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개조론(民族改造論)
머리말
나는 많은 희망과 끓는 정성으로, 이 글을 조선 민족의 장래가 어떠할까 어찌하면 이 민족을 현재의 쇠퇴에서 건져 행복과 번영의 장래에 인도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는 형제와 자매에게 드립니다.
이 글의 내용인 민족 개조의 사상과 계획은 재외 동포 중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내 것과 일치하여 마침내 내 일생의 목적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나는 조선 내에서 이 사상을 처음 전하게 된 것을 더할 수 없는 영광으로 알며, 이 귀한 사상을 먼저 깨달은 위대한 두뇌와 이에 공감하는 여러 선배 동지에게 이 기회에 또 한 번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원컨대 이 사상이 사랑하는 청년 형제자매의 순결한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박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하다.
1921년 11월 11일 태평양 회의가 열리는 날에 춘원 씀
【상】
민족 개조의 의의
근래에 전 세계에 개조라는 말이 많이 유행됩니다. 일찍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파리에 평화 회의가 열렸을 때에 우리는 이를 세계를 개조하는 회의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국제연맹이 조직되매 더욱 열광하는 열정을 가지고 이는 세계를 개조하는 기관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큰일에나 작은 일에나 개조하는 말이 많이 유행되게 되었습니다.
개조라는 말이 많이 유행되는 것은 개조라는 관념이 다수 세계인의 사상을 지배하게 된 증표입니다. 진실로 오늘날 신간 서적이나 신문 잡지나 연설이나, 심지어 상품의 광고에까지, 또 일상의 회화에까지 개조란 말이 많이 쓰이는 것은 아마도 이전에는 없었던 현상일 것입니다. 무릇 어떤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어떤 다른 관념이 지배하려는 시대가 올 때에는 반드시 인심에 경신(更新)이라든지, 개혁이라든지, 변천이라든지, 혁명이라든지 하는 관념이 드는 것이지만 경신⋅개혁⋅혁명 같은 관념만으로 만족치 못하고 더욱 근본적이요 더욱 조직적이요 더욱 전반적⋅삼투적(滲透的)인 개조라는 관념으로야 비로소 인심이 만족하게 된 것은 실로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지금은 개조의 시대다!” 하는 것이 현대의 표어이고, 정신입니다. 제국주의의 세계를 민주주의의 세계로 개조하여라, 자본주의의 세계를 공산주의의 세계로 개조하여라, 생존경쟁의 세계를 상호부조의 세계로 개조하여라, 남존여비의 세계를 남녀 평권의 세계로 개조하여라… 이런 것이 현대의 사상계의 소리의 전체가 아닙니까.
이 시대사조는 우리 땅에도 들어와 각 방면으로 개조의 부르짖음이 들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 사람으로서 시급히 하여야 할 개조는 실로 조선 민족의 개조입니다.
대체 민족 개조란 무엇인가. 한 민족은 다른 자연현상과 같이 시시각각으로 어떤 방향을 취하여 변천하는 것이니 한 민족의 역사는 그 민족의 변천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군 시대의 조선 민족, 삼국 시대의 조선 민족, 고려나 조선 시대의 조선 민족, 또는 같은 이조시대로 보아도 임란 이전과 이후, 갑오(1894년) 이전과 이후, 이 모양으로 조선 민족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내려왔습니다. 우리가 난 뒤 30년간으로 보더라도 조선이 얼마나 변하였나, 정치는 말 말고 의복⋅주거⋅습관 등 밖에 드러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사상의 내용, 감정의 경향까지 몰라보게 변하여 왔습니다. 남자가 상투를 버리고 여자가 쓰개를 벗어 버린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변화입니까. 과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나날이 변하여 갑니다. 더욱이 재작년 3월 1일 이래로 우리의 정신의 변화는 무섭게 급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금 이후에도 끝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의 변화입니다. 또는 우연의 변화입니다. 마치 자연계에서 끊임없이 행하는 물리학적 변화나 화학적 변화와 같이 자연히,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우연히 행하는 변화입니다. 또는 무지몽매한 야만 인종이 자각 없이 변해가는 변화입니다.
문명인의 최대한 특징은 자기가 자기의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계획된 진로를 밟아 노력하면서 시각마다 자기의 속도를 측량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본능이나 충동에 따라 하지 않고 생활의 목적을 확립합니다. 그리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의 모든 행동은 오직 이 목적을 향하여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특색은 계획과 노력에 있습니다. 그와 같이 문명한 민족의 특징도 자기의 목적을 의식적으로 확립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일정한 조직적이고 통일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적이고 통일적인 노력을 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시시대의 민족, 또는 아직 분명한 자각을 가지지 못한 민족의 역사는 자연현상의 변천의 기록과 같은 기록이지만, 이미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의 역사는 그 목적의 변천의 기록이요, 그 목적들을 위한 계획과 노력의 기록일 것입니다. 따라서 원시민족, 미개민족의 목적의 변천은 오직 자연적 변천, 우연적 변천이지만,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의 목적의 변천은 의식적 개조의 과정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경우에 개조의 현상이 생기나? 이미 가진 민족의 목적과 계획과 성질이 민족적 생존 번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 성질로 그 목적을 향하여 그 계획대로 나아가면 멸망하리라는 판단을 얻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자각과 판단을 얻는 것부터가 벌써 고도의 문화력을 가졌다는 증거이니 그것이 없는 민족은 일찍 이러한 자각을 가져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마침내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능히 전 민족적 생활의 핵심을 통찰하여 이 방향의 진로는 멸망으로 가는 것이라는 분명한 판단을 얻는 것이 그 민족을 다시 살리는 첫걸음이고, 새싹입니다. 그리고 한 번 이러한 판단을 얻거든 총명하게 새로운 진로 새로운 목적과 계획을 정하여 민족 생활의 진로를 전환하도록 의식적으로 조직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그 민족을 다시 살리는 유일한 길이니, 이는 매우 총명하고 용단 있고 활기 있는 민족 아니고는 쉽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위에서 민족 개조한 것이 민족 생활의 진로의 방향 변환, 즉 그 목적과 계획의 근본적이요 조직적인 변경인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오직 어떤 부분을 개혁하거나 보수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말하면 그 앉은 방향과 기초와 방의 배치와 구조와 재료를 전혀 새로운 설계에 의하여 다시 짓는다는 것이니, 비록 낡은 재료를 다시 쓴다 하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설계에 맞춰 쓸 만한 것이면 쓰는 것이 될 뿐입니다. 이러므로 민족의 개조라는 것은 여간한 경우에 경솔히 부르짖을 바가 아니니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이대로 가면 망한다 할 경우에 운명을 걸고 승부를 겨룬다는 큰 결심, 큰 기백으로 할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로 보건대 한 민족의 전 생애(4천년이나 5천년)에 많아야 두세 번 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청년다운 생기가 없이는 도저히 못할 일인 듯합니다. 다음에는 세계 역사상에 민족 개조 운동의 실례 몇 가지를 들어 더욱 민족 개조라는 사상을 분명히 하려 합니다.
……(중략)……
결론
나는 위에서 민족 개조의 의의와, 역사상의 실례와, 조선 민족 개조는 절대로 꼭 필요하고 중요함과 민족의 가능함과, 그 이상과 방법을 말하였습니다.
……(중략)……
이 논문에 말한 것으로 이미 짐작도 하셨겠지만, 나는 차라리 조선 민족의 운명을 비관하는 사람입니다. 전에 말한 비관론자의 이유로 하는 바를 모두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순하지 못한 환경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피폐한 경우에 있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성질은 열악합니다 (근본성은 어찌되었든지 현상으로는). 그럼으로 이러한 민족의 장래는 오직 쇠퇴와 쇠퇴로 점점 떨어져 가다가 마침내 멸망에 빠질 길이 있을 뿐이니 결코 한 점의 낙관도 허락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30년만 이대로 버려두면 지금보다 배 이상의 피폐에 이르러 그야말로 다시 일어날 여지가 없이 되리라 합니다. 만일 내 말이 과격하다 하거든 지나간 30년을 돌아보시오! 얼마나 더 성질이 부패하였나, 기강이 해이하였나, 부(富)가 줄었나, 자신이 없어졌나. 오직 조금 진보한 것은 신지식인데, 지식은 무기와 같아서 우수한 자에게는 복이 되고 열악한 자에게는 화(禍)가 되는 것입니다. 이 소득으로 족히 잃은 것의 10분의 1도 채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구제할 길이 무엇인가. 오직 민족 개조가 있을 뿐이니 곧 본론에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을 문화 운동이라 하면 그 가장 철저한 자라 할 것이니 세계 각국에서 쓰는 문화 운동의 방법에다가 조선의 사정에 응할 만한 독특하고 근본적이요, 조직적인 한 방법을 첨가한 것이니 곧 개조 동맹과 그 단체로서 하는 가장 조직적이요 포괄적인 문화 운동입니다. 아아! 이야말로 조선 민족을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최후에 한 가지 미리 변명할 것은 이 개조 운동이 정치적이나 종교적인 어느 주의와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니, 곧 자본주의⋅사회주의⋅제국주의⋅민족주의 또는 독립주의⋅자치주의⋅동화주의, 어느 것에도 속한 것이 아닙니다. 개조의 성질이 오직 민족성과 민족 생활에만 한하였고, 또 목적하는 사업이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덕체지(德體知) 삼육(三育)의 교육적 사업의 범위에 제한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정치적 색채가 있을 리 없고 또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루소의 말에 “정치가가 되기 전에, 군인이나 목사가 되기 전에 우선 사람이 되게 하여라” 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개조 운동의 한계이니 동맹자 중에는 온갖 주의자, 온갖 직업자, 온갖 종교의 신자를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니 대개 무실(懋實)하자, 역행(力行)하자, 신의(信義) 있자, 봉공심(奉公心)을 가지자, 한 가지 학술이나 기예를 배우자, 직업을 가지자, 학교를 세우자 하는 것 등은 어느 주의자나 어느 종교의 신자를 말할 것도 없이 공통한 신조로 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어느 종교의 신자는 개조 동맹에 들어 그대로 수양하므로 참으로 좋은 신자가 될 것이요, 사회주의자는 참으로 좋은 사회주의자가 될 것이니 대개 이는 사람의 근본 되는 모든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나는 민족 개조에 관한 사상과 계획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서술하였습니다. 나 자신이 이 주의자인 것은 물론이고 독자 중의 다수가 여기에 공감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을 확신하게 되니 넘치는 기쁨으로 내 작은 생명을 이 고귀한 사업의 기초에 한줌 흙이 되라고 바칩니다.
……(1921년 11월 22일 밤)……
『개벽』, 1922년 5월호
민족적 경륜(1)
민족 백년대계의 요체
1.
한 회사의 사업에 일종의 계획이 필요하다 하면 한 민족의 사업에도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만일 상업이나 공업을 경영하기 위하여 회사를 조직할 때에 분명하고 자세한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고 한다면 누구나 이를 어리석은 사람의 일이라고 비웃을 것이니 이 비웃음은 가장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선 민족은 지금 이 비웃음을 무계획 상태에 있는 것이다.
2.
……(중략)……
아직까지 우리 민족에게는 민족적 계획이 없다 할 것이다. 각각의 사람들 의식 속에 잠재한 목적과 계획은 있으나 그것이 아직 응집하지 못한 것이다. 산산이 흩어진 구름과 안개요 형체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3.
그러면 그것이 응집하여 형체를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어제 신년호에도 주장한 바와 같이 오직 단결의 한 길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가장 낡은 진리이고 진리는 영원히 새로운 것이다.
우리는 단결의 필요를 수십 년 이래로 논하였고 또 단결하자는 의사도 그만큼 많이 역설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까지도 추상적 이론이었고 실행, 즉 구체화의 시기에 이르지 못하였었다. 이 모양으로 가는 동안에 우리의 민심은 날로 뿔뿔이 흩어져 우리의 민력은 날로 쇠퇴하고 미약해져 갔다.
우리는 이러고 있을 수 없는 절박한 시기를 맞이하였다. 더욱이 신년을 맞아 과거를 회고하고 장래를 전망할 때에 위급을 느끼고 “시급히 무슨 운동을 해야겠다”는 전율할 만한 내적 요구가 치열함을 자각한다. 진실로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온 정력을 경주하여 이때에 민족 백년대계를 확립하고 그것이 확립되는 날부터 그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전 민족적 대분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진실로 우리 민족의 처지는 한 민족의 일생에 한 번이나 만날 것이요 두 번도 만나지 못할 그러한 위기이다.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나 하는 것이 조선 민족의 민족적 일생이 결정될 최대 시련이라 할 것이다.
……(하략)……
『동아일보』, 1924년 1월 2일
민족적 경륜(2)
정치적 결사와 운동
……(전략)……
2.
그런데 조선 민족은 지금 정치적 생활이 없다. 아마 2천만에 이르는 민족으로 전혀 정치적 생활이 없는 민족은 현재 세계의 어느 구석을 찾아도 없을 것이요, 또 유사이래의 모든 역사 기록에도 없는 일이다. 실로 기괴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 이후로 조선 민족에게는 정치적 자유사상이 무서운 세력으로 스며들어 정치 생활의 욕망이 옛날 독립한 국가 생활을 하던 때보다 치열하게 되었다. 이것은 가장 당연한 일이다.
3.
그러면 왜 지금의 조선 민족에게는 정치적 생활이 없나. 그 대답은 가장 단순하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이래로 조선인에게는 모든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것이 첫째 원인이다. 병합 이래로 조선인은 일본의 통치권을 승인하는 조건 밑에서 하는 모든 정치적 활동, 즉 참정권⋅자치권의 운동 같은 것은 물론이요 일본 정부를 적수로 하는 독립운동조차도 원치 아니하는 강렬한 절개 의식이 있었던 것이 두 번째 원인이다.
이 두 가지 원인으로 지금까지 하여온 정치적 운동은 전혀 일본을 적국시하는 운동뿐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정치 운동은 해외에서나 만일 국내에서 한다 하면 비밀결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4.
그러나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나 조선 내에서 전 민족적인 정치 운동을 하도록 새로운 방면의 길을 열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조선 내에서 허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어디 있는가. 우리는 두 가지를 들려고 한다.
(1) 우리 당면의 민족적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2) 조선인을 정치적으로 훈련하고 단결하여 민족의 정치적 중심 세력을 만들어서 장래 영원하고 무궁한 정치 운동의 기초를 이루기 위하여
5.
그러면 그 정치적 결사의 최고 또는 최후의 목적이 무엇인가. 다만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다. 그 정치적 결사가 만들어져 성장하기를 기다려 그 결사 자신으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스스로 결정케 할 것이라고.
……(하략)……
『동아일보』, 1924년 1월 3일
민족적 경륜(3)
산업적 결사와 운동
……(전략)……
3.
한 경제적 단위를 이룬 지방이 산업이 미숙한 시대에 있을 때에는 보호 정책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이론과 사실이 같이 증명하는 바다. 그런데 요즈음 조선은 누구나 아는 것과 같이 산업이 미숙한 시대, 미숙한 시대라는 것보다도 싹을 틔우는 시대에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강한 보호 정책을 써야 할 것은 자명의 이치라 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 일본과 조선 간의 중요 관세가 이미 철폐되어 조선에서도 제조할 수 있는 조선인의 일용품이 제방이 터진 모양으로 조선으로 흘러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인의 경제력이 날로 고갈하여 대규모 산업을 기획할 능력이 갈수록 쇠약하여 간다. 이러한 경우를 당하여 우리가 만일 적당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멀지 않아 우리가 경제적으로 파멸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하다.
4.
“그러나 이 제도 밑에서야 어찌 할 수가 있나?” 이러한 말은 도저히 허할 수 없는 말이다. 용서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 밑에서 가능한 무슨 방침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대한 의무이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은가. 우리는 물산 장려의 낡은 진리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소극적으로 보호관세의 대용 효력을 얻기 위하여 조선 생산물 사용 동맹자를 얻을 것
(2) 적극적으로 조선인의 일용품이요 또 조선에서 제조가 가능한 산업 기관을 일으킬 자금의 출자자를 얻기 위하여 일대 산업적 결사를 조직하여야 할 것이다.
5.
조선의 산업은 위에서 말한 산업적 대결사의 힘이 아니고는 결단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록 이것이 완만한 듯하더라도 그것이 유일한 길인 이상에는 그것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략)……
『동아일보』, 1924년 1월 4일
민족적 경륜(4)
교육적 결사와 운동
……(전략)……
2.
새들이 새끼에게 나는 법과 적을 피하는 법과 먹이를 잡는 법을 가르친다. 그 가르침이 얼마나 열심인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만한 정도라 한다. 짐승도 그러하다. 교육의 본의가 여기 있는 것이다. “적을 피하고 먹이를 잡는 법의 교육과 연습”에.
그런데 조선 고대의 교육은 첫째 전 민중도 아니었고 둘째 적을 피하고 먹이를 구하는 실용적인 것도 아니었고 대부분 장식적이었으며 근년의 교육도 아직 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대개 일반 민중이 아직도 옛 방식적 교육 목적의 잘못됨과 교육이 진의를 깨닫지 못한 까닭이다.
……(중략)……
6.
우리의 진로는 위에서 주장한 바로 이미 결정되었을 것이다. 즉 전 민중에게 과학적 지식을 보급하는 대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고 이 운동은 민중의 읽을거리 간행과 민중(특히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강습소의 설치로 얻을 것이요 또 이 일을 하려면 거기 필요한 자금과 인물을 얻기 위한 민중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대결사를 조직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고 지금이 그때이다.
이러한 운동에 대한 자세한 계획은 여기서 말할 것도 아니고 이 결사를 전도 회사에 비교하면 가장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전도 회사가 많은 자금을 가지고 각지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모양으로 이 결사에서는 각 농촌에 어문과 과학의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같을 것이다.
위에서도 이 세 종류의 결사와 운동이 조선 민족 구제의 삼위일체적 방책인 것을 말하였고 이 교육 운동은 어떤 의미로 보아 다른 두 종류의 운동의 기초가 될 것이다. 이제 그 관계를 다시 깊이 생각해보고 연구해 보자.
『동아일보』, 1924년 1월 5일
민족적 경륜(5)
교육 산업 정치의 관계
……(전략)……
2.
우리는 앞에서 4회에 걸쳐 정치적 결사와 산업적 결사와 교육적 결사가 조선 민족을 구제하는 삼위일체의 방책인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관계는 어떠한가. 다시 말하면 이 세 가지는 따로따로 시기를 떼어서 할 것인가, 또는 동시에 할 것인가. 각각 완전히 독립적으로 할 것인가, 또는 밀접한 관계가 있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실제에는 너무 중대한 문제이다.
3.
정치적 결사는 전 조선 민족의 중심 세력이 되기를 약속해야 할 것이니 이 결사의 의견이 곧 조선 민족의 의견이요 이 결사의 행동이 곧 조선 민족의 행동이 되기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그리 되려면 될 수 있는 대로 전 조선 각지에서 다수의 회원을 얻을 필요가 있고 다수의 회원을 얻으려면 부득이 농민에게로 가야 할 것이니 대개 조선에서 1400만이 농민인 까닭이다.
농민 중에서 많은 회원을 얻으려면 첫째 농민 중에 지식을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일을 하는 것이 교육적 결사의 사명이다. 교육적 결사에서는 한편 과학적 지식을 보급하면서 다른 한편 농촌 자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생활의 방식을 가르쳐 정치 생활의 준비를 줄 것이다. 이러므로 정치 운동과 농민 교육 운동과는 서로 배와 등이 되어 서로 돕고 어울릴 것이다.
4.
상업적 결사도 그 최후의 목적은 전 조선 내의 모든 산업의 통제에 있을 것이니 그리하려면 거액의 자본이 필요하고 거액의 자본을 얻으려면 수백만의 회원이 필요하고 수백만의 회원을 얻으려면 역시 농민에게로 가야 할 것이다. 아마 이 대산업조합의 기초는 도시의 주민에게보다도 농촌의 주민에게 있을 것이요 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적 결사를 위해서도 농민을 본위로 하는 교육적 결사는 중요한 보조기관이 되는 것이다.
교육적 결사는 농민에게 과학적 지식을 보급할 때에 경제학적 지식도 보급할 것이요 특히 농촌의 경제적 자치와 조선의 경제적 생활에 관하여 가르칠 바가 있을 것이니 각 농촌에는 반드시 대산업조합의 지점이 있어 그 농촌의 경제 생활의 중심이 될 것이다.
5.
이 세 가지 사업 중에 가장 곤란할 듯한 것이 교육적 결사이지만 이것도 결코 불가능은 아니다. 현재 지식계급의 청년 중에는 적당한 사업을 잡지 못하여 고민하는 이가 많으며 또 민중을 위한 헌신을 원하는 이가 많으니 상당한 방법과 경제적 능력만 얻으면 수백인의 민중 교육자를 얻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요, 가령 200인의 민중 교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매년 2만 원가량의 수입만 있으면 할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없어 못 한다 하면 너무도 민족적 수치가 아닌가.
6.
이 세 가지 사업은 동시에 일으킬 것이니 동일한 최고 간부의 지도 하에 분업적으로 하는 것도 좋거니와 사업 자체는 분명히 독립하는 것이 좋을 것이요 특히 정치적 결사 이외의 것은 절대적 색채를 띠지 아니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개 정치적 색채를 띠면 종종 위험이 따르는 까닭이다.
7.
조선인으로 누군들 조선인의 운명을 근심하지 않는 이가 있으랴. 또 조선인의 운명을 근심하는 이는 반드시 조선인의 살길을 깊이 연구할 것이다. 그러하거늘 지금까지에 조선의 민중적 경륜이 확립하지 못하여 전 민족이 거취를 찾지 못함은 너무 개탄할 일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확신하는 바를 피력하는 것이니 이것이 기회가 되어 민족적 경륜에 관한 열렬하고 절박한 궁리가 생기고 아울러 금년 내로 그 경륜에서 나오는 여러 사업이 비롯하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1924년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