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는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 Matteo Ricci, 1552~1610)가 지은 책이다. 이마두는 구라파 사람으로 중국과 거리가 8만여 리로 세상이 열린 이래 서로 통한 적이 없었는데, 명나라 만력(萬曆)
명 신종의 연호, 1573~1619
때 예수회 친구인 양마낙(陽瑪諾, 임마누엘, Diaz Emmanuel, 1574~1659)·애유약(艾儒略, 알레니, Giulio Aleni, 1582~1649)·필방제(畢方濟,프란체스코, Sambiasi, Franciscus, 1582~1649)·웅삼발(熊三拔, 우르시스, Sabbathin de Ursis, 1575~1620)·방적아(龐迪我, 빤또하, Didace de Pantoja, 1571~1618) 등 몇 사람과 함께 항해하여 중국에 올 적에 3년 만에야 비로소 도착하였다. 그의 학문은 오로지 천주를 모시는 것을 주장하는데 천주란 바로 유가(儒家)의 상제(上帝)로 천주를 공경하여 섬기고 신봉하는 것은 마치 불교의 석가와 같다. 천당과 지옥으로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면하며 두루 인도하고 교화하는 것으로 예수를 삼으니, 예수란 서양에서 세상을 구제하는 칭호이다.
스스로 예수라는 이름을 말한 것이 중고 시대부터 일어났다 한다. 순박한 풍속이 점차 없어지고 성현들이 세상을 떠나자, 욕심을 따르는 사람이 날로 많아지고 이치를 따르는 사람이 날로 적어졌다. 이에 천주가 크게 자비심을 내시어 친히 와서 세상을 구제하셨는데, 정숙한 여인을 택하여 어머니를 삼고 육체적 결합 없이 유대에서 태를 빌려 태어나니, 이름은 예수였다. 몸소 교훈을 세워 서양에 교화를 편 지 33년 만에 다시 하늘로 돌아갔으며, 그 가르침은 마침내 구라파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 한다. 천하의 큰 대륙이 5개 인데, 가운데는 아시아가 있고 서쪽에는 구라파가 있는데, 지금의 중국은 곧 아시아 주의 10분의 1쯤 되며 유대는 그 서쪽에 있는 한 나라이다.
예수의 시대로부터 1603년 만에 이마두가 중국에 이르렀는데, 그의 친구들은 모두 코가 크고 눈동자가 푸르며 네모진 건에 푸른 도포를 입고 있었으며, 처음부터 어린 몸을 지켜 일찍이 혼인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벼슬하여도 배례(拜禮)하지 않고, 오직 날마다 대관의 봉급을 받으면서 중국 말을 배우고 중국 서적을 읽어 저술한 것이 수천 가지에 이르렀다. 우러러 천문을 보고 굽어 지리를 살피며 미루어 계산하고 책력을 만드는 묘한 기술은 중국에도 일찍이 없었던 것들이었다. 저 먼 지방의 외신들이 큰 바다를 건너와 학문하는 사대부
들과 함께 유학하는데, 사대부
들이 모두 옷깃을 여미고 숭배하여 선생이라 부르고 감히 대항하지 못했으니, 이들 역시 호걸스런 선비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교를 배척하기는 지극히 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들이 끝내는 불교와 함께 환망으로 빠지고 말았다는 것을 모른다.
'사대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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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책에 “서양에 옛날 피타고라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소민들이 기탄없이 악을 저지르는 것을 서글퍼 하여 윤회설1)
을 만들어 내었다. 군자가 결단하여 말하길, ‘그 뜻은 좋으나, 그 말한 바는 모자람을 면치 못한다’고 하여 그 설은 끝내 없어졌다. 이때 이 말이 갑자기 외국으로 누설되자, 석가는 새로운 교를 세우려고 하여 이 윤회설을 이어받았다. 한나라 명제(明帝)는 서쪽에 종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구해 오게 하였는데, 사신이 가다가 중도에서 신독(身毒)의 나라2)
로 잘못 들어가 이것이 중화에 전해졌다. 간혹 전생의 일을 기억하는 자가 있는데 마귀가 사람을 속인 소치이니 이는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의 일들일 뿐이다. 세계 만방의 생사는 고금이 같은데 불교 외에는 전생의 일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라 하였다.
1)
불가의 말로, 중생들이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여 이 업보로 수레바퀴처럼 세상에 태어남을 말한다.
2)
신독(身毒)의 나라 : 중국에서 3세기 이전 인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며, 이외에 당시 인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는 현두(賢豆), 천독(天篤), 천축(天竺) 등이 있다. 신독은 산스크리스트어로 내[川]를 의미하는 신두(Sindhu)에 기원한다고 한다. 오늘날 일반화된 인도라는 명칭은 7세기의 중국 승려 현장(玄奘, 600~664)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선유들 역시 이러한 설을 말했으니, 오직 고금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으로 증거를 대는데, 세상의 견문이 적은 자들은 오히려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의심을 한다. 이제 온 세계가 함께 허실을 밝히고 있으니 더욱더 드러나게 되었다. 다만 중국에 한 명제 이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가 아울러 천당이나 지옥에 대하여 증거할 만한 것이 없었으니, 어찌 유독 윤회설만이 나쁘고 천당 지옥설은 옳단 말인가.
『성호집』권55, 제발, 발천주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