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2. 지리학적 특성
  • 3) 지형
  • (1) 산지

(1) 산지

 우리 나라는 산이 많고, 산은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왔다. 산의 이름 중에는 白·神·天·皇·王·龍·鳳과 같은 글자가 들어간 것이 많다. 그리고 깊은 산속에는 삼국시대 이래 많은 사찰이 들어섰다. 그래서 金剛·毘盧·般若·曺溪·普賢·兜率·芙蓉·蓮花·國師와 같은 불교 계통의 산 이름도 적지 않게 되었다. 사찰의 이름 앞에는 ‘오대산 월정사,’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실상사,’ ‘속리산 법주사’와 같이 산 이름이 붙어 있다.

 국토의 약 70%가 산지이지만 신생대에 들어와 격렬한 지각변동을 겪지 않아 높은 산은 많지 않다. 한반도와 만주를 통틀어 가장 높은 白頭(2,744m)도 해발고도가 3,000m에 미치지 못한다. 높은 산은 한반도의 지형적 골격을 이루고 있는 태백·소백·낭림·함경·마천령 등의 산맥을 따라 분포한다. 특히 함경산맥과 낭림산맥을 따라서는 해발 2,000m 이상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으며, 이 두 산맥으로 둘러싸인 蓋馬高原은 해발고도가 1,500m 내외로 ‘한반도의 지붕’이라고 불리운다.

 한반도는 태백산맥 및 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낭림산맥과 함경산맥을 중심으로 단면이 비대칭적인 두 개의 傾動地形으로 이루어졌다. 태백산맥과 함경산맥은 동해에 다가서 있어 동해쪽에서는 높은 산맥으로 보이지만, 정상에서 반대쪽으로는 고원이나 험준한 산지가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이들 경동지형은 신생대 중기 이후에 한반도가 동해쪽에 치우쳐 서서히 융기함으로써 형성되었다. 소백산맥도 지반의 융기에 의해 형성되어 줄기가 뚜렷하다.

 개마고원에 광활하게, 대관령 부근의 횡계지역에 좁게 나타나는 고원지형은 高位平坦面이라고 불리운다. 이러한 지형은 한반도가 융기하기 이전에 상당히 평탄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횡계지역 서쪽에서는 고위평탄면이 침식을 많이 받아 산정부에만 더러 남아 있으며, 서해안에 가까울수록 고도가 낮아진다. 광주의 南漢山城은 해발 500m 내외의 고위평탄면을 이용하여 쌓은 대표적인 산성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을 한반도의 등뼈에 비유하여 흔히 脊梁山脈이라고 부른다. 중·고등학교 지리교과서의 산맥지도에는 차령·광주·노령·마식령·멸악·언진 등의 산맥이 척량산맥에서 서쪽으로 마치 갈비뼈가 뻗어내린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산맥은 고위평탄면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하천의 유역분지들 사이에 형성된 분수계에 불과하다. 갈비뼈 모양의 이들 산맥은 20세기 초에 일본 지질학자(小藤文次郞)에 의해 잘못 설정된 들로서 줄기 자체가 분명하지 않다.011)權赫在,<韓國의 山脈>(≪대한지리학회지≫36, 2000), 389∼400쪽. 지리학과 지질학에서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산맥이란 분수계가 아니라 지반운동에 의해 형성된 연속적인 산지를가리킨다 . 조선 후기의<山徑表>에 기재된 크고 작은 산줄기는 분수계를 보여주는 것인데,012)楊普景,<조선시대의 자연인식체계>(≪한국사시민강좌≫14, 一潮閣, 1994), 70∼97쪽.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白頭大幹은 마천령·함경·낭림·태백·소백 등의 산맥을 잇는 한편 압록강과 두만강을 비롯하여 한강·금강·낙동강 등의 유역분지를 가르고 있어 모든 산줄기 중에서 가장 길다(<그림 2>). 백두대간에 대한 인식은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고대에도 있었던 것 같고,013)權赫在,≪韓國地理(地方編)≫(法文社, 1995), 339쪽. 오늘날에는 자연보존운동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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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한반도의 산맥과 하천
<그림 2>한반도의 산맥과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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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남한강 연변의 충주·여주·이천 등지에는 해발 100m 이하 또는 해발 50m 내외의 구릉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전라북도 김제와 같은 서해안의 일부 지역에서는 구릉지의 해발고도가 25m 내외로 낮아진다. 산도 아니고 평야도 아닌 이러한 구릉지, 즉 野山은 화강암의 분포지역을 중심으로 원래 융기량이 적었던 고위평탄면의 주변부에 형성된 지형이다. 야산은 고도가 낮고 지면의 경사가 완만해도 토양이 척박해서 대부분 林野로 남아 있다가 1960년대부터 이른바 ‘야산개발’이 추진되면서 적극 농경지로 개간되어 왔다.014)權赫在,<驪州地方의 地形과 土地利用>(≪교육논총≫28, 고려대, 1998), 83∼105쪽.

 식량문제의 해결이 절박했던 과거에는 산이 많고 평야가 좁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산이 많아 국토 전체가 공원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도 대부분의 지방도시와 같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都城을 쌓는 데 이용한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은 內四山, 그 바깥의 북한산·관악산·용마산·덕양산은 外四山이라고 불리웠다. 이중에서 북한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우리 나라는 산이 많은 만큼 강도 많다. 우리는 예로부터 우리 나라가 錦繡江山임을 내세워 왔다. 그러나 산은 골프장을 만들고 토석을 파내며 도로를 내는 등 각종 개발로 망가지고 있고, 하천은 모래·자갈의 채굴과 댐·하구둑의 건설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수질오염이 심해서 물고기가 위협을 받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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