핍박하고 황릉(皇陵)을 더럽혔는데 1)
, 비록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전하께서는 이때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차라리 나라가 망할지언정 의리상 구차스럽게 나라를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력이 미약하여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정벌에 나가지 못하였지만, 또한 어찌 차마 이런 시기에 다시 화의를 제창할 수 있겠습니까?
'상소' 관련자료
'노적' 관련자료
1)
경사(京師)를 핍박하고 황릉(皇陵)을 더럽혔는데 : 조선 역시 일본의 정벌 대상이었지만, 본래 일본은 전쟁의 구실로 명나라 정벌을 위하여 길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지난날 임금께서 크게 분발하시어 의리에 의거하여 물리치고 끊어내서 나라 안팎에 포고하고 명나라에 알리시니, 온 나라[東土] 수천 리가 모두 크게 기뻐하여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오랑캐가 됨을 면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명나라에서 장려하는 칙서
가 내려오자마자 부정한 의논이 곧장 나왔는데 차마 ‘청국한(淸國汗)’이란 세 글자를 그 입에서 거론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승지와 시신(侍臣)을 내보내라고 한 말이 있으니, 아, 이 또한 너무도 심합니다. 국정을 도모하는 것은 귓속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비밀스럽게 말하는 의리가 없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이라면 1,000만 명이 참석하여 듣더라도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습니까? 만일 의롭지 못한 것이라면 아무리 은밀한 곳에서 하더라도 부끄러운 것이니 비록 비밀리에 하더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칙서' 관련자료
아! 옛날 화의를 주장한 자는 진회(秦檜)2)
만한 사람이 없는데 당시에 그가 한 언어와 사적(事迹)이 사관
史官)의 필주(筆誅)
(崔鳴吉, 1586~1647)은 결국 하였으니 전하의 죄인이 될 뿐만 아니라 진회의 죄인이기도 합니다. …(후략)…
2)
진회(秦檜) : 중국 남송의 정치가(1090~1155)로서 중국의 대표적인 간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금(金)나라와 대치할 때 이름난 무장인 악비(岳飛)를 무고하게 죽이고, 주전파(主戰派)를 탄압하여 금(金)나라와 화친을 체결하였다.
'사관' 관련자료
글로 써서 책망함
를 피할 수 없었으니, 비록 크게 간악한 진회라 하더라도 감히 사관을 물리치지 못한 것이 또한 명확합니다. 진회로서도 감히 하지 못한 짓을 감히 최명길
'최명길' 관련자료
『인조실록』권33, 14년 11월 8일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