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Ⅳ. 지배세력의 기반 확대

Ⅳ. 지배세력의 기반 확대

 통일신라시대의 후기에 이르러서 한국사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지배세력의 사회적 기반이 점점 확대되어 갔던 것이다. 우선 진골 귀족들이 왕권의 전제화에 반대하여 다시 그 세력을 키워 갔다. 또 동시에 진골 다음 신분층인 六頭品 귀족들이 그들의 학문적 실력을 내세워 진골과 마찬가지로 정권에 참여하기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대한 현상은, 지금까지 중앙권력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지방의 豪族들이 대두하여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이들 호족은 일정한 지역의 행정권을 장악하고, 독자적인 군대를 유지하면서, 농민들로부터 조세를 거두어 들였다. 그러므로 호족들은 일정한 지역에 있어서의 정치·군사·경제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결과로 後三國의 분열상태가 형성되었는데, 이 후삼국은 호족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고려에 의하여 통일되기에 이른 것이다.

 골품제도 하에서 왕족 金氏를 핵으로 하는 진골의 지배를 받던 신라와는 달리, 고려에서는 왕족인 開京의 王氏뿐만 아니라, 忠州 劉氏·利川 徐氏를 비롯하여 安山 金氏·仁川 李氏·坡平 尹氏 등등의 많은 호족 출신 가문과, 慶州 崔氏의 신라 육두품 출신 가문 등, 많은 문벌귀족이 정권에 참여하였다. 이것은 엄청난 사회적 발전이었다. 이러한 발전은 후삼국시대의 호족 대두에서 비롯된 것인데, 단순히 혼란된 내란기 정도로 이해되어 오던 시대가 실은 한국사의 커다란 도약기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같이 本貫을 달리하는 많은 門閥貴族들이 고려 사회의 주도적 사회세력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 귀족은 주로 文臣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형식적으로는 兩班의 한편을 구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武臣은 실질적으로는 사회적인 지배세력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무신들의 반란으로 인하여 武人政權이 성립되는데, 이를 계기로 무신도 문신과 대등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무인정권의 성립은 단순한 정권의 교체이기보다도 오히려 사회적 변화였다고 할 수가 있다.

 한편 지방의 鄕吏는 원래 文臣貴族과 그 혈통을 같이한 것이었으며, 또 科擧를 통하여 언제든지 중앙의 문신귀족으로 등장할 수 있는 신분층이었다. 海州 崔氏의 경우가 그 두드러진 예라고 할 수가 있다. 고려 말기에 가면서 이들은 보통 士大夫라고 불리게 되는데, 당시에는 귀족들의 農莊이 크게 발달한 상태여서, 이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에 관직을 얻게 되더라도, 국가로부터 경제적인 보상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들이 私田(農莊)의 개혁을 부르짖게 되는 것은 그러한 때문이었다.

 이들 신흥사대부 세력의 지지 하에 조선왕조가 고려왕조의 뒤를 잇게 되었다. 사대부들이 관직을 얻으면 결국 文班이나 武班에 속하게 되는 것인데 이로 인해서 ‘兩班’이란 말은 문·무의 관직을 차지할 수 있는 사회적 신분층을 부르는 칭호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양반도 혈통을 토대로 하는 신분층이였지만, 고려의 귀족보다는 사회적 기반이 더욱 확대되고, 따라서 그 수가 훨씬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소위 士林이라 불리는 在野의 학자들이 중앙의 정치무대에 등장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촉진되었다. 이같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관리가 될 수 있는 후보자의 수가 늘어났으므로, 그들 모두를 관리로 등용할 수가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이에 그들 전체의 공동이익을 보장하기 위하여 관리 등용 시험인 과거가 중요시되게 되었다.

 그러나 양반사회는 여전히 신분제를 토대로 한 귀족사회였다. 양반은 그들의 특권을 배타적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17세기경에 이르러 이 같은 장치들이 점점 무너지고, 그 밑에 있는 계층들이 크게 사회적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우선 庶孼에 대한 차별대우가 점점 희미해져서, 서얼 출신도 관리로 진출하게 되었다. 또 技術官인 中人들이 크게 사회적 진출을 하였다. 가령 譯官들은 외국의 새로운 문물에 접하여 견문을 넓힐 뿐 아니라 私貿易으로 재부를 축적하여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켰다. 胥吏나 鄕吏들은 행정 능력을 통하여, 醫官·畫員 등은 높은 전문적 지식을 통하여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한편 廣作農民과 都賈商人들도 그들의 재부를 늘리어 사회적인 지위를 향상시키었다. 이 여러 현상은 양반사회의 신분질서를 크게 흔들어 놓고,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세력의 기반을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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