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작인은 단결하라
(一)
사람은 본연의 자유와 평등이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최초 생활 상태를 살펴보면 아무 계급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자유 평등을 구속한 흔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 인류가 홍수⋅맹수⋅기후⋅풍토 등 모든 자연현상과 싸우지 않으면 도저히 생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인류 사회의 공동생활을 점점 조직으로 발달하게 했다. ……(중략)…… 혹은 스스로 추장이라 하고 혹은 그 부하라 했으니 이것이 곧 인류생활상 계급이라는 형식이 발생한 원인이다. 따라서 이 계급 발생의 원인이 다시 법률이라는 질서 형식으로 자유 평등을 구속한 근거가 되었다.
이 계급 발달의 결과는 마침내 봉건제도를 발생하게 했다. 인류 사회는 이때부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두 존재로 명확하게 나뉘었다. 그런데 이 두 계급은 언제든지 서로 투쟁하여 갑이 망하면 을이 새로 일어나고 을이 패퇴하면 다시 병이 승리하여 오직 지배자의 위치 쟁탈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반복해 왔다. 그 와중에 사회는 모든 악덕과 행패로 부패했다. ……(중략)…… 학술과 문화의 혜택도 일부 계급에 악용되어 모든 과학의 발명은 일반 민중을 괴롭게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뿐이다. 또 이전 세기의 유럽을 흔들던 자유주의 혁명의 성과는 산업혁명을 야기했으며, 산업혁명의 결과는 목축민 시대부터 배태되었던 자본주의를 완전무결하게 탄생시키고 성숙하게 했다.
『동아일보』, 1922년 7월 31일, 「소작인 문제에 대하야(1), 조선노농공제회의 선언, 소작인은 단결하라」
(二)
자본주의라는 괴물의 횡행은 독일에서는 군국주의로, 영국에서는 식민주의로, 프랑스에서는 사치주의로, 러시아에서는 전제주의로, 아메리카에서는 먼로주의로 전 세계를 다채롭게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 중심 세력을 장악한 상공업 신사 그룹들은 철두철미하게 자본주의의 권력자가 되어 한 손으로는 왕정을 견인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민중을 압살하면서 기름진 음식과 부드러운 옷에 파묻혀 빈약한 노동자를 착취하여 자본을 집중했다. 횡포⋅가혹⋅교활⋅허위 등 모든 비인간적인 행위를 감행하던 자살 정책은 마침내 지난 5년간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그 참혹한 전쟁으로 자본주의의 한 부분이 여지없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이른 공업 발달에 따라 공장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희생되었고, 그 자본주의가 대서양을 건너 동방의 각국으로 침입할 때 동방은 아직도 공업이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농촌 소작인이 자본주의의 화신인 지주들에 의해 착취당했다.
(三)
이상은 현대 자본주의의 발달 상태를 역사적으로 대강 살펴본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더욱 조선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작농이 참상을 겪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십수 년 전까지는 소위 특권계급 곧 사대부
, 양반
, 토호
같은 자들이 도시를 피해 농촌에 자리 잡고, 그들의 조상이나 외척 가문의 권세를 배경으로 하여 농민의 생활을 위협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중략)…… 비록 구실이라도 소위 도덕 윤리에 어긋난 것이 없으면 그들은 농민에게 직접적으로는 간섭하지 못했다. 간섭한다 해도 중농 이상의 생활이 여유로운 자만 착취했다. ……(중략)…… 소작인의 수효가 극히 적고 그 생활도 그다지 비참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통기관이 발달하면서 각국의 상공업자가 왕래하게 되어 ……(중략)…… 문명을 수입하는 원동력이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자본주의를 선전하는 유일한 기관일 뿐이었다.
'사대부' 관련자료
'양반' 관련자료
'토호' 관련자료
『동아일보』, 1922년 8월 1일,「소작인 문제에 대하야(2), 조선노농공제회의 선언, 소작인은 단결하라」
(三에 이어)
그래서 그 무참한 자본주의가 조선에 침입하자마자 전반적인 경제생활 상태는 돌변했다. 모든 물가가 올랐으며 토지 가격도 1배 2배에서, 10배 20배 30배까지 놀랄 만큼 하늘을 찌르는 시세를 보인 동시에, 회사나 개인이 토지를 겸병하기에 열중했다. 비록 다른 상공업 국가들과 같이 도시 공업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수공업으로 모든 것을 만들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조선의 도시에서 자본주의적 상공업이 빈약한 농촌을 착취할 정도로 제법 발달했다. ……(중략)…… 2할에 불과한 지주들을 위한 피의 제물로서 바쳐지는 희생 동물의 운명과 같다. 지주는 특권만 있고 소작인은 의무만 있으며, 지주는 자본가인데 소작인은 무산자이며, 지주는 신사인데 소작인은 노동자이며, 지주는 상전인데 소작인은 노예이며, 지주는 권력자인 동시에 소작인은 피압박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후략)……
『동아일보』, 1922년 8월 2일, 「소작인 문제에 대하야(3), 조선노농공제회의 선언, 소작인은 단결하라」
(四)
그런즉 오늘날 소작인의 생활 상태는 완전히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다. 사람 본연의 생존을 위해 어떠한 보장도 없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그들의 운명은 조만간 고통과 타락 속에서 파멸해 갈 뿐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현대 정치는 전부 자본주의 위에서 수립된 것이다. 따라서 현행 법률은 소작인은 배제한 채 소작인을 착취하는 상부 계급만을 위해 제정되었다. ……(중략)……
그런즉 오늘날 소작인의 생활 상태는 완전히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 사람 본연의 생존을 위한 어떠한 보장도 없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그들의 운명은 조만간 고통과 타락 속에서 죽어 없어질 뿐이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보면 현대 정치는 전부 자본주의 위에서 수립된 것이다. 따라서 현행 법률은 소작인은 배제한 채 소작인을 착취하는 상부 계급만을 위해 제정되었다. ……(중략)……그런데 오늘날 일체 소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의 반성을 요구하자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명백히 늑대에게 양을 지키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작 문제는 소작인 자체의 자각이 아니면 안 된다. 소작인의 자각은 지금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로서는 불가능하며, 어떠한 조직적인 단체가 없으면 문제의 이해관계를 연구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하략)……
『동아일보』, 1922년 8월 3일,「소작인 문제에 대하야(4), 조선노농공제회의 선언, 소작인은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