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지남(舟橋指南)
배다리의 제도는 『시경(詩經)』에도 실려 있고, 역사책에도 나타나 있으니, 그 제도가 시작된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역상 외지고 고루하여 지금까지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내가 반드시 시행하고자 하여, 묘당
(廟堂)에 자문을 구하고 부로들에게까지도 탐문하기를 근면하고도 간절히 하였다. 그러나 명에 응하여 일을 시행함에 ‘분수명(分數明)’
14) 맹추(孟秋)에 쓰다. …(하략)…
'묘당' 관련자료
분수에 밝음
세 글자를 마음속에 새기고 일을 착수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요량(料量)이나 배포(排布)가 주먹구구식의 서툰 계책에서만 나와, 강물의 너비는 총 400~500발[把]이 되고, 배의 척수는 총 80~90척이면 되고, 재목은 총 4,000~5,000그루[株]면 되고, 모역(募役)은 총 500~600명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진행하며 계획을 세우고는, 마침내 사전의 치밀한 분석은 다시 해 보지 않았다. 조치를 취함에 미쳐서 배를 연결할 경우 배 한 척을 끌어다 그 높낮이를 비교해 보고는 서로 맞지 않으면 물려 보내므로 배 한 척을 연결하는 데 거의 한나절이 소비되고, 다리를 제조할 경우 100척을 매어 놓고 배치되길 기다렸다가 남으면 돌려 보내므로 100척의 배가 폐업을 하는 기간이 수개월이나 되고, 나무를 켜는 것을 여러 도에 독촉하므로 고을과 백성이 곤란을 겪고 있다. 역정(役丁)의 경우 군교(軍校)에게 분부하여 제 마음대로 감독하도록 하므로, 헛된 고함으로 꾸짖을 줄만 아니, 어찌 음지에서 농간질을 하는 일이 없겠는가. 잔디를 깔 경우 작은 일이라는 핑계만 대고 전혀 유의를 하지 않고, 선창(船艙)의 경우 명색은 규례를 상고하여 보았다고 하나, 물 위의 파랑을 한 번 만나 보고서야 비로소 야단법석들이다. 이러고도 일을 잘 기획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배다리의 설치는 매년 거둥의 필수 사항이니, 이제는 마땅히 한 벌의 변치 않을 법식을 강정(講定)하여야 하는데, 그 요체를 강구하여 보면 ‘분수명(分數明)’이라는 세 글자에 불과하다. 한가로운 여가를 이용하여 부질없이 아래와 같이 적어서, 일을 맡은 자가 아뢰어 재가받기를 기다리는 바이니, 배다리 제도가 정해지면 위로는 경비의 사용에 보탬이 되고 아래로는 민폐를 덜게 될 것이다. 어찌 옛 법도를 본받는 효과뿐이랴. 일거양득이라는 말이 바로 배다리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경술년(1790, 정조
'정조' 관련자료
『홍재전서』 권59, 잡저6, 「주교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