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3. 인류학적 특성
  • 3) 농민의 육지생태계와 어민의 해양생태계 특성

3) 농민의 육지생태계와 어민의 해양생태계 특성

 신석기시대에 야생식물을 재배하고 야생동물을 길들여서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농업을 생업의 기반으로 하였다. 다른 한편, 바다ㆍ하천ㆍ호수에서 어류ㆍ패류ㆍ藻類 등 수산 동식물을 포획하고 채취하는 어로활동도 농업이 발생하기 이전의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또 하나의 중요한 생계방식이었다.

 인간은 모두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먹이와 생활물자를 다른 동물과 식물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항상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공생관계 또는 기생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과 사회활동도 역시 이런 관계로 인식할 수 있다. 농업의 육지생태계와 어민의 해양생태계를 비교해볼 때, 농민은 다른 동식물과 상호 의존적 공생관계에 있는데 반해서, 어민은 다른 동식물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기생관계에 있다.029)韓相福,<農村과 漁村의 生態的 比較>(≪韓國文化人類學≫8, 한국문화인류학회, 1977), 11∼16쪽. 농민은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하고 거기서 작물이나 가축을 가꾸고 길러서 씨를 남기고 먹는다. 즉 농민은 토지에 씨를 뿌리고 가축의 새끼를 내어 그것들이 성장한 뒤에 먹이와 생활물자를 그 동식물에 의존하는 동시에, 그 동식물의 종자보존과 개량 및 농약과 예방주사 등의 활동을 통해 동식물을 보호하고 번식시킨다. 이런 점에서 농민과 다른 동식물의 관계는 공생적이다. 그러나 어민은 양식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어류와 패류 및 해조류를 기르거나 씨를 받지 않고 야생하는 자연의 동식물을 일방적으로 착취한다. 즉 어민은 수산 동식물에 의존하지만, 수산 동식물은 그들의 생존을 어민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어민의 수산 동식물에 대한 관계는 기생적이다.

 한국에서 농민의 토지이용은 영토의 한정과 사적인 토지소유권으로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어민의 바다는 토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한한 개척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물 속의 바위나 흙 속에 서식하는 해조류나 조개류 같은 고정성 수산자원은 사유가 가능하지만, 어류와 같은 이동성 수산자원은 공유로 되어 있다. 따라서 농민이 동식물 자원을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는 토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1차로 자본을 토지에 투자하고 나서 그 다음에 농기구ㆍ관개ㆍ비료ㆍ농약ㆍ종자개량 기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재에 투자한다. 그러나 어민이 바다ㆍ하천ㆍ호수 등 공동의 광대한 어장에서 수산 동식물 자원을 집약적으로 이용하는 데에 유일한 제약은 어로의 장비와 기술 및 지식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1차로 자본을 어로의 장비와 기술에 투자한다. 미개하고 단순한 어로의 장비와 기술로서는 어로활동이 潮流와 바람 등의 자연환경과 인간의 육체적 노동과 감각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동력선ㆍ나일론 어망ㆍ어군탐지기 등 고도의 어로장비와 기술을 갖추면 어군의 위치를 확인하고 포획하는 데에 매우 유리하다. 어로의 장비와 기술이 발달하면 자본의 투자 규모가 커지고, 그에 따라 어로조직이 복잡해지며 어획물의 분배체계도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 어업의 특성이다.

 농민의 자산인 토지는 영구적이며 자연의 재해에 대하여 비교적 안전하지만, 어민의 가장 중요한 재산인 어로장비는 항상 관리 수선되어야 하고 손실의 위험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돌풍과 풍랑으로 인한 난파의 위험을 안고 있다. 농업에서는 작물이나 가축의 성장에 투입한 자본과 노동의 결과로서 수확이 비교적 확실하고 예측이 가능하며 안정적이다. 그러나 어업에서는 농업에서만큼 어획에 확실성이 없고 예측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불안정하다. 즉 어획량은 해마다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며, 매일의 어획량조차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두 어선이 함께 출어하여 비슷한 어로장비와 기술을 가지고 조업을 할 경우에도 요행에 따라 어획량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어업에서는 농업에서보다 기업가와 혁신가의 역할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경작ㆍ제초ㆍ수확 등의 농업노동에는 전가족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할 수 있어서 연령과 성별 분업이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고용노동의 경우에도 비교적 작은 땅에서 노동이 행하여지기 때문에 고용주의 영농과 노동 통제하에서 감독이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촌에서는 남성은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여성은 해조류나 패류의 채취 및 육지의 농사를 주로 하기 때문에 성별 분업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어업노동 자체도 가족원이 아닌 선원들이 집단을 이루고 공동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선원들의 지위와 역할이 각자에게 따로따로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어업에서는 농업에 비하여 상황판단과 결정이 매우 중요하고 게임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어업경영에서는 광대한 어장과 예측할 수 없는 어류의 습성, 기후, 바다의 조건 등 자연환경 때문에 경영의 통제가 어렵고 자본주가 어로작업을 감독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선원이 아닌 자본주ㆍ선주ㆍ망주 등은 그들의 자본과 선원들의 노동에 불평등한 어획량 분배체계를 적용하여 자기들의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을 상쇄한다. 예컨대 한국의 서해 소흑산 可居島 멸치어장의 경우 선원 23명이 조업을 해서 어획물을 분배할 때, 거의 60% 가량은 선원이 아닌 선주와 망주 등 자본주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40%를 선원들에게 분배하는데, 선원들 중에서도 선장과 기관장 등의 몫을 제외하면 일반 선원들에게는 1인당 총어획량의 1.25%밖에 돌아가지 않는다.030)Sang-Bok Han, Korean Fishermen:Ecological Adaptation in Three Communities, Seoul: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 1977, pp. 43∼45.

 농민은 어민에 비해 그들의 생산이 상대적으로 자급자족적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농민은 경제적으로 농업 이외의 다른 생업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토지에만 묶여 있었다. 농업 자체도 가족노동에 의하여 경영되는 영세한 규모인데다가 농업기술이 단순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낮아서 자급자족의 범위를 넘지 못하였다. 잉여생산이 극히 낮은 상태에서 시장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낮았다. 그러나 어민은 자급의 목적보다 식량과 다른 일상의 생활필수품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이 생산한 수산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판매한다. 그러므로 경제적 거래의 면에서 어민은 농민에 비하여 다른 경제부문의 사람들과 거래하는 빈도와 양이 훨씬 많다. 여기에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波市와 客主 제도의 생성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서해의 조기 파시는 특히 유명한데, 음력 1월부터 6월까지의 성어기에는 한 어장에 수백 척의 어선들과 전국 각지의 魚商들이 모여들어 선원과 어상,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업과 접객업 등의 상행위가 일시적으로 번창하여 파시를 형성한다. 육지의 시장은 일정한 장소에서 정해진 날짜에 형성되는 정기시장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바다 위의 파시는 성어기의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서해의 3대 파시는 남쪽으로부터 시작해서 음력 1∼2월의 흑산도 파시, 3∼4월의 위도 파시, 5∼6월의 연평도 파시를 가리킨다. 어물객주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항구의 상인으로서 어민들의 수산물을 위탁받아 팔고 어민들에게 어업전도금을 빌려주거나 생활필수품을 외상으로 팔고 도서지방의 어민들이 육지의 항구에 나오면 숙식도 제공한다. 그들은 어민의 수산물을 싸게 사고 자기네 상품을 비싸게 팔아 이중의 이득을 본다. 따라서 어민들은 자기네 생산품을 싸게 팔고 어로장비와 생활필수품을 비싸게 사들임으로써 이중의 손실을 본다.

 한국의 농촌은 전통적으로 경작지와 채마전 및 마당의 필요에 따라 주거의 분산이 불가피하며, 산간 촌락의 화전마을은 더욱 더 그런 현상이 뚜렷하다. 그러나 어촌에서는 해안과 선착장의 접근 및 공동어로작업의 필요성, 입지조건, 기타의 생태적 조건들 때문에 도시를 방불할 정도로 주거형태가 밀집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과 협동의 관행에 있어서도 농촌에서는 품앗이와 같은 1 대 1의 교환노동 및 두레와 같은 공동노동의 협동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어촌에서는 협동에 의한 공동어로작업은 해도 품앗이와 같은 교환노동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공동어로작업에 의한 어획물의 몫을 나누는 분배체계가 매우 발달하였다. 앞에서 본 서해 소흑산 가거도 멸치어장의 어획량 분배체계는 농촌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농촌에서는 가족의 일손이 많으면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의 잠재적인 수요가 있어 대가족이 생존할 수 있으나, 어촌에서는 건장한 남성만이 바다에서 공동으로 어로작업을 하기 때문에 핵가족의 형태가 지배적이다. 더구나 해조류의 채취권을 가구 단위로 부여하는 소흑산 가거도와 같은 낙도에서는 장남부터 차례로 자식들이 혼인과 동시에 분가하고 막내아들이 노부모를 부양하면서 말자상속을 한다. 通婚圈도 농촌에서는 확대ㆍ분산되는 경향이 있으나 어촌에서는 폐쇄적인 경향이 있어 村內婚 또는 島內婚이 빈번하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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