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대비가 하교하기를, “선왕(先王)께서는 매번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邪學)은 저절로 종식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듣건대, 이른바 사학이 옛날과 다름이 없어 서울에서부터 경기·충청에 이르기까지 날로 더욱 불길같이 성하게 번져 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나라가 나라다운 것은 교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른바 사학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인륜을 무너뜨리고 교화에 배치되어 저절로 오랑캐와 금수(禽獸)의 지경에 돌아가고 있는데, 저 어리석은 백성이 점점 물들고 어그러져서 마치 어린아기가 우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으니, 이 어찌 측은하게 여겨 상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감사
와 수령은 알아듣도록 타일러서 사학을 하는 자들로 하여금 번연히 깨우쳐 마음을 돌이켜 개혁하게 하고, 사학을 하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두려워하며 징계하여 우리 선왕께서 세워놓은 풍성한 공로를 저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와 같이 엄금한 후에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무리가 있으면, 마땅히 역률(逆律)
을 닦아 밝히고, 그 통(統) 안에서 만일 사학을 하는 무리가 있으면 통의 우두머리가 관가에 고하여 징계하여 다스리되, 마땅히 의벌(劓罰)
'감사' 관련자료
역적을 처벌하는 법률
로 다스릴 것이다. 수령은 각기 그 지경 안에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1)
1)
조선 시대 범죄자 색출과 세금 징수, 부역 동원 따위를 위해 다섯 민호(民戶)를 한 통씩 묶던 호적 제도.
코를 베는 형률
을 시행하여 진멸함으로써 남은 무리들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 이 하교를 가지고 조정에서는 거듭 밝혀서 경외(京外)에 명령을 내려 알리도록 하라. ” 하셨다. 이보다 앞서 서양국(西洋國)에서는 이른바 야소(耶蘇)
조에 법으로 엄금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법망에서 빠져나간 남겨진 무리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강습하여 점차 서로 오염시켜 포도청에 붙잡히는 자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이러한 하교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의 천주학(天主學)이 있었는데, 대개 천당과 지옥의 이야기로 현혹시켜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윤리를 업신여기며 강상(綱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이름
을 어지럽혔으니, 이교(異敎) 가운데 가장 윤리와 기강이 없는 것이었다. 그 책이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는데 더러 빠져들어 어그러지는 자가 있었으므로, 정조
'정조' 관련자료
『순조실록』권2, 1년 1월 10일 정해
좌포장(左捕將) 임율(任嵂)과 우포장 신응주(申應周)가 사학죄인(邪學罪人) 황사영(黃嗣永)의 흉서(凶書)를 가지고 합문(閤門) 밖에 이르니, 들여보내라고 명하여 살펴본 후에 국청에 내리었다. 죄인 황사영은 사족(士族)으로서 사술(邪術)에 미혹됨이 가장 심한 자였는데,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미리 알고 의금부(義禁府)에서 체포하는 처음에 상복(喪服)을 입고는 성명을 바꾸고 혹은 토굴에 숨어서 종적을 감추어 반 년이 지나기에 이르렀었다. 포청(捕廳)에서 은밀히 염탐하여 지금에야 제천(堤川) 땅에서 붙잡아 그의 문서(文書)를 수색하니 백서(帛書)가 있는데, 장차 북경(北京)의 천주당(天主堂)에 통하려고 한 것이었다. 서폭(書幅)에 꽉 찬 흉악하고 참람한 말은 주문모(周文謨) 이하의 여러 죄인이 복법(伏法)되었다는 일을 서양인(西洋人)에게 상세히 보고하려 한 것으로서, 그 중에 세 조항의 흉언(凶言)이 있는데 하나는 황지(皇旨)를 꾀하여 얻어서 조선(朝鮮)에 교유(敎諭)하여 서양인을 가까이 교제하도록 함이었고, 하나는 안주(安州)에 무안사(撫按司)를 열어 친왕(親王)이 국가 일을 맡아 교훈(敎訓)을 모으도록 명하게 하여 틈을 타서 행동하려 함이었고, 하나는 서양국(西洋國)에 통하여 큰 선박(船舶) 수백 척에 정병(精兵) 5, 6만 명을 꾸며 보내고 대포(大砲) 등 날카롭고 해로운 병기(兵器)를 많이 싣고 와서 동국(東國)을 깜짝 놀라게 하여 사교(邪敎)가 행해지도록 함이었다.
『순조실록』 권3, 1년 10월 5일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